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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활동 보고회에서 위원들이 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19.9.25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5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활동 보고회에서 위원들이 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19.9.25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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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85년 6월 20일 새벽 1시 50분경, 한 육군부대 최전방 GP에서 근무하던 김아무개 병장이 내무반에서 7m 떨어진 벙커 계단에서 스스로 수류탄을 터뜨려 목숨을 끊었다.

당시 군 수사당국은 김 병장의 자해 사망 원인에 대해 '불우한 가정환경과 장기간 GP근무로 인한 군 복무 염증' 때문이라고 결론 내리고 사건을 매듭지었다.

하지만 김 병장의 유가족들은 사건 배경에는 부대 선임하사의 금품갈취와 폭행, 가혹행위가 있었다며 진상을 규명해 고인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면서 지난 2018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 진정했다.

위원회 조사결과 고 김 병장은 자대 배치 후 군견병으로 차출되어 타부대로 전출될 때까지 선임하사로부터 지속적인 가혹행위와 구타를 당했고, 군견병 교육을 받고 온 후 또다시 선임하사를 만나 후임병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욕설과 모욕적인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했다.

사건 발생 2~3일 전에도 선임하사는 김 병장의 뺨을 때렸고, 수류탄으로 자폭하기 불과 몇 시간 전에는 내무반에서 김 병장에게 욕설과 구타를 했다.

위원회는 선임하사의 지속적인 구타폭언 및 가혹행위 등 부대 내 부조리가 결국 김 병장이 자해사망에 이르게 된 직접적이고 중요한 원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아울러 김 병장의 사망원인을 가정불화와 장기간 GP근무로 인한 군복무 염증이라고 단정했던 군 수사결과는 당시 병영 부조리를 근절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했거나, 당시 소속부대에 만연한 구타 및 가혹행위 등을 축소은폐 하려는 의도적 행태라고 판단했다.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출범 1주년을 맞아 25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10층 대회의실에서 조사활동 보고회를 열고 김 병장 사건을 비롯한 6건의 진상규명 사건을 공개했다.

1985년 7월 8일 발생한 김아무개 일병 자해 사망사건도 선임병의 구타·가혹행위 등이 문제였다.

당시 김 일병은 대공진지 경계근무 중 자신의 M16 소총을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군 당국은 "김 일병이 계속되는 부대훈련과 특히 족구시합을 하다 무릎을 다쳐 치료를 받는 동안 근무가 열외 되어 내무반에서 대기하는 과정에서 죄책감에 의한 군 복무에 염증을 느껴 자살한 것"이라고 결론냈다.

이에 대해 위원회는 "부상에 의한 근무 열외로 인한 죄책감과 군 복무 염증으로 자해 사망하였다는 군 수사결과는 신뢰성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위원회는 "망인(김 일병)은 족구시합이 아닌 선임병에게 구타를 당해 그 부상으로 근무가 열외되었고, 망인의 다리 정강이 상처 감염은 폭행에 의한 것으로 격리조치가 필요하다는 군의관의 조언이 무시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위원회에 따르면 청와대 외곽 방공경비 임무를 수행하는 이 부대의 경우 군기가 엄격했는데 선임병들로부터 부대 전통으로 이어오던 '차수 기합'을 받는 등 부대 내 부조리가 직접적이고 중요한 원인이 되어 김 일병이 자해 사망에 이르렀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당시 군 헌병대가 망인에 대한 구타나 가혹행위 사실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던 사실도 밝혀졌다.

이날 위원회는 한국전 당시 육군 장교로 소집되어 전투에 참전했다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다가 사망한 고 박아무개 소위 사건도 소개했다.

고 박 소위는 강릉농고 배속장교로 재직하다 육군보충장교령에 의해 소위로 소집되어 제8사단 16연대 작전참모 보좌관으로 1950년 9월 영천전투에 참전하여 전투 수행 중 흉부 포탄 파편상을 입고 경남 동래의 59육군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후 중상자로 분류된 박 소위는 군 병원 관리 하에 있던 양산 통도사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아 왔지만 1951년 4월 14일 사망했다. 전투 중 입은 부상이 악화돼 목숨을 잃었으니 당연히 전사자로 분류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박 소위가 세상을 떠나기 석 달 전 군 당국은 박 소위를 소집해제 시켰고, 민간인 신분이 된 박 소위는 전사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위원회는 이 사건의 경우처럼 더 이상 전투에 참가할 수 없는 중상자라는 이유로 군 병원에 입원 중임에도 강제로 소집 해제를 시키고 전사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현장 확인 등 다양한 조사를 통해서 고 박 소위가 한국전에 참전해서 전투 중 부상을 입고 사망한 사람임을 밝혀 국가안보를 위한 전사자임을 판단하여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하였다고 설명했다. 고 박 소위가 사망 68년 만에 전사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 외에도 이날 위원회는 지난 2015년 12월 7일 육군의 한 사단 독신자 숙소에서 목을 매 숨진 정아무개 하사 사건, 1959년 7월 25일 제3 야전병원에서 고혈압성 지주막하출혈로 숨진 조아무개 일병 사건, 1969년 8월 2일 수류탄 폭발로 사망한 정아무개 일병 사건 등을 공개했다.

위원회는 1948년 11월 30일부터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시행 전까지 군 복무 중 사망했으나 원인이 명확하지 않고, 의심의 여지가 있는 사건·사고의 진상규명을 위해 지난 2018년 9월 28일 출범했다.

위원회는 지난 1년 동안 총 703건의 군사망사건이 접수됐으며, 이 가운데 619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고, 조사가 종결된 84건 중 13건에 대해서는 진상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이인람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장은 "이번 보고회를 계기로 그간의 조사활동을 점검하고, 미흡했던 부분을 바로잡아 남은 기간 동안 진상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망인과 유족이 최대한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원회는 2020년 9월 13일까지 군사망사건 진정서를 접수받고, 2021년 9월 13일 조사를 마무리한다.

태그:#군 의문사, #이인람, #군 사망 사고,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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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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