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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명의 시원, 그리스 아테네의 풍경1

ㅡ넘치는 소매치기와 난민들
19.09.20 01:18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파르테놑 신전 . ⓒ 윤재훈
 
언덕 위에 웅장하게 솟아있는, 부서지고 세월에 마모된 건축물들, 어린 시절 사회 교과서에서 인류 문명의 시원(始原)이라며, 작은 가슴에 동경과 기대를 주었던 나라. 그 언덕 아래에서 제일 먼저 내가 만난 것은 흑인 청년들의 '강매와 소매치기, 부랑아'들이었다.

관광지 입구부터 조잡한 끈 팔찌 같은 것을 무료로 손목에 채워준다며, 어떻게든 붙잡고 말을 시키려는 청년들, 거기에 넘쳐나는 소매치기들, 마치 열 명 중의 한 명은 소매치기 같아 끊임없이 경계를 해야 했다.
 
모나스티라키 매트로 역 Monadtiraki Metro Station , ⓒ 윤재훈
 
시내 한 구역은 환한 대낮인데도 아예 부랑아들이 커다란 무리를 지어 웅성거리고, 여기저기 조잡해 보이는 부탄가스 옆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뭔가를 데우고 있다. 하나 같이 시커먼 복장에 옆으로 지나가기가 두려웠다. 그들은 밤이면 불도 켜지지 않은 시커먼 건물 아래 땅바닥에 대충 뭔가를 깔고 떼거리로 잠을 청하고, 어쩌면 불이 없는 게 더 익숙해 보였다.

게스트로 가는 길도 상황은 비슷하다. 골목길에는 희미한 전등불만 하나 힘겹게 주위를 밝히고, 그 아래에는 어김없이 시커먼 복장에 검은 피부를 한 흑인들이 마치 시위라도 하듯 계속 두세 명씩 서 있다.
 
이란 친구들, 멀리 아크로폴리스언덕 불빛이 보인다 , ⓒ 윤재훈
 
이곳에서 사귄 이란 친구들 말에 의하면 이 일대에는 사창가도 있다고 했다. 러시아, 동유럽, 남부 유럽, 아프리카 쪽 가난한 나라에서 밀려들어온 여성들이 많다고 했다. 그녀들은 오직 몸 하나로 돈을 벌어 방값을 내고 밥을 먹고 화장품이나 고급 스마트폰들을 사고, 더러는 가난한 가족들을 위해 집으로 돈을 보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마치 우리 옛 시절 단봇짐을 싸들고 무작정 서울역에 내리던 누이들처럼. 가끔은 청량리나 부산의 완월동 어디쯤을 걷고 있는 착각마저 들 때도 있었다.

저녁 준비를 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슈퍼를 갔다가 두 번째 소매치기를 당했다. 평소에 몇 번 갔던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고 물건 몇 가지를 고른 다음 카운터에서 막 계산을 하고 있는데, 근처에 있던 정육점 아주머니가 뭐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와 동시에 문 쪽을 보니 콧수염을 기른 페르시아 계통쯤으로 보이는 청년이 서둘러 나갔다. 나는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계산하던 아가씨가 내 가슴팍을 가리킨다. 그러고 보니 대롱대롱 매달려 다니던 작은 가방 속의 휴대폰이 보이지 않았다. 문 밖에 나가 보았지만 그의 자취는 없었다.
   
