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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나무와 신전 아크로폴리스 신전 앞의 올리브 나무
▲ 올리브 나무와 신전 아크로폴리스 신전 앞의 올리브 나무
ⓒ 조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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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여느 관계들이 그렇듯이 사는 방식도, 관심사도 조금씩 다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그리스 문학을 좋아하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는 8년 가까이 북클럽에 함께 참여하면서 그리스 문학을 고루 접했다. 호메로스부터 시작해 그리스 비극의 거의 모든 작품들을 두루 읽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의 고대 그리스는 그런 연유로 우리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오이디푸스, 메데이아, 안티고네, 오레스테스… 문학 속 그들의 고뇌와 선택이 나에게도 여전히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에 왔다. 책으로만 보던 고대 그리스를 직접 한번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다.

아가멤논을 만나러 그리스에 가다

오후 늦게 아테네에 도착했다. 시내 중심가인 신타그마 광장에 내렸을 때 34도의 더운 날씨에 뜨거운 열기가 훅 얼굴에 끼쳤다. 짐을 숙소에 두고 쉬다가 예약해둔 '달밤 아테네 산책(Athens under the moonlight)'에 참여했다. 네 명의 미국인과 함께였고, 가이드는 애벌루나라는 이름의 젊은 그리스 여성. 클레오파트라 스타일의 검은 머리에 피어싱과 메이크업이 눈에 띄는 활발한 여성이었다.
 
아테네의 밤  새벽까지 활기를 띠는 아테네의 밤 풍경
▲ 아테네의 밤  새벽까지 활기를 띠는 아테네의 밤 풍경
ⓒ 조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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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 더운 아테네의 밤 문화는 자연스러웠다. 사람들은 자정이 넘고 새벽이 이어져도 거리에 즐비한 레스토랑과 바에서 끝없이 먹고 마셨다. 우리 일행은 서로 겉모습으로 직업이나 하는 일 맞추기 게임을 하며 친해졌는데, 애벌루나가 종종 연극 무대에도 선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녀가 말하길, 연극 하면 떠오르는 런던보다도 아테네에 극장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시내 극장 건물을 소개할 때 그녀의 말이 유난히 활기를 띠었다.

토요일에는 아크로폴리스를 거닐며 파르테논 신전과 디오니소스 극장을 보았다. 파르테논 신전에서는 교과서에서나 오래 전에 배운 도리아식, 이오니아식을 눈으로 보았으며 웅장한 건물 기둥을 오래 바라보았다. 아래쪽에 있는 디오니소스 극장은 작아 보였고 고요했다.

돌로 만들어진 좌석들은 햇빛에 달구어져 있었다. 앉아서 사진 몇 컷을 찍고 얼마 안 있어 일어서자, 남편이 좀 더 머물자고 했다. (날은 덥고 어제 야행으로 무척이나 졸렸다!) 그는 고집스레 오래 앉아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라고 하면서 말이다…
 
 디오니소스 극장의 무대
 디오니소스 극장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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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여름이면 아테네 에피다우로스 축제(Athens Epidaurus Festival)가 열린다. 올해는 5월 30일부터 8월 10일까지 개최된다. 우리는 이 공연을 보려고 오기 전에 미리 그리스 비극 작품을 복습 삼아 다시 읽고 왔다.

이번에 보게 될 연극은 <오레스테이아 3부작>.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 이렇게 3편의 비극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아가멤논>에서는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아가멤논을 죽이고, 이어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에서는 아들 오레스테스가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이며, 마지막 3부 <자비로운 여신들>에서는 분노의 여신들에게 모친 살해로 쫓기던 오레스테스가 아테네 법정으로 넘겨지고 결국 무죄 판결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과연 무엇이 정의인가? 정의는 어떻게 실현돼야 하는가? 그런 질문이 끝없이 이어지는 연극이다.

새벽까지 야외에서 연극을 보다니

관객 1만5000명 정도 수용하는 에피다우로스 극장에 도착하자, 버스와 자가용이 이미 가득 주차장을 채웠다. 우리가 탄 버스에는 일본인 여성이 같이 탔는데, 연극 연구가라며 이틀째 같은 공연을 보러 왔다고 했다. 그 덕분에 이번 공연이 3부작 전체를 다 올리는 것이며, 집에 가면 '새벽' 서너 시가 된다는 것도 알았다.
 
