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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의학연구소 박은성 사무국장
 인권의학연구소 박은성 사무국장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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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수사관 정보가 국가 안보인가요?"

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 박은성 사무국장의 말이다. 인터뷰 도중, 그는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목젖 언저리가 간질거렸다. 질문을 던지러 갔는데 질문을 받으니 쉽게 입이 열리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국가 안보란 외부의 위협이나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지키는 일에 사용하는 단어였다.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이상한 말이죠. 근데 행안부(행정안전부)가 간첩조작사건 등으로 서훈 취소자들의 정보를 비공개하면서 내세운 이유가 '국가 안보'입니다. 여기 판결문을 보세요."

그가 판결문을 보여줬다. 지난달 26일 서울행정법원 제11부(재판장 박형순)가 내린 판결이었다. 지난해 인권의학연구소는 행안부를 상대로 '정보공개거부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판결문 12~13페이지를 펼쳐 읽었다. 행안부의 주장을 법원이 판단한 내용이다.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피고(행정안전부 장관)는 원고(인권의학연구소 등)가 공개를 구하는 정보 중 형제복지원 인권 침해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제외한 나머지 정보는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2호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하고, 성명은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6호의 공개될 경우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처분이 적합하다고 주장하나, 적법한 처분의 근거와 이유의 제시가 없었다고 인정되는 이 사건에서 위와 같은 주장은 당초 처분에서 제시하지 않은 별개의 사실을 처분사유로 주장하는 것으로 허용되지 않으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간첩조작 사건 등으로 훈·포장을 받은 고문 수사관의 실명과 공적 등을 국가기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난해 7월 행안부는 간첩조작 사건 등으로 훈포장을 받은 이들의 서훈을 취소하고 이를 발표하면서 고문 수사관 등의 이름을 '이OO', '김OO' 등으로 표기하고 구체적인 공적도 비공개했다. 인권의학연구소는 반발했다. 행안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의권의학연구소의 손을 들어줬다. 행안부가 고문 수사관 등의 명단을 비공개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공적 사항을 비공개한 것과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규정을 밝혀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박 사무국장을 만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인권의학연구소 이름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지난 1년간 이어진 법정 다툼에 참여한 장본인이다. 그를 만나 행정소송을 제기한 이유와 법원 판결의 의미, 향후 계획 등을 물어봤다. 인터뷰는 7일 서울 성북구 인권의학연구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가해자가 승승장구하는 사이 피해자는 숨죽여 살았다"

- 행안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지난해 7월 행안부가 국무회의를 거쳐 부적절한 서훈 대상자 53명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발표 자료 어디에도 고문 가해자 이름은 없었다. 취소 사유도 '거짓공적'이라고 표기했을 뿐, 구체적으로 왜 훈장을 취소하게 됐는지 설명이 없었다. 훈·포장만 취소할 뿐, 이건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처벌이 아니었다.

고문 가해자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는데, 고문 피해자의 이름은 사건명에 크게 기재했다. 고문 피해자 이름을 따서 '정삼근 간첩조작 의혹사건'이라고 표기하면서 다시 한번 고문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폭력을 가했다. 반대로 고문 가해자인 서훈 취소 대상은 '김OO', '이OO'로 표기했다. 재심에서 무죄를 받고 국가배상까지 난 사건인데 고문 가해자의 실명과 공적 취소 사항은 어디에도 없었다.

처음부터 소송을 제기한 건 아니다. 먼저 행안부에 간첩조작 사건 등으로 서훈을 받았다가 취소된 이들의 명단과 공적, 취소 사유 등을 정보공개시스템을 통해 청구했다. 답변이 왔다. '부분공개'라고 쓰여 있었는데, '보국훈장 삼일장' 같은 훈격과 수여 일만 구체적으로 표시됐을 뿐 정작 중요한 정보는 없었다. 변호인단과 상의 후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7월 10일 행안부는 간첩조작 사건 관련자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공로자,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원장 등 53명, 2개 단체에 수여한 서훈을 취소했다. 대상은 훈장 21점, 포장 4점, 대통령 표창 17점, 국무총리 표창 14점 등 총 56점이었다. 행안부는 이들이 '거짓 공적'으로 '부적절한 서훈'을 받았다고 했다. 실명과 공적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 소송을 결심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인권의학연구소는 고문 피해자들의 치유를 위한 공간이다. (개인적으로) 지난 10년간 고문피해자들을 만났는데 이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고문 가해자 처벌이다. 하지만 국가는 한 번도 고문 수사관 등 고문 가해자들에게 제대로 책임을 묻지 않았다.

반면, 고문 피해자들은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한 고문 피해자에게 왜 진화위(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있을 때 진상규명을 신청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간첩조작 사건으로) 감옥에 갔다가 출소하니 자신을 고문했던 책임자는 군에서 별을 달았고 고문 조사관은 구청장이 돼 있었다고 했다. 고문 가해자들이 떵떵거리는 세상이니 고문 피해자가 어떻게 국가를 믿고 진상규명이나 재심을 신청하겠나. 못한다. 고문 가해자가 훈장 받아 진급하고 보훈 혜택을 누리는 동안 피해자는 숨죽여 살았다.

더욱이 행안부가 서훈 취소자를 발표한 때는 고문 수사관 고병천의 재판이 진행되던 시기다. 당시 많은 고문 피해자들이 재판을 방청하며 분노했다. 이런 상황에서 행안부가 고문 수사관들의 서훈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는데, 이름조차 온전히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화가 났다.

