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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회 대구지부와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는 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대한광복회 결성 104주년 기념식을 갖고 독립운동의 의의를 되새겼다.
 광복회 대구지부와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는 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대한광복회 결성 104주년 기념식을 갖고 독립운동의 의의를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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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제 도발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높은 가운데 대한광복회 결성 104주년 기념식이 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열렸다. 대한광복회 기념식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이다.

광복회 대구지부와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가 주최한 기념식에는 독립운동가인 우재룡 지사의 아들 우대현 선생, 대구 권총사건 김재열 지사의 아들 김길조 선생, 대한광복회 사무총괄 이복우 지사의 친손자인 이내형 선생, 종손 이동희·이채희 선생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독립운동 지사 등에 대한 묵념과 광복회 7대 투쟁 강령, 포고문, 사형선고문 등을 낭독하고 독립운동사적 의의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진관 영남일보 기자는 광복군이 창시되면서 불렀던 <광복군 행진곡>을 독창했다.

대한광복회 7대 투쟁 강령은 무력을 준비해 부호의 의연 및 일본인이 불법 징수한 세금을 압수하고, 남북 만주에 사관학교를 설치해 무관과 군인을 양성해 일본인 섬멸전을 단행하는 무력전을 펼친다는 내용 등이다.

또 광복회 포고문에는 "이천만 민족은 노예가 되었고 나라의 치욕과 백성의 욕됨이 그 극에 이르렀다"며 "우리 조국을 회복하고 우리 원수를 몰아내어 우리 동포를 구함은 실로 우리 민족의 천직으로서 우리들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의무"라고 밝히고 있다.
  
 1915년 대한광복회가 결성됐던 달성공원 일대. 당시 일본 신사가 있었으나 광복회는 이곳 신사 근처에서 무장투쟁단체를 결성했다.
 1915년 대한광복회가 결성됐던 달성공원 일대. 당시 일본 신사가 있었으나 광복회는 이곳 신사 근처에서 무장투쟁단체를 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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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맡은 정만진 소설가는 "바로 이곳에 일본이 만든 신사가 있었고 학생들을 동원해 참배를 했다"며 "이곳 신사가 있는 달성공원에서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무장조직인 대한광복군이 조직됐다"고 말했다.

배한동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상임대표는 "대한광복군은 일본의 세금마차를 털어 군자금을 가져오고 일본인들을 사살하는 등 우리 국민들이 국권을 상실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희망을 주었다"면서 "오늘날 대구가 보수의 도시로 낙인찍혀 있는데 대구를 바꾸는 시초를 찾는다면 대한광복회에서 찾고 싶다"고 말했다.

이복우 지사의 친손자인 이내형 선생은 "할아버지가 아직까지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해 안타깝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김재열 지사의 아들 김길조 선생은 "대한광복회의 표지석도 하나 없어 부끄럽다"며 "그나마 시민들이 모여 이런 행사라도 갖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기념식을 마친 참가자들은 1910년 8월 29일 일본이 강제로 한일병합조약(강제병탄조약)을 체결해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빼앗았던 '경술국치일'을 잊지 않기 위해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며 '기억하라 경술국치일, 지정하라 국가기념일'을 적은 손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가 택시와 승용차에 조기를 달아주었다.
 
 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열린 대한광복회 104주년 기념식에 참가한 참가자들은 오는 29일을 경술국치일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는 피켓을 들었다.
 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열린 대한광복회 104주년 기념식에 참가한 참가자들은 오는 29일을 경술국치일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는 피켓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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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한광복회는 경북 풍기의 광복단과 대구 안일사에서 조직된 조선국권회복단이 1915년 8월 25일(음력 7월15일) 일본인 신사가 있던 대구 달성공원에서 독립운동을 위한 무장투쟁조직으로 결성했다.

박상진 지사를 주축으로 한 대한광복회는 1916년부터 충청도·경기도·강원도·황해도 등으로 확대되었고 대구의 상덕태상회, 영주 대동상회를 비롯해 광주·삼척·예산·인천·용천·서울·해주 및 만주의 안동·장춘에 설립된 곡물상·잡화상을 연락거점으로 해 군자금을 모았다.

대한광복회는 친일부호를 처단하고 독립군 양성 등의 활동을 전개했으나 1918년 초 전국의 조직망이 발각되면서 주요 인물이 검거돼 사형당했다. 이후 조직이 파괴되었지만 일부는 1920년 만주에서 암살단·의열단에 가담해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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