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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만큼만 일할게요."

이제 청년들은 '페이열정' 시대다.
19.07.17 09:52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열정페이'라는 단어를 대한민국에서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열정페이는 하고싶은 일을 하기 위해 입사한 청년에게 열정을 빌미로 무보수에 가까운 임금을 주거나 아예 급여를 주지 않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을 뜻한다.
이 열정페이는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일을 돈까지 받으며 배운다.'는 관념에서 비롯되어 대기업 인턴, 사회적기업, 벤처기업 등 이곳저곳에서 암묵적으로 만연했다. 
열정페이를 경험해보지 않은 청년이 있을까. 나 또한 무보수 인턴을 자처한 적이 있었다. 열정페이 인턴의 경험을 돌아보면 전문성도 떨어지고, 보람도 떨어지고, 의욕도 떨어지고, 자존감도 떨어지는 나날의 반복이었다. 물론 모든 인턴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은 아닐테다. 그러나 어차피 짧은 기간 일하고 떠날 사람이라는 인식에 일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무보수 인턴을 하며 맡았던 업무는 그때 그때 해결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잡일'이었다.
그렇게 짧으면 몇 주, 길면 몇 달을 '좋아하는 일을 하고, 고생은 사서도 하는 청춘'이라는 이유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얻는 것은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제 청년들은 '열정페이'가 아닌 '페이열정'을 외친다.

노동에 대한 인식개선에 따라, 자신의 노동에 따른 대가를 정당하게 받아야 한다는 것이 청년 세대의 기본 의식이 되었다. '워라밸', '저녁 있는 삶' 등 청년들에게 일은 더 이상 삶의 전부가 아니다. 청년들에게 일은 삶의 일부다.
이제껏 청년들은 자신의 열정을 모두 보여주고 이 열정을 볼모로 잡혀 적은 월급을 기꺼이 감내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기업이 주는 만큼 열정도 꺼내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일한 만큼 월급을 받을 수 없다면 애초에 받은 만큼 일을 하겠다. 이 얼마나 합리적인가.
과연 이전의 고용자는 '내가 너의 능력을 알 수 없으니 어떻게 월급을 줄 수 있겠냐'는 자세로 피고용자를 뽑았고, 피고용자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고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보여야 했다.
그러나 월급은 직원들에 대한 '투자'이다. 어떤 투자도 적은 금액으로 많은 이익을 얻을 수는 없다. 직원에게 많은 성과를 원하는 고용자라면, 근로자에게 그만한 월급을 투자해야 한다.
투자는 얻는 것이 있으면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면서, 왜 직원들에게 주는 월급은 한푼이라도 손해볼까 전전긍긍하는가.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받는 만큼만 일할게요."라고.

지금의 청년세대에게 '언젠가는 반드시 열정을 인정받고 대가를 치른다'는 것은 지난 세대의 이야기일 뿐이다. '노오력'이라는 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노오력이라는 말은 예전에는 노력으로 뭐든 되었지만 지금의 사회에서는 더 큰 노력을 해도 아무것도 되지 않는데, 노력을 해서 안되면 노오력을 하라는 기성세대를 풍자하는 말이다. 우리는 노오력을 해도 아무것도 되지 않고, 열정을 다바쳐도 대가는 없다.
5의 열정을 넣으면 5의 대가가 나왔던 과거와는 달리 10의 열정을 넣어도 5가 채 나오지 않으니 이들의 기조가 바뀌는 것이다. 선불입니다 사장님. 받는만큼의 열정을 보일 것이고, 받는 만큼 일하겠습니다.
백세시대가 도래했고, 무려 100년이나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청년세대가 보이는 반응도 기존의 기성세대와는 사뭇 다르다. 기성세대는 100세까지 살아야 할 것을 생각해 젊을 때 노후자금까지 계획하며 있는 열정 없는 열정을 모두 불살라 성실히 돈을 모았다. 그에 반해 청년세대는 당장의 삶을 살기도 벅차 노후자금은 꿈도 꾸지 못하니 100살까지 살아야 한다면 페이만큼만 일하고 나의 열정이라도 아껴둬야겠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무조건적인 열정이 자신의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뚜렷하게 깨달아버린 것이다.