당시 고문 피해자 한 명이 분노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내 이름만 (사건명에) 크게 나왔다, 자신이 고문 가해자 이름을 아는데 혹시 어디 가서 실명을 말하면 불법이냐'고. 고문 가해자들을 처벌하지 않는 건 진실한 정의가 아니다."

지난해 5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9 단독 이성은 판사는 전 국군보안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학원반장 고병천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고씨가 1980년대 발생한 재일 동포 간첩 조작 사건 재심에서 위증했다는 것이다. 고씨는 지난 2010년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윤아무개씨의 재심 사건에 증인으로 출석해 "고문이나 허위자백 강요가 전혀 없었다"라고 위증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고씨는 대법원에서도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 하지만 고문과 가혹행위에 대해선 처벌받지 않았다.

"가해자 없는 피해자는 없다"
 
 지난해 7월, 행안부가 발표한 서훈 취소 대상자
 지난해 7월, 행안부가 발표한 서훈 취소 대상자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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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서훈 취소자의 정보 공개를 요구하나?
"고문 가해자의 이름은 무엇이고, 어떤 공적으로 훈장을 받았고, 왜 서훈이 취소됐는지 구체적으로 정보를 공개해야 교훈 삼을 수 있다. 고문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방법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정보를 공개하면서 육하원칙에 하나도 맞지 않게 알렸다. 이게 과연 성의 있는 발표라고 할 수 있을까? 고문 피해자와 시민단체가 숨어 있는 고문 가해자를 찾을 게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고문 가해자를 찾고 이를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 법정에서 논쟁이 된 부분은 무엇인가?
"행안부는 서훈 취소 대상자와 그가 소속된 정보기관을 공개하는 게 국가 안보에 해당한다며 이를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고문 수사관 정보가 국가 안보인가? 범죄는 안보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국가는 죄 없는 사람을 고문해서 간첩으로 조작한 고문 가해자가 아니라, 고문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 정보공개법(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을 보면, 예외 항목을 두고 직위나 이름을 공개할 수 있게 돼 있다. 변호인단과 상의하고 판례를 찾아보면서 승소를 예상했다."

- 재판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는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다만, 행안부가 국가 안보와 개인정보 보호법을 내세워 고문 수사관들의 정보 공개를 거부했으나 재판정에선 적극적으로 이를 주장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 법원 판결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행안부는 서훈 취소자를 발표하면서 대대적으로 박탈한다며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고문 피해자들의 요구가 무엇이고 고문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고민에서 나온 발표는 아니었다. 고민했다면, 최소한 고문 가해자의 이름과 공적 취소 사항을 공개했을 것이다.

국가는 국가폭력 피해자를 찾아나선 적이 없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진실규명을 청구해 무죄와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진정한 과거사 문제 해결은 국가가 국가 폭력 피해자들을 찾아서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다.

가해자 없는 피해자는 없다. 사회 정의를 위해서 고문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 고문 피해자들만 뉴스에 노출되고 언급되면서 2차 피해가 발생한다. 극우단체들이 '피해자 코스프레 한다'고 막말하는 것도 고문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이야기해서다. 고문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올바른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

국가와 우리 사회는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희생으로 민주주의를 이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고문 가해자 등을 명확히 기록하고 국가폭력 사건을 시민들에게 교육해야 한다. 국가는 고문 피해자에게 지속적인 존경과 감사를 표시해야 한다."

"국가폭력 재발 방지 위해선 가해자 책임 묻는 게 중요"

- 향후 계획은?
"인권의학연구소는 인권에 기초한 의료지원활동을 위해 지난 2009년 문을 열었다. 인권피해자들의 트라우마 치유 활동을 도우며 고문 피해자들의 실태조사를 해왔다. 최근엔 (인권의학연구소) 산하에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숨'을 만들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이 땅의 수많은 고문 피해자들의 치유를 위해서다.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치유하는 일은 어떠한 국가폭력도 다시는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또한 고문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행동 등도 이어갈 것이다. 행안부가 지속적으로 서훈 취소자를 선정하고 이들의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도록 지켜보고 추궁할 것이다. 그리고 19대와 20대 국회 때 첫 번째로 발의된 '고문 방지와 고문 피해자 법안'(고문방지 및 고문피해자 구제·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제정되도록 요구할 것이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국가폭력 재발 방지를 위해선 가해자 책임을 묻는 게 중요하다. 사회적으로 국가폭력 피해자를 기억하는 일들을 해야 한다. 유럽연합(UN) 등 국제사회는 국가폭력 피해자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그들의 존재와 증언에 끊임없이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그다음에 사회적으로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받은 고통과 사건을 공표하고, 인식 확산을 위한 교육도 해야 한다. 고문과 폭력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건 이런 것들이 이뤄진 다음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한 가지도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다."

한편, 지난 6일 행안부는 이 사안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놨다.
 
"지난해 7월부터 부적절한 서훈을 취소하면서 훈격, 수여 일자, 취소사유 등을 공개했으나 국방부 등 관련 기관에서 '비공개'를 요청하여 실명을 비공개했다. 인권의학연구소가 제기한 정보공개청구소송에 대한 판결문을 검토 중으로, 이를 토대로 국방부 등 해당기관과 협의해 최대한 자료공개가 가능하도록 검토해 나갈 계획."

지난 5월, 국가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지금 여기에' 변상철 사무국장은 행안부의 서훈 취소를 비판하며, "서훈 취소, 이게 최선입니까?"라고 했다. 행안부가 언급한 '협의'와 '검토'에서 3개월 전 상황이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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