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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공연 실황 모습  연세영은 데이드림이라는 예명으로 음악활동을 해왔으며 겨울연가 작곡가로 널리 알려지며 한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지역까지 공연을 다닐 정도로 인기를 받고 있다.
▲ 말레이시아 공연 실황 모습  연세영은 데이드림이라는 예명으로 음악활동을 해왔으며 겨울연가 작곡가로 널리 알려지며 한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지역까지 공연을 다닐 정도로 인기를 받고 있다.
ⓒ 연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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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데이드림, 본명 연세영. 이 이름은 몰라도 드라마 <겨울연가>는 기억할 것이다. 2002년 일본에서 '욘사마 신드롬'을 일게 한 이 드라마 OST 중 6곡을 연세영이 작곡했다.

연세영은 겨울연가뿐 아니라 <파리의 연인>, <여우야 뭐하니'>, <내 이름은 김삼순> 등 다양한 드라마 O.S.T 작업에 참여했으며 현재까지 정규앨범만 11장, 편집 앨범은 25장을 출반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다. 그는 케빈 컨, 이사오 사사키, 마이클 호페 등 세계적인 거장들과 나란히 합동공연을 펼치기도 하며 대한민국 뉴에이지 1세대라 불려왔다.

또 지난 6월엔 국빈급 대우를 받으며 말레이시아 부킷잘릴 아레나 스타디움에서 3만 관중이 주목한 가운데 자신의 곡을 연주했다.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 등 귀빈들이 행사에 참석했으며 연주는 생중계됐고 1억 명이 시청했다.

이 행사에서 그는 올리비아 뉴턴 존, 톰 크루즈, 스티브 잡스, 무하마드 알리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수상한 '브랜드 로리어트 어워즈 International Brand Personality상'을 받았다. 대한민국을 알리는 한류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던 것.

피아니스트이기 전 미술 전공자, 숨은 실력 골고루 드러내 

그러나 그는 사실 피아노가 아닌 미술 전공자다. 선화예중과 계원예고를 거쳐 중앙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30년 넘게 그림을 그린 중견작가다.

미술 전공자답게 그는 개인전 단체전 해외교류전 등 50회 이상 전시해왔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현대미술대전, 국제미술대전 등 각종 전국 단위 이상의 대회를 휩쓸었다. 서양화, 문인화, 서예, 한국화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재능을 드러냈고 출품만 하면 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올해 특선을 거머쥐며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미술 전문가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어머니는 '나 죽기 전에 네가 국전에 입선이라도 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죠. 늦은 나이지만 어머니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어 대한민국미술대전에 나갔는데 연속으로 상을 타게 됐어요."

순전히 몸이 편찮은 어머니를 위해 나간 국전이었는데 당당히 이름을 올려 그는 기뻤다.

한때는 오랫동안 기자로 살았다. 문화예술 분야 기자로 시작해 여러 언론사를 거쳐 편집장까지 지냈다. <겨울연가> 배경곡들도 대학에 다니면서 또 바쁜 기자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북콘서트에서 연세영 천안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연세영이 영화소품용 권총으로 김상옥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 북콘서트에서 연세영 천안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연세영이 영화소품용 권총으로 김상옥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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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에서 소설가로 

그런 연세영이 남다른 인연으로 천안에 왔다. 자신이 쓴 소설과 함께.

지난달 27일(금) 오후 7시 천안시 서북구 멜버른커피하우스에서 천안 평생학습공동체 '오만'이 연세영 작가를 초청해 북콘서트를 열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자리마다 사람은 꽉 찼고 뒤늦게 온 사람들은 보조의자에 앉아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글은 그의 '전문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는 이미 2008년 <문예지평> 시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했고 13편의 시집을 출간한 경력이 있었다. 또한 2009년 제5회 랭보문학상 수상했으며 2016년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을 받은 실력자였다. 단편소설과 5편, 중편소설 <허난설헌-몽유일기> 1편, 장편소설 <다산 정약용-차왕(상·하)> 1편을 이미 완성했고 이번에는 영화처럼 살다 간 독립운동열사 김상옥의 이야기를 집필했다. 음악과 미술은 물론, 문학에서까지 탁월한 예술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그가 더욱 남달라 보인다.
 
북콘서트에서 연주하는 모습  연세영이 들려주는 조선의열단 쌍권총 김상옥 이야기도 청중의 귀를 사로잡기 충분했는데 사람들은 그의 연주에 더 홀릭됐다.
▲ 북콘서트에서 연주하는 모습  연세영이 들려주는 조선의열단 쌍권총 김상옥 이야기도 청중의 귀를 사로잡기 충분했는데 사람들은 그의 연주에 더 홀릭됐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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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독립열사들의 행적에 깊은 애정을 보였다.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국의 미래도 밝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아는 유관순 사진의 얼굴을 자세히 봐요. 모진 고문으로 퉁퉁 부었잖아요. 암울한 시대가 그렇게 만든…."

독립운동 열사들의 사진은 힘들고 초췌한 모습이 많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멋들어진 차림의 김상옥 열사의 사진을 발견했다. 종로경찰서를 폭파하고 일경 1000명과 대적해 싸운 김상옥이었다. 또 일본 경찰에게 괴롭힘당하는 소녀를 구하고 일본 경찰의 칼까지 빼앗은 전설 같은 인물이었다. 그 칼은 현재 독립기념관에 보관돼있다.

