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참 성가시다. 가끔은 글을 쓴다는 것이 그렇다. 책을 읽고 난 소감을 쓴다는 것은 더욱. 그런데도 왜 쓰려는 것일까? 95퍼센트의 성가심을 상쇄하고도 남을 5퍼센트의 감동(의 여운) 때문이리라. 감동을 글로 옮기는 작업은 늘 버겁다. 일단 책을 다시 읽었다. 가슴 멍했던 장면에서 다시 가슴이 멍해진다.
 
 '우리 산책할까요' 내 인생에 들어온 네 강아지(임정아 지금/낭소 그림)
 "우리 산책할까요" 내 인생에 들어온 네 강아지(임정아 지금/낭소 그림)
ⓒ 한길사

관련사진보기

 
<우리 산책할까요>는 저자의 반려견 까미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뒤, 그 무지막지한 슬픔과 상실감이 세월의 힘으로 옅어질 즈음 다시 만난 샘과 바람, 별이의 이야기다.

이 세 마리의 강아지들은 무엇보다도 산책을 좋아했다. 눈 먼 강아지인 바람이가 더 그랬다. 하지만 분양 때부터 이미 백내장으로 시력을 상실한 바람이를 포함한 세 강아지들의 '엄마'로서는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성가신 일이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작은 길고양이를 거두어 함께 살고 계시는 송광사 한 스님이 어느 날 방송에서 한 말씀을 듣는다.
 
"이 고양이 때문에 성가셔 죽겠어. 나가서 안 들어오면 안 들어오나 걱정하느라 성가시고, 비실거리면 어디 아픈가 걱정해야 하니까 성가시고, 그런데 그 성가심이 바로 사랑이야." - <책을 펴내며> 중에서
 
저자는 "스님의 말씀은 사랑에 관한 그 어떤 말보다도 내 가슴에 파고들었다"라고 말한다. 나도 그랬다. "사랑은 책임을 다하는 것이자 외로움을 나누는 것"이라는, 이 책 말미에 나오는 한 문장이 오롯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여왕처럼 도도했던 샘이도 눈 먼 바람이도 모두 하늘나라로 떠나고 혼자 남은 별이를 생각하면서 저자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한 말이라 더 울림이 컸다.

나는 반려견의 '반'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은 고사하고 짧은 소감문이라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인 이유이기도 하다. 근자에 연로하신 장모님 댁을 중뿔나게 드나들게 되면서 친해진 평범한 마당견인 이월이가 내 삶에 들어온 유일한 강아지다.

장모님이 부산에 사는 막내 딸 집에 다녀오는 동안 이월이는 온전히 내 차지가 되었다. 하지만 나 또한 며칠 여행을 떠나야만 했다. 돌아와서 보니 이월이는 예전의 이월이가 아니었다. 마치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은 듯했다. '개'와 '영혼'이라는 단어를 함께 떠올린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 무렵에 쓴 시의 한 대목이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면/이월이는 덩그러니 혼자가 될 것이다/살갑고 반가운 사람이 안에 있는데/밖에서의 기다림은 한정도 없이 깊어질 테고/심심함이 적막감으로 변하는/사무침의 시간도 익어갈 것이다//그때 이월이의 자세에 대해/생각해보는 것이다 – 졸시, '이월이의 반가사유' 중에서
 
95퍼센트의 성가심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데는 이월이의 공이 크다. 거기에 이 책이 '반려견'에 관한 책으로만 읽히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저자 임정아가 30여 년을 함께 한 네 강아지 이야기는 반려견을 키우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실용서 내지는 안내서가 아니다. 만약 그런 성격의 책이었다면 독자들로부터 질타를 받을 만한 내용도 없지 않다.

저자는 강아지들과 같이 살면서 무지로 인해 저지른 끔찍한 실수와 과오를 숨기려하지 않는다. 생명을 생명으로 대접하지 못했음을 시인하고 반성한다. 그 후 아픈 만큼 성숙한 것은 강아지들이 아닌 저자 자신이다. 이 책이 반려견에 대한 수필류의 책이 아닌 자전적 소설로 읽히는 이유다.

특급 조교 까미

이 책은 작은 스패니얼 강아지인 '까미'에게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암컷 강아지인 '까미'는 역시 암컷인 진돗개 '누리'와 함께 서울 집 마당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저자가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느라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남동생이 보낸 편지 한 귀퉁이에는 강아지들의 근황이 적혀 있곤 했다.
 
"우리 집에 동가식서가숙하는 웃기는 놈이 있어. 누리의 새끼인데 젖은 제 어미한테서 먹고, 잠을 잘 때면 꼭 이웃 까미한데 푹 안겨 자는 거야. 맨들맨들하고 짧은 누리의 털보다 풍성하고 부드러운 까미의 털에 파묻히는 것이 더 포근해서 그런가본데, 까미는 제 새끼도 아닌 남의 새끼를 전혀 귀찮아 하는 기색이 없이 품어주는 모양이 너무 기특하고 신기해"- (18쪽)
 
까미는 모성도 강하지만 "연애 백단에 내숭은 오백 단"이다. 지금은 일반화된 중성화 수술이 낯설던 때라 임신이 잦았고, 그러던 중 까미가 사산을 하는 슬픈 일이 일어난다. 저자가 서울 집을 떠나 시골에서 근무하고 있었을 때다. 까미가 식음을 전폐했다는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왔지만 처절한 단식 투쟁은 계속 이어진다.