정류소앞 한낮, 낮잠을 잘때도 구걸은 멈추지 않는다 , ⓒ 윤재훈
 
이윽고 슈퍼 매니저가 나와 CCTV을 돌려보니, 그는 바로 내 뒤에서 단번에 휴대폰을 빼냈다. 매니저는 반복해서 그것을 보고 오토바이로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본다고 나가더니 금방 돌아왔다. 하긴 이 시간까지 도둑이 눈에 띄게 서 있을까, 나는 그가 간 뒤에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었지만. 순진해 보이는 계산대 아가씨는 바로 앞에서 자기가 보지 못했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오랜 시간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 넣은 가방을 잠그라고 충고해 주었는데, 나는 내 눈 앞에 바로 있은데, 누가 이것을 빼갈까 싶었다. 그런데.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신고를 해달라고 했다. 한참 후 경찰이 오고 영상을 본 그들은 해결의지가 0%도 없어 보였다, 내일 아침에 경찰서로 찾아오라는 말만 반복했다. 수사에는 현장이 가장 중요한데, 내일이면 다 사라지고 없으니 지금 좀 찾아보면 좋겠는데, 그들은 돌아갈 생각뿐인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근처에 일렬로 늘어서 있던 중고폰 가게들이 생각이 났다. 아마도 소매치기들은 그곳에 훔친 폰을 팔고, 쾌재를 부르며 이국에서의 하루살이 삶을 연명해 가고 있을 것이다, 이곳은 아직도 아나로그 폰과 그전에 통화와 문자만 되는 작은 노키아폰까지 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한국인 관광객들이 쓰는 커다란 화면의 삼성 스마트폰과 LG폰은 그들에게 얼마나 동경심을 불러일으킬까.
너무 이질감 드는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어도 상대에게 죄를 짓게 만드는 마음을 유발한다는 경구가 생각났다. 세상은 서로 엇비슷하게 살고 있으면 상대적 빈곤감이나 박탈감을 느끼지 않은데, 한 쪽이 너무 많이 가지고 있거나 독식(獨食)하면 상대에게 죄를 짓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구나 그 폰을 만드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으면 더욱 그것을 가지고 싶을 것이다. 또한 한국인들은 좋은 스마트폰 쓰는 사람들이라고 정평까지 나있어 소매치기 1위 대상자라는 것이다.
경찰들은 금방 돌아가고 슈퍼의 셔터는 내려가고 멍하니 서있는데, 페르시아계로 보이는 술 취한 청년들이 둘이 와 물건을 사고 싶은지 셔터를 두드린다. 안에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계속 두드리자 잠시 후 경찰들이 왔다. 그들은 단번에 청년들의 팔을 꺾어 제압하고 땅바닥에 무릎을 꿇게 하더니 험하게 다루면서 인권유린을 한다. 약소국에서 온 청년들이라고 더 그러는 것 같다. 잠시 들려본 경찰서 어느 방에선가 청년들의 비명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 제주도에 예멘 난민들이 들어왔었다. 사람들은 두 쪽으로 의견이 갈려 설왕설래 했는데, 당연히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그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찌 한 지구 안에 서 죽음 같은 수만리 바다를 작은 보트 하나에 의지해 온 사람들을 내칠 수 있겠는가, 이웃이 배가 고프면 가장 먼저 우리 집 담을 넘을 것인데.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수많은 나라들에서 자신들의 젊은이들을 파견하여 피를 나누지 않았던가.
 
아테네학당 앞 . ⓒ 윤재훈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특히나 유럽 쪽에서 넘치는 난민들을 보면서 혼란스러워졌다. 그들은 그곳에서 사회 불안요소였다. 우선 배가 고프니 염치는 그 다음이고, 끝없이 여행자들에게 달려들어 강매를 했다. 무차별적으로 소매치기를 하고, 걸리면 "This is my job"을 외치고 있었다. 많이 가지고, 많이 누리면서 사는 선진국 사람들 것 서로 좀 나누어 먹으면 어떠냐고, 그것이 무슨 죄냐고, 항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이것저것 따지기에는 "우선 배가 너무 고프다고" 세계는 항상 가진 자들, 강자들의 역사에 의해서만 움직여 왔다고.


파리 베르시 세인,Very seine 버스터미널
티켓부스 앞에서 초라한 행색으로 
서성이는 사내

어느 나라에서 왔을까,
눈동자마저 힘을 잃었다
도너츠를 반쯤이나 먹고 있는 중국인 여자에게
주저주저하며 다가가더니
빵을 달라고 한다
그녀가 반쯤 때어주자
서둘러 입에 넣는다

얼마나 굶었을까
세계는 그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을 것이다
새들이 하루 종일 먹이를 찾아 헤매 듯
그도 그러했을 것이다

버스 시간이 늦어 허둥지둥하면서
막 티켓을 집어넣으려는 순간, 세상에
여기에서 장발장을 보다니
그가 아직도 살아 있다니,
그것도 더 초라한 모습으로
21세기의 거리를 여지껏
헤매고 다니다니,
탼식이 흘러나온다

나는 주섬주섬 짐을 뒤져
어제 사둔 커다란 빵 덩어리를 주었다
촛점 풀린 그의 눈을 보면서
오늘 저녁은 또 어찌하려나
아무리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하지만
고국에서는 그의 부모님이나
그리운 아내와 자식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세계는 어떤 이데올로기와 이상을 꿈꾸며
오늘을 위태롭게 지탱하는지,
                      -장발장을 만나다/윤재훈


그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학교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윤리와 도덕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그들의 머릿속에는 우선 먹고 사는 것이 가장 큰 선이고 도덕일 것이다. 저 강변에 새가 하루 종일 먹이를 찾아 헤매듯이. 도덕이나 윤리는 그 다음 문제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아테네학당 , ⓒ 윤재훈
 
그러나 인류문명의 시원에 서서 또 한 쪽으로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마저 배고픔 앞에서 내팽개친다면, 어떻게 이 인류는 유지될 수 있을까,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힘만이 존재하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인류를 전쟁으로 내몰고, 피의 역사만 되풀이 되어 오지 않았던가 하는 우려가, 지중해의 파도와 뒤엉켜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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