'열정페이'를 피하는 법

상황이 이러하니 청년들 사이에는 '이런 회사' 를 피하는 법도 공유되고 있다. 
청년들이 '이런 회사'를 피하는 팁은 어떤 것이 있을까.

1. 회사에서 스펙, 경력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이런 회사'는 관련 경력이 필요 없을만큼 전문성이 떨어지는 일을 시킬 확률이 높다.)
2.  '상시모집'이라는 문구를 주의해라. (사람을 상시모집하는 '이런 회사'는 사람이 오래버티지 못하고 상시로 나간다는 의미다.)
3. 야근이 잦은지 알아보라. (노동법에 따라 야근수당을 주는 회사는 직원들에게 쓸데없이 야근을 시키지 않는다. 직원들이 수시로 야근을 하는 '이런 회사'는 야근 수당도 주지 않고, 직원들의 야근을 당연히 여기는 회사일 확률이 높다. 면접에서 야근이 잦은지 물어봐도 제대로 된 답을 구할 수 없었다면 질문을 핑계로 늦은 저녁 9시~11시 즈음에 회사로 전화를 걸어보라.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는다면 그 시간까지도 야근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4. 눈치 보지 않고 월급이 얼마인지, 주5일제인지, 휴가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등 근로자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와 관련된 것들을 물어보라. (만약 '이런 회사'의 고용자라면 열정페이를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근로자의 태도를 불쾌하게 여길 것이다.)
5. 잡플래닛 등 기업정보를 열람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이트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회사의 정보를 알아보자. (근로자의 매우 현실적이고 주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객관적인 정보는 기업의 홈페이지에서도 얻을 수 있지만 회식과 야근횟수 등 실질적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특히 한 기업의 리뷰들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내용은 더욱 염두해두면 좋다.)
6.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평균 급여를 확실하게 사전조사하고 나의 급여를 설정한다. (회사는 내가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곳이지, 회사를 위해서 노동해주기 위해서 다니는 곳이 아니다.)


게으른 요즘 애들?

'받은 만큼만 일하려는 청년'은 쉽사리 '게으른 요즘 애들'의 프레임에 갇히기 쉽다. 실은 이제껏 당연하게 누렸어야 할 권리를 이제라도 누리기 위해 시도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프레임이 절대적으로 고용자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받은 만큼만 일하려는 청년을 '게으른 요즘 애들'로 칭하고 나면 고용자의 눈에 들고자 하는 사람은 '열정페이'를 기꺼이 감수하는 모습만 보이면 된다. 그것이 고용자가 원하는 것이다. 스스로 '열정페이'를 자처하는 청년.

고용자는 당연히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 하는 청년들의 태도가 불편할것이다. 이제껏 '가성비' 넘치게 청년들을 오래 부려먹고 싼값을 치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사회에 대한 청년들의 불신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고, 결국 기업의 내부체력을 약하게 만들 뿐이다.
노동에 대한 대가가 제대로 치러지지 않는 곳에서 근로자가 애정을 가지고 일을 할 수는 없고, 이는 결코 회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단기적이고 미시적인 이익을 가지고 올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개인과 기업 모두에게 손해를 불러올 뿐이다.

노동에 대한 인식은 변했고, 청년들의 인식은 더욱 변했다. 
사용자는 높은 확률로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아."하고 말하며 청년을 쫓아낼 것이다. 그러나 청년들은"여기 아니어도 일 할데 많아." 하고 외친다. 이제 청년들은 '고용자도 근로자를 선택하지만, 근로자도 회사를 선택한다.'는 자세로 회사를 마주 바라볼 힘을 기르고 있다. 
세상의 정의는 바뀌었다. 정의는 청년들의 의식 변화에 맞춰 급속하게 변화한다. 
이 청년들은 언제까지나 청년이 아니다. 이들이 곧 사회의 주류가 되고, 기득권층이 될 것이다. 청년들의 인식을 따라오지 못하는 고용자는 사회에서 뒤처지기 시작할 것이고, 비주류가 될 것이며, 결국 퇴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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