그는 김상옥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책을 써야겠다는 결심에 이르렀다. 그 후 3년이나 자료를 찾아다니며 책을 썼고 지난 광복절날 서울에서 비로소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그는 또 국립현충원 공훈록에 쓰인 김상옥의 한자 이름 상옥(尙沃)과 부인 이름 '정진수'가 오기임을 밝혀내고 후손에게 알려 상옥(相玉)과 '정진주'로 고쳐 기록하게끔 했다. 김상옥을 향한 그의 열정이 잘못 기록된 역사를 발견하고 바로잡은 것이다.

소설 '조선의열단 쌍권총 김상옥' 영화로 제작 준비 중 

그는 북콘서트에서 영화 같은 삶을 살다간 김상옥의 기개와 장렬한 죽음을 이야기했다.

"무려 1000명과 대적했어요. 양손에 권총을 들고. 김상옥의 죽음은 정확히 묘사된 기록이 없지만 상상해보세요. 그 상황이 어떠했을지."

연세영은 청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영화 소품용 권총을 가져와 시연하며 설명했다.
책 출간만으로 김상옥 이야기가 끝이 아니었다. 책을 낸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영화제작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책을 내도록 지원한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에서 영화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내년 상반기쯤 예고편을 내고, 하반기에 개봉이 목표죠. 영화 음악은 제가 직접 만들 계획이에요."

책을 읽고 영화제작에 힘을 보태는 사람이 늘고 있어 그는 기쁘다. 책은 김상옥이 노획한 칼을 일본 사업가가 탐내며 독립기념관 건립기금을 대겠다고 제안하는 전개로 시작한다. 실제 독립기념관은 건립 당시 자금 부족 사태를 겪었으며 공사 중 불이 난 적이 있었다. 연세영은 "최대한 사실에 근거해 썼으며 픽션 부분도 철저한 고증을 통해 개연성이 충분한 이야기로 서술했다"고 밝혔다.
 
조선의열단 쌍권총 김상옥 책   영화처럼 소설처럼 살다 간 김상옥 열사의 삶과 사랑 이야기가 담긴 역사인물 소설.
▲ 조선의열단 쌍권총 김상옥 책   영화처럼 소설처럼 살다 간 김상옥 열사의 삶과 사랑 이야기가 담긴 역사인물 소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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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가난을 이겨낸 철저한 노력파 

음악과 미술, 문학에서 모두 두각을 드러낸 그의 재능이 놀라웠다. 그러나 그는 별 거 아니라는 듯 겸손하게 말했다. 

"재능이라기보다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무명이었지만 피아니스트인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이 없다고 말할 순 없었다. 하지만 6남매 중 가장 소질이 없다고 느꼈던 그다. 그는 정말 노력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철저한 노력파였다. 요즘도 그는 4~5시간의 수면만 취한다. 새벽에는 시, 소설 등 글쓰기를 하고 낮에는 피아노 연습, 저녁에는 그림을 그린다. 이렇듯 쉬지 않고 자신을 갈고 닦아왔기 때문에 그런 대답이 가능했다.

너무 가난해서 힘겨웠다는 그의 말이 오히려 낯설었다. 그의 유년과 청년 시절은 편해 보이는 온화한 인상과 달리 가난과의 지난한 싸움이었다. 가난 때문에 아픈 기억이 너무 많았다. 일례로 초등학교 당시 돈 없으면 가기 어려운 선화예중을 가겠다고 하니 담임은 가난한 연세영이 진학하는 걸 결사반대했고 원서를 써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선화예중에 갈 수 있을까 생각 끝에 교장 선생님 초상화를 그려서 가져갔어요. 교장 선생님이 그 초상화를 보시곤 대번 원서를 써주라고 하셨지요."

그렇게 진학한 선화예중이었는데 그에게도 사춘기는 찾아왔다. 중2 때 일탈을 했고 그 일로 어머니가 학교에 불려왔다. 조카뻘 되는 담임에게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비는 모습에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나 때문에 어머니가 그렇게 빌었고 우셨어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 아파요."

그 모습을 목도한 그는 결심했다. 다시는 술·담배를 하지 않겠다고. 돈이 없어 대학을 10년이나 다녔고 아프고 서러웠던 시절을 얘기하자면 밤을 새울 것 같이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 후 그는 자신의 결심을 굳건히 지키며 소위 바른생활로 자신을 가꿔나가고 있다. 교도소 재소자들을 위한 봉사까지 다니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착하게 사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알고 보면 그 아픔 속에서 주옥같은 명곡이 탄생했고 그의 철학을 담은 그림과 글이 탄생한 것이다. 연세영은 그런 아픔과 고난을 겪고도 "그 고생이 나 스스로 더 노력하게 해주었다"고 말하는 긍정 멘탈의 소유자였다.

그런 연세영이 말했다. "독립운동 열사들의 삶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 외로 숨겨진 독립투사와 애국지사들이 많아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역사도 많고요. 잘 찾아서 제대로 알리는 마음이 중요해요. 모르면 알 때까지 끝까지 찾아서 제대로 된 역사를 후손들에게 알렸으면 좋겠어요."

열사 김상옥에게 푹 빠진 멀티테이너 연세영. 지금까지 해온 음악 미술 문학 영역에서 계속 재능을 발휘할 테지만 앞으로 그가 또 문화예술영역에서 어떤 능력을 펼쳐낼지 기대가 모인다.


[연세영 주요경력]
1991년 MBC 신인 가요제, KBS 창작가요제 수상
2001년 1집 Dreaming 발표, 총 앨범 36장
2008년 <문예지평> 시 부문 신인상
2009년 제5회 랭보문학상
2016년 <계간문예> 소설 부문 신인상
2018년 제26회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 한류문화 공헌 대상
2018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 / 부산국제미술대전 특선
2019년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덧붙이는 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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