어쩔 수 없이 병원으로 데려가자 의사는 "오히려 개가 사람보다 기특할 때가 있다니까요"라고 말하면서 삼계탕용 병아리를 푹 고아 먹이라는 처방을 내린다. 그 후 신기하게도 입맛을 되찾은 까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수컷들의 유혹에 넘어가 또 다시 임신을 한다. 그리고는 하필 저자가 며칠 집을 비운 사이에 혼자 몸을 풀게 되는데…
 
"놀랍도록 기특한 이 어미는 차가운 맨 바닥에 제 새끼를 떨굴 수 없었던지, 바닥에 내 옷가지를 깔아놓았다. 윗방 벽에 걸려 있던 옷가지와 수건들을 점프해서 끌어내려 마루를 거쳐 안방까지 물고 가 아랫묵에 깔고 거기서 몸을 푼 작은 어미!"- (36쪽)

그녀의 화양연화, 그리고 남동생 운택이

사람에게는 누구나 '화양연화'라 칭할 만한 시절이 있기 마련이다. 저자에게는 유독 사이가 좋았던 아홉 살 터울인 둘째 남동생인 운택이와 자연풍광이 뛰어난 영월과 정선에서 보낸 시간이었을 것이다. 남동생이 영월의료원 공중보건의로 있을 때 영월에 내려가 함께 지내자고 제안한 것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어린 강아지들에게도 착하고 다정했던 남동생 운택이는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서울에서 놀러온 가족들뿐만 아니라 까미를 위해서도 정성껏 먹이를 준비한다. 그런데 행복하던 정선에서의 나날들은 어느 무더운 여름날 갑자기 끝나버린다. 남동생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삶은 아름답고도 슬픈 것인가.

정선 생활을 홀연히 마감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온 임정아는 동생이 다니던 대학을 지나는 지하철을 탈 수가 없었다. 결국은 까미를 데리고 서울을 떠나게 된다. 평소 저자를 아끼던 은사님이 "일이 있어야 슬픔을 잊을 수 있다"면서 기간제 교사 자리를 알아봐주신 것이다. 그 후 까미와의 시골 생활은 가히 한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라 할 만하다.

삶은 아프고도 아름답다

결국 까미도 하늘나라로 떠난다. 살아 있는 생명이니 죽음은 피할 도리가 없다. 남동생을 잃었을 때만큼이나 까미를 잃은 슬픔과 후유증은 오래 갔지만, 저자에게 찾아온 것이 슬픔과 상실감만은 아니었다.
 
"까미를 보내고 얻은 슬픔과 상실감이 큰 만큼 새롭게 깨우친 사랑의 깊이 또한 크고 깊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비밀인 것 같다. 끝없는 상처와 고통의 연속인데도 인생은 왜 아름다운 것인지를 푸는 비밀의 열쇠, 무심한 바람결에 어디선가 휙 스쳐오는 꽃향기 같은 것. 그래서 삶은 아프고도 아름답다." - (115쪽)
 
저자 임정아가 네 마리의 강아지를 키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가족과 이웃들, 그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가슴 따뜻해지는 풋풋한(때로는 가슴 저미게 슬픈) 이야기는 이 책의 백미라고도 할 수 있겠다. 또한, 저자가 국어 선생님으로 근무했던 학교의 제자 아이들과 살아 있는 작은 생명인 반려견을 매개로 주고받는 대화는 훈훈하면서도 퍽 교훈적이다.

그들은 밤하늘의 작은 별자리처럼 빛나는 이 책의 아름다운 조연들이다. 짧은 지면에 전직 국어교사이자 작가인 저자의 빼어난 글 솜씨로 그려놓은 그 아기자기한 수많은 삽화들을 다 소개할 순 없겠다. 아쉬움이 크다. 이 책은 이렇게 갈무리 된다.
 
"별이마저 내 곁을 떠날 날이 분명 오겠지만 그때에도 바람이, 샘이, 별이, 이 놀라운 푸들 가족과 함께하며 기쁘고, 슬프고, 설레고, 힘들었던 날들, 그 멋진 추억들이 내 인생의 선물로 주어진 것을 감사해할 것이다. 그 아이들이 반짝이는 생명력으로 나에게 안겨주었던 기쁨, 생명이 주는 예측할 수 없는 떨림과 감동,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사랑이었으니."- (277쪽)
 
끝으로, 이 책의 그림을 맡은 낭소는 따뜻한 분위기가 나는 부드러운 질감을 좋아해 연필과 색연필로 수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림을 보면 강아지를 사랑하는 포근한 마음결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산책할까요 - 내 인생에 들어온 네 마리 강아지

임정아 (지은이), 낭소(이은혜) (그림), 한길사(2019)


댓글2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