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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는 여러 가지 생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 공룡을 보고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밝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커서는 잊어버리게 되더라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지금은 관심이 없지만, 예전에 흥미롭게 생각했던 동물 중 하나가 펭귄이었다.

2011년 무렵, MBC에서 '남극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이 있었다. 남극의 생물에 대해 촬영한 프로그램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대대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프로그램덕택인지 남극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었을 정도였다. 나는 그 영상을 보고 펭귄의 귀여운 모습에 흠뻑 빠져 들었다.

새는 펭귄처럼 뒤뚱거리지 않고, 비행을 위해 날렵한 몸매를 갖기 마련이다. 하지만 펭귄은 적당히 살이 오른 것이 뭔가 그냥 봐도 귀엽게 생겼고, 걸어 다니는 모습도 귀엽고, 그냥 아무튼 귀여웠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흥미는 오래 가진 못했다. 그런데 읽을 책을 고르다가 마주한 한 책의 제목과 표지는 내가 그때 가졌던 펭귄에 대한 흥미를 되살아나게 만들었다.
 
펭귄의사생활
 펭귄의사생활
ⓒ 와타나베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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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지가 귀여운 책의 제목은 '펭귄의 사생활'이다. 저자인 와타나베 유키는 일본의 과학자다. 도쿄대학교를 졸업하고 국립 극지연구소 생물분야 연구팀에서 일하면서 바다에 사는 다양한 생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직접 남극 관측 원정대에 참가해 펭귄을 관찰하기도 했다.

저자는 생물을 연구하기 위해서 극한의 지방에서 뼈가 사무치는 고통을 겪고, 하루 종일 생물을 관찰하기 위해 대기하다가 쓸쓸히 허탕만 치고 돌아가는 일을 반복하는 일조차도 사랑하는, 정말로 생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이 책에서 나름의 유머러스한 표현을 통해 동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는데 얼마나 동물들을 사랑하는지 눈에 보이는 느낌이 들 정도다. 저자는 자신이 펭귄의 팬이라고 하는데, 아델리펭귄 무리가 열차처럼 스르륵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펭귄에 대해서 집중하여 다루는 책은 아니다. 물론 책이 펭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기는 하다. 다만 저자는 이 책에서 보다 폭넓게 펭귄 이외에도 바다표범, 알바트로스, 고래 등의 해양 생물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런 생물에 대한 설명도 있지만 생물에 대해 연구하는 방법인 '바이오로깅'에 대한 내용이 주가 되는 책이기 때문에 단순히 펭귄에 대해서 배우는 용도의 책은 아니다.
 
그러니까 이 책의 목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거다. "바이오로깅으로 알아낸 야생 동물들의 다이내믹한 움직임을 소개하고, 그 배경에 있는 메커니즘과 진화의 의의를 밝혀내는 것." 이런 분야를 뭐라고 하지? 행동생태학? 동물행동학? 분명 이런 학문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너무 막연하고 딱딱하니 마음대로 이름을 붙여 버리자. '펭귄 물리학' 아, 깔끔하지 않은가. -28P
 
이 책이 소개하는 주된 주제인 '바이오로깅'은 생물에게 관측기를 부착해서 생물의 속도와 생태를 파악하는 기술이다. 과거에는 과학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물을 연구하려면 직접 관찰하거나 붙잡아 두고 기록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생물은 자연적인 상태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니 이런 조사는 인위적이거나 단순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때문에 생물을 연구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이 필요해졌고 그렇게 발명된 것이 바이오로깅이라고 한다.

동물의 몸에 센서나 비디오카메라 등의 기기를 부착, 인간의 눈을 대신하도록 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인공위성을 활용하여 위치를 추적하기도 한다.

이 책은 아주 둥글둥글하니 살이 오동통한 바이칼 바다표범, 재빠르기로 알려진 참다랑어, 거대한 새 앨버트로스 등 동물의 생태에 대해서 설명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이야기 중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어류의 속도였다. 책에 따르면 참다랑어는 어류 중에서 속도가 빠른 생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관측 장비도 부족했으니 참다랑어의 속도에 대해 정확히 사람들이 알지 못했고, 때문에 참다랑어의 능력은 부풀려졌다. 참다랑어가 매우 빨리 도망치는 것을 보고 수십km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놀랍게도, 저자가 바이오로깅으로 측정한 결과 그렇게 빠르다고 알려진 참다랑어의 이동속도는 고작해야 8km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비상시에는 이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10km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해양 생물중에선 매우 빠른 편인데도 말이다. 그나마 빠른 참다랑어가 이정도고 아주 느릿느릿하기로 유명한 그린란드상어는 시속이 기껏해야 1km수준이고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동용 도감의 '바다 동물의 신비' 코너 같은 곳에는 "다랑어는 시속 70킬로미터, 청새치는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 가다랑어는 시속 60킬로미터"와 같은 내용이 적혀져 있다. 고속 유영에 알맞은 이런 어류들은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같은 속도로 드넓은 바다를 슝슝 헤엄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내가 바이오로깅으로 측정한 다양한 어류의 유영 속도를 해석한 결과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오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순항 시 평균 시속은, 놀라지 마시라. 어느 어류도 8킬로미터를 넘지 못했다. -94P

책은 바다표범에 대해서도 상세히 소개하는데, 어떤 바다표범은 잠수 능력이 뛰어나다. 가장 잠수 기록이 뛰어난 것은 2000M가 넘는 기록을 보유한 향유고래지만, 코끼리 바다표범도 그에 가깝게 잠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책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바다표범의 먹이인 물고기나 오징어에게 플랑크톤이 많은 얕은 심도는 매력적인 장소이다. 바다표범은 이런 물고기나 오징어를 앞지를 만큼 깊게 잠수해 먹이를 구하려 한다. 이로 인해 일부 바다표범에게는 걸출한 잠수 능력이 발달하게 되었다.

바이오로깅과 바이오로깅으로 알아낸 동물의 특징을 소개하는 것이 이 책의 요체다. 독특하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생물들의 이야기는 결국 동물이 어떻게 환경에 적응했는가에 대한 문제로 나아가게 된다. 넓고 다양한 관점에서 생물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좋은 책이다. 펭귄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아니어서 더 잊기 어려운 책이었다.

펭귄의 사생활

와타나베 유키 (지은이), 윤재 (옮긴이), 니케북스(2017)


태그:#펭귄, #바다표범, #생물, #생물학, #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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