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투명 인간으로 살아가는 존재, 성소수자

저는 사회에서 '투명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딜 가도 존재하지 않는, 위화감도 없이 지워져 버리는 저의 존재는 투명 인간이고, 저의 또 다른 존재는 성소수자입니다. 스스로 성소수자라고 잘 밝히는 편은 아닙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는 더더욱이요. 여러분은 처음 보는 사람이 "나는 성소수자다!"라고 이야기를 한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시나요?

사회에서 투명 인간인 성소수자로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인천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면서 만나는 많은 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저의 존재는 쉽게 지워집니다. 일전에 인천동구청이 무리한 행정적 요구를 해서 면담을 했을 때도 저를 앞에 두고 '그들'이라고 부르시더라고요. 이후에도 몇 번 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성소수자 당사자인 저를 앞에 두고 '그 사람들'이라든지, '그들'이라든지 자신 앞에 있는 제가 성소수자일 것이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입니다. 제가 성소수자임을 굳이 밝힌 이유는 여러분께 성소수자로서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고, 인천퀴어문화축제를 왜 준비했는지 그 과정에서 느낀 것들을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첫 퀴어문화축제는 16년 서울퀴어문화축제였습니다. 시청역 에스컬레이터에서부터 들리는 웅장한 노랫소리, 역에서 혐오선전물을 나눠주는 사람들, 곳곳에 무지개를 단 사람들. 그 넓은 시청광장을 메운 무지개, 무지개와 함께하는 수많은 깃발과 나와 같지만, 또 다른 사람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처음 시각적으로 접한 날이었습니다.

저는 정체화를 하는 몇 년간 저를 따라다닌 정상성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불안감, 나만 그런 것 같다는 고립감을 일부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알았습니다. '아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나만 그렇게 이상한 것이 아니구나. 내가 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을요. 저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퀴어문화축제는 사회에서 투명인간 취급받는 자들에게 색을 입혀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스젠더(외부 성기로 판별된 성별과 자신이 생각하는 성별이 같은 사람), 유성애(다른 사람에게 연애적/성적 끌림을 느끼는 사람), 이성애자 중심의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너무 쉽게 지워집니다.

관계에서 아주 쉽게 겉보기 성별(외모로 보여서 그 성별이라고 여겨지는 성별)로 남성 혹은 여성으로 지정하고, 여자친구/남자친구 있는지 묻습니다. 그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트랜스젠더인지, 동성애자인지, 양성애자인지 등의 고려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당연한 믿음과 질문에서 성소수자는 끝없이 지워지고 있죠. 그런 지워져 버린 존재인 성소수자를 사람들이 사는 공간 한복판에 모이게 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우리의 존재를 외칩니다.

사회의 투명인간에게 무지개라는 아주 큰 스펙트럼의 색을 원하는 대로 입힐 수 있는 장이 됩니다. 내가 나여도 되는 날, 투명하지 않아도 되는 날의 존재는 나의 가치를 찾고 존재의 의미를 찾는 유의미한 날이 됩니다. 또한, 나를 찾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내 주변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2018년 인천퀴퍼문화축제의 모습이다. 2018년 이 축제에서 혐오세력들이 난입하여 물리적, 언어적 폭력을 휘둘렀다. 올해는 스톤월항쟁 50주년이자 한국퀴어문화축제(현 서울퀴어문화축제) 20주년이다. 올해 인천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인천 성소수자들의 안전과 권리를 다시 한번 이야기할 것이다.
 2018년 인천퀴퍼문화축제의 모습이다. 2018년 이 축제에서 혐오세력들이 난입하여 물리적, 언어적 폭력을 휘둘렀다. 올해는 스톤월항쟁 50주년이자 한국퀴어문화축제(현 서울퀴어문화축제) 20주년이다. 올해 인천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인천 성소수자들의 안전과 권리를 다시 한번 이야기할 것이다.
ⓒ 김민수 기록활동가

관련사진보기


인천퀴어문화축제를 둘러싼 혐오와 배제의 정치

작년 인천퀴어문화축제를 둘러싼 문제는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문제점이 섞여 있어 전부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인천에서 존재를 완전히 부정당한 이들이 있다는 것이죠. 또한, 종교와 결탁한 성소수자 혐오 진영의 폭력과 방해를 목도했고 이 과정에서 공권력-동구청과 경찰-은 적극적으로 가담하거나 방기를 함으로써 사실상 혐오 세력의 손을 들어준 점, 성소수자들이 자긍심의 장이 아닌 혐오의 장으로 호출되었다는 점도 문제점입니다. 당일 몇 시간에 걸쳐 벌어진 혐오폭력과 증오범죄는 성소수자들에게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너의 존재를 지워버리겠다'는 적극적인 표시였습니다.

인천에 성소수자는 존재하지 않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존재한다 해도 우리가 (적극적으로) 지워버릴 거라는 선전포고를 한 것입니다. 지역에 사는 성소수자들은 혐오세력을 보며 자신이 인천에서 성소수자로 있는 것에 대한 불안을 느꼈고, 혐오세력으로 집회에 함께 했을 내 친구, 지인, 이웃, 가족을 보며 절망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인천에서 완전히 자신의 존재가 지워져 버린 상황에서 우리는 고립감과 불안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죠.

올해 인천퀴어문화축제는 이러한 고립과 불안을 해소해야 합니다. 인천에서도 '성소수자는 존재했고, 존재하고, 존재할 것이다'라는 아주 큰 메시지를 던져야 합니다. 작년에 그렇게 반대했지만 '우리는 더 강해지고, 더 많은 연대와 관심으로 똘똘 뭉쳐 돌아왔다. 아무리 반대한다고 지워지는 존재가 아니다.'는 이야기를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곳 사례를 보며 힘들어했을 전국 각지의 성소수자에게 우리는 아직 존재하고, 존재할 것이고 우리가 고립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인천에서도 우리와 함께하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꼭 전해야 합니다.

나와 우리의 색을 되찾을 수 있는 인천퀴어문화축제를 위해

인천퀴어문화축제 이후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였고, 또 기꺼이 함께 싸워주시겠다고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올해의 인천퀴어문화축제를 밤과 별, 그리고 별자리로 상징화했습니다. 밤이 어두울수록 더욱 빛나는 별처럼, 별이 모이고 또 이어져서 별자리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존재는 힘듦이 있음에도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고 또 그 힘듦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이 함께 이어져 있다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인천에 아주 큰 무지개 별자리를 수놓으려 합니다.

우리의 존재를 반대하는 이들이 투명하다 못해 지워져 버린 인천의 투명 인간들에게 우리는 빛과 색을, 이어짐을 선사하려고 합니다. 그들이 기꺼이 자신의 색을 찾고 남들과 이어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떠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겠죠.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당신도 기꺼이 우리가 되어 새로운 색을 찾고, 자신의 색을 찾은 투명 인간들과 기꺼이 손잡아 주시지 않겠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 공동조직위원장/기획단장인 이혜연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또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8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태그:#2019인천퀴어문화축제, #혐오없는인천퀴퍼만들자, #성소수자노동자의권리를위해, #인천퀴퍼, #일터
댓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