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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 이제는 옛것이 됐습니다. 각자의 꿈을 위해 '자발적 별거'를 선택한 부부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내게 가장 필요한 건, 밥은 어떠해야 성공적으로 잘 지은 거라는 이분법적인 시각 말고, 그날의 상태에 따라 감탄하고 변주할 수 있는 유연함이었다
 "남편 아침밥 안 차려줘서 좋지 않아요?" 최근 나를 가장 당황하게 만든 질문이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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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반려인이나 아침밥을 챙겨 먹는 타입이 아니다. 지난 약 5년의 동거 기간 동안 아침밥은 먹고 싶은 사람이 직접 챙기거나 나눠 먹었을 뿐이고, 그마저도 손에 꼽는다. 결혼했다고 해서 달라질 일도 만무하니, 한동안 아침밥이라는 단어 자체를 유심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볼일이 생겨 새로 이사한 지역의 은행에 들어갔다가 직원과 잠깐 대화를 나누게 됐다. 가볍게 동네 이야기로 시작한 스몰 토크가 어느덧 결혼과 이사 같은 신상정보로까지 순식간에 이어졌다. 마침 그분도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주말부부로 지냈던 경험까지 겹치다 보니 공통점을 느끼며 술술 대화가 오갔다. 그러던 중, 어느 한 마디에 갑자기 내 머리가 땡그렁 울리며 얼어붙었다.

"그래도 주말부부 할 때는 남편 아침밥 안 차려줘서 좋지 않아요?"
"네? 어... 음..."


무슨 말을 골라야 할지 몰라 잠시 동안 버퍼링에 걸린 듯 머뭇거렸다. 가끔 이렇게 나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현실에는 일어나는 일들을 들으면 황당하게 말문이 막혀 버리곤 한다. 이내 겨우 튀어나온 말은 내가 생각해도 좀 이상한 말이었다.

"저기, 그게... 결혼은 했지만 그런 결혼은 아니에요. 아침밥은 안 차려줘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건넨 말에 순간 다시 정적. 어차피