에피다우르스 극장에서 '문학의 숲' 북클럽을 운영한 지 8년 만에 그리스 비극을 직접 보러 왔다.
▲ 에피다우르스 극장에서 "문학의 숲" 북클럽을 운영한 지 8년 만에 그리스 비극을 직접 보러 왔다.
ⓒ 조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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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극장의 문이 열리자, 물밀 듯이 들어가는 인파. 우리는 극장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20대에 영문학 수업을 들을 때 교재 표지에 있던 극장 사진. 그곳에 왔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우리는 20유로짜리 표를 사서 극장의 가운데 정도 자리에 앉았다. 애벌리나가 이곳에서는 조그만 바스락 소리도 크게 들리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는데 과연 그러했다. 공연 중에 옆에서 물병이 떨어지거나 플라스틱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리면 꽤 커서 주변 사람들이 돌아보았다.

이 큰 극장에서는 고대 그리스인들은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소리가 선명하게 뒤쪽까지도 잘 들렸다고 한다. 실제 보니 그렇다. 이번 연극에서도 대개 육성으로 하고, 신의 목소리 등을 연출할 때만 일부 마이크를 썼을 뿐이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3명의 연출가가 각각 연출을 했다. 이번 연출가는 우연히도 모두 여성. 기본 이야기 골격은 유지하고 무대나 소품, 코러스의 연기 등은 연출가가 현대식으로 어느 정도 고쳤다.

3편 공연은 쉬는 시간도 없이 연달아 이어졌다. 오후 8시 반부터 시작해서 오전(새벽) 1시 30분까지. 화장실을 가는 시간도 없다. 물을 많이 마시지 않았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영어 자막이 무대 양옆으로 있고, 우리는 미리 책을 다시 읽었으니 내용을 알고 있어 연극을 보는 게 수월했다. 밤공기가 점차 춥게 느껴지고 무대 앞 숲속 어둠의 그림자는 깊어졌다. 하늘을 올려보니 별들이 가득 돋아 있다. 1만 명 가까운 관객들 중 객석을 이탈하는 이가 드물다. 어떤 장면에서는 웃기도 하고, 한숨도 쉬면서 관객들은 연극에 빠져들어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도 꼭 저들처럼 그랬으리라.

고대 그리스에 푹 빠졌던 5시간

<아가멤논>에서는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를 다부진 남성적 이미지로 연출한 것이 인상적이었다(여성 연출가라 요즘의 젠더적 관점이 입혀졌을까 잠시 생각했다).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에서는 코러스의 모던한 춤사위가, <자비로운 여신들>에서는 기독교적 제의의 느낌이 진한 결론부가 독특했다. 이렇게 고전은 끝없이 재해석되고 다시 읽히며 우리 삶에 스며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원래 그리스 비극은 디오니소스 축제용으로 만들어진 제례음악과 춤이 발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스 비극 3대 작가로 알려진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당시에는 비극 경연대회가 열리고 대개 3부작으로 공연하였다고 한다. 용맹한 장수이기도 했던 아이스킬로스가 <아가멤논> 등을 쓴 작가이고 비극 경연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열광했던 그리스 비극은 현재에도 '인간 정신의 심연'을 다루었다는 찬사를 받고 사랑받는다. 당시 아테네가 당면한 역사, 사회, 정치적 맥락을 고려해 이 작품들을 이해해야 마땅할 것인데, 오레스테이아 3부작에서 끝없이 제기되는 정의의 문제 역시 그러하다. 누가 정의로운가? 누구의 행위는 용서받을 수 있고 누구는 단죄해야 하는가? 현대 우리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는 질문이다.
 
 다섯 시간의 공연이 끝나고 무대인사하는 배우들
 다섯 시간의 공연이 끝나고 무대인사하는 배우들
ⓒ 조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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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다우로스 극장에서 앉아 있던 한밤중의 다섯 시간. 아가멤논을 만나고 퀼리타임네스트라, 카산드라를 만나던 시간. 연극이 주는 카타르시스적 유희와 제의적 시간이 나 자신을 통과한다. 저 인물들이 내게 거는 말이 무엇인가. 나는 또 어떻게 살아야 마땅한가. 그런 질문을 받고, 또 답을 얻어보기 위해 이렇게 멀리 그리스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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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고 여행하는 삶을 삽니다. 책이나 영화, 연극을 텍스트 삼아 일상의 삶을 읽어내고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북클럽 문학의숲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