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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만 민주노총 제화지부장이 9월 5일 오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유통수수료인하추진모임 주최로 열린 ‘불공정 유통수수료 문제 해결과 제화업계 상생발전을 위한 토론회’에서 제화노동자 실태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정기만 민주노총 제화지부장이 9월 5일 오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유통수수료인하추진모임 주최로 열린 ‘불공정 유통수수료 문제 해결과 제화업계 상생발전을 위한 토론회’에서 제화노동자 실태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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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많을 때는 하루 14~17시간씩 일했고 집에 갈 시간도 없어 근처 사우나에서 자곤 했다... 일요일엔 6일 동안 못한 일 마무리하느라 가족과 문화생활은커녕 밥 한 끼 먹지 못한 세월이 30~40년이다."

30년 넘게 제화업계에 몸담은 정기만(55) 제화지부장이 발언 도중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정 지부장을 비롯해 60, 70대가 태반인 제화공 노동자들의 마지막 소원은 허울 좋은 '소사장'이 아닌 4대 보험 보장되는 '노동자'로 일을 마치는 것이다.

"구두 한 켤레 공임 7천 원으론 최저임금도 못 받아"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를 비롯한 '유통수수료인하추진모임'은 9월 5일 오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불공정 유통수수료 문제 해결과 제화업계 상생발전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20만~30만 원 정도하는 구두 한 켤레에 포함된 제화노동자 공임비는 7천 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이른바 '탠디 사태'에 힘입어 지난 20년간 5500원으로 동결됐던 제화노동자들의 공임비가 조금 올랐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구두 값에서 백화점이나 홈쇼핑 등에서 가져가는 유통수수료가 38~41%에 이르기 때문이다.
  
구두 한 켤레의 수익 분배. 유통수수료가 38%를 차지하고 있다.
 구두 한 켤레의 수익 분배. 유통수수료가 38%를 차지하고 있다.
ⓒ 민주노총 제화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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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화 노동자들은 유통수수료를 3%포인트만 낮춰도 소사장제에서 벗어나 4대 보험과 퇴직금을 보장받는 노동자로 살 수 있다며, 정부와 유통업체들을 상대로 유통수수료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정기만 지부장은 이날 "IMF 사태 전에는 노동자로 일하며 퇴직금, 위로금은 다 받았는데 IMF 사태 이후에는 소사장으로 만들어 퇴직금도 안 주고 산업재해를 당하면 자기 돈으로 치료받고 집에서 쉬어야 한다"면서 "제화노동자 대부분 60~70대다, 남은 몇 년이라도 더 노동자로 살아가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더 큰 문제는 제화업계에 미래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수제화 제화공은 서울 성수동을 비롯한 수도권에 3000여 명, 부산, 대구 등 지방에 2000여  명 정도다. 이들은 대부분 60~70대로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제화노동자 34년차인 박완규(51) 부지부장은 그래도 젊은 편이다. 박 부지부장은 "제화노동자 대부분 40-50년차고 34년차인 내 후배는 다섯 명 정도밖에 없다"면서 "평균연령 60대인 숙련공들이 하루 8~16시간 일하고도 최저임금도 벌지 못 한다"고 털어놨다.

조합원이 700여 명 정도인 제화지부는 그래도 지난해 4월 파업으로 공임이 7천 원으로, 1000~1700원 정도 올랐지만, 노조가 없는 곳은 500원 정도 오른 게 고작이다.

"유통수수료 3%p만 낮춰도 구두회사-노동자 상생 가능"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인 김남근 변호사가 9월 5일 오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유통수수료인하추진모임 주최로 열린 ‘불공정 유통수수료 문제 해결과 제화업계 상생발전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인 김남근 변호사가 9월 5일 오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유통수수료인하추진모임 주최로 열린 ‘불공정 유통수수료 문제 해결과 제화업계 상생발전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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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요구하는 건 크게 3가지다. 우선 소사장제를 없애 제화노동자에게 4대 보험과 퇴직금을 보장하고, 젊은 제화공을 육성하는 교육기관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원사업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해달라고 요구했다.

박 부지부장은 "하루 8시간 정도만 일해도 가정을 꾸려갈 수 있는 구조가 돼야 젊은 제화공 육성이 가능하다"면서 "지원금 때문에 협회가 4~5개 생겼지만 노동자들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성수동 제화거리) 조형물이 노동자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나"라고 따졌다.

이같은 제화노동자 요구를 반영하려면 대형유통업체의 유통수수료 인하를 통한 공임비 인상이 필수다. 제화지부에선 유통수수료가 잡화 평균인 31.4%로 3%포인트만 낮아져도 구두 한 켤레당 9천 원을 확보할 수 있어 원청(브랜드)과 하청업체, 제화노동자 모두 상생할 수 있는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남근 변호사는 이날 발제에서 "전체 구두 가격에서 홈쇼핑이나 백화점 판매수수료 비중이 35~40%나 된다"라며 "원재료 가격 등을 제외하면 원청이나 하청업체도 이익 규모가 적어 제화공 노동자들의 4대 보험 가입이나 임금 인상 등이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대규모 유통점과 구두 브랜드 원청회사와 하청회사, 제화공 노조 등 네 당사자 사이에 사회적 교섭이 추진된다면 과도한 독과점 유통구조에서 초과이익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할 수 있다"며 "우선적으로 제화공 노동자들 4대 보험 가입 비용이나 최저임금 보장 등의 용도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9월 5일 오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불공정 유통수수료 문제 해결과 제화업계 상생발전을 위한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최인호 의원을 비롯해 박홍근, 이학영 의원도 참석했다.
 9월 5일 오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불공정 유통수수료 문제 해결과 제화업계 상생발전을 위한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최인호 의원을 비롯해 박홍근, 이학영 의원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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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신동열 공정거래위원회 유통거래과 과장, 이희정 중소벤처기업부 판로지원과 과장, 이용희 한국제화산업협회 사무국장 등이 정부와 제화업체를 대표해 토론자로 참석했고, 토론회를 주관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최인호, 유기홍, 이학영 의원도 참석해 제화 노동자들에게 힘을 보탰다.
 

태그:#제화노동자, #유통수수료, #구두, #성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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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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