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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나.

첫 취업, 호텔_1
19.09.19 23:43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관광과를 전공하고 호텔에 취직한 나는 그곳이 나와 맞지 않음을 조금씩 알아차렸다. 세상에 힘들지않은 일이 어디있으랴. 어디가 그토록 안맞았냐는 질문을 던지면 질문을 던진 사람은 내가 '그냥 힘들어서'라고 말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아마 내가 답을 하기 시작하면 괜한 질문을 던졌다 생각할 거다. 할 말이 너어어어어무 많다. 그곳은 정말 뭐랄까. 여성권에 대해 무지했던 일명 개념녀인 시절의 내가 느끼기에도 그곳은 유독 여성에게만 더 심하게 폭력적인 곳이었다.
  

 나는 관광과 안에서 꽤나 우수한 성적에 속했다. 또 무자비한 다이어트와 절식 그리고 운동으로 170이 넘는 키에 50키로도 되지않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깡마른 몸매였다. 남성들이 좋아한다는 투명메이크업을 한 것처럼 보여지기위해 아이러니하게도 더 두꺼운 메이크업을 하고다녔고 늘 딱 붙는 치마를 입었다. 당시 같은 학과에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나는 마치 '제 꿈은 현모양처예요'라고 말할 애처럼 그에게 없는 애정을 쥐어짜가며 도시락, 손편지, 남자친구 가족챙김 등 남성이 원하는 여자친구가 되고싶어 갖은 노력을 했다.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듣고, 낮은 자세로 서포트할 줄도 알고. 그래서 대학시절의 나는 누구에게나 칭찬받고 사랑받는 여학생이었다. 덕분에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취업할 때 다른 학생들에 비해 거의 하이패스급으로 좋은 호텔에 취직하게 됐다. 서울에 있는 특급호텔에 실습없이 경쟁없는 간단한 면접만으로 취직하게 됐는데 그때당시엔 내가 똑똑하고 사교성이 좋아서라고 생각했다. 정말 흑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그저 가스라이팅이 아주 잘 되어서 거지같은 곳에 가서도 말썽 하나 일으키지 않을 거라 보였기 때문에 쉽게 취직이 됐던 것 뿐이다.


 호텔에 신입으로 입사를 하게되면 일정기간동안은 호텔안의 여러 업장을 돌아다니며 근무하는데 업장에 있는 기존직원들과 잘 어울리거나 상급자에게 인정을 받으면 그 업장에 고정으로 있을 수 있게된다. 보통 사람들은 호텔리어하면 프론트에 있는 직원들을 생각하는데, 프론트는 고학력 혹은 굉장한 언어스펙 혹은 저엉말 뛰어난 미모를 갖지 않는 한 꿈꿀 수 없는 부분이었고 그저 관광과를 졸업한 신입에 불과했던 나는 여러 외식사업장을 돌아다녔다.
 뷔페부터 시작해서 중식당, 일식당, 한식당, 연회부서까지.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내가 정착하게 된 곳은 연회부서였는데 그것은 그 호텔안에서는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연회부서는 연회의 스케줄에 맞춰 연회에 대한 모든 준비를 해야하는 부서인데 연회가 하루에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연회마다 주제도, 인원수도, 음식도, 집기도 모든 것이 제각각이라서 동료들 사이에선 호텔 안의 해병대라고 불리는 고된 부서였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이유로 부서의 99퍼센트가 남성직원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나는 내부의 가십거리가 되기도 했다. 물론 나만 여자인 것은 아니었다. 같은 시기에 취직한 혜란도 연회부서에 배치받았고 기존직원인 희숙선배까지해서 연회부서에 여성직원은 총 세명이었다. 남자는 수십명인데 여자는 세명에 불과한 부서인지라 우리 셋은 금방 돈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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