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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3892 그녀들>
 도서 <3892 그녀들>
ⓒ 새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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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2 그녀들>을 읽었다. 처음 제목을 보곤 무슨 의미일까 그게 가장 궁금했다. 3892? 연도도 아니고, 무슨 뜻이지. 서점에서 마침내 이 책을 찾아 손에 든 순간 짐작했다. 표지에 그려진 빼빼 마른 여자와 뚱뚱한 여자. 아, 그녀들 앞을 꾸며주던 숫자 3892는 체중이구나. 한 명은 너무 모자라서, 또 다른 한 명은 너무 넘쳐서 고민인 몸무게로 그녀들의 삶을 다룬 책.

92kg,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애들은 잘 먹어야 큰다'며 먹는 거에 있어선 통제를 하지 않으셨다. 퇴근길, 아이들이라면 환장할 아이스크림 혹은 과자를 자주 사오셨으며 종종 야식으로 치킨을 시켜 주셔서 어린 마음에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더 좋았던 날들이 많다. 아버지의 이러한 양육방식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 시절 내내 신체검사표에 '경도 비만, 중등도 비만'이라는 문구를 달고 살았다.

초등학교 때도 심각성은 알고 있었다. 5-6학년 정도가 되자 여자 아이들은 외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옷 스타일도 조금씩 바뀌었다. 당시 나는 엄마가 사주는 옷들만 옷장에 가득했는데, 친구들에 비하면 유치하고 이쁘지 않은 옷이었다.

나도 이쁜 여자아이가 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싶지만, 저녁 식사 후 집 앞에 나가 줄넘기를 하는 등 나름대로 다이어트를 위한 노력도 했다.
 
'항상 주인공은 평범한 외모거나 특별히 예쁘지 않다고 묘사되었지만 장담할 수 있는 것 하나는 그녀들이 절대 75킬로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 <3892 그녀들 中>

이 문구를 읽는데 가슴 한켠이 찌릿했다. 살아오면서 느낀 삶의 진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여자라면 누구나 상상하는 본인의 아름다운 모습. 성공한 삶을 사는 여성들의 대부분은 뚱뚱한 체구를 갖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다이어트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38kg, 가벼운 몸과 반비례한 삶의 행복

어릴 적엔 마른 사람들의 고충을 몰랐다. 그러나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너무 마른 것도 당사자에겐 스트레스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도 그런 사람이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가던 날, 딱 붙는 고무옷을 입자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 얼마나 말랐는지 신기하단 듯 체크하는 그 시선들이 텍스트로 읽음에도 불쾌하다. 종종 외국 여행을 갈 때마다 느끼는 점은 우리나라만큼 남의 외모와 패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드물단 것이다.

지구상 수억명의 사람들 중 어떻게 똑같고 비슷한 사람들만 있겠는가. 다양한 사람들이 있음은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우리는 종종 뚱뚱하다, 말랐다, 못생겼다, 이쁘다라는 자기만의 기준으로 타인을 쉽게 평가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 큰 인기를 끌었던 웹툰이 생각났다. 드라마화 되기도 했던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이라는 웹툰인데, 못생긴 얼굴 때문에 학창 시절 내내 놀림받던 여주인공이 성형으로 달라진 얼굴을 얻게 된다. 대학에 입학하며 생기는 여러 이야기들을 다룬 이 웹툰은 우리 시대의 외모지상주의가 갖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성들은 '미'라는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자신의 외적인 모습을 가꾸기 위해 부던히 노력한다. 이를 위해 다이어트, 성형을 하며 때론 살이 찌는 걸 극도로 두려워해 토하면서까지 말이다. 모델들이 종종 거식증으로 고생했다는 인터뷰를 본 적 있을 것이다. 그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나를 사랑하기 위한 첫 걸음

내가 살이 찔 때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나 스스로 나를 싫어했다는 사실이다. 먹을 걸 입에서 놓지 못하면서도 '난 왜 이렇게 뚱뚱할까', '내가 날씬했다면 그 일이 더 잘 됐을까.' 이런 생각만 하고 있으니 나를 가장 사랑해주어야 할 내 자신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다.

38kg이었던 그녀는 열심히 운동한 끝에 지금은 요가 강사를 하고 있다 한다. 그녀의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외적인 변화에만 그 의미가 있지 않다. 살이 찌고 싶어 일부러 라면을 끓여 먹고 잠들던 대신에 운동과 건강식을 병행해 건강한 몸을 만든 것이다.

인스턴트 식품 대신 야채와 과일을 사는 자신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 그게 바로 그녀의 노력이 칭찬받아 마땅한 순간이다. 자신을 칭찬해주게 되었고, 사랑할 줄 알게 된 것이다.

나도 6개월 동안 운동을 다니면서 7kg을 감량했다. 맛있는 음식을 절제하는 게 힘들고, 운동하는 게 고통스럽지만 몇 배는 더 행복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는 노력도 않은 채 보상을 바랐지만, 지금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선 내가 노력해야 됨을 알았다. 그리고 차츰차츰 성장해 나갈 때마다 스스로를 칭찬하기. 나를 사랑하기 위한 첫 걸음을 이제 막 시작했다.

여성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고, 꼭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라 생각했다. 나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친구 혹은 가족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주인공들의 경험담은 단순히 외적인 변화에만 치우쳐 있지 않다.

때론 상처 받고 흔들렸지만,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터득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외모도 능력이다'라는 말이 만연해진 현 시대, 외모지상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들을 향한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3892 그녀들

고은아, 홍인화 (지은이), 송아람 (그림), 새봄출판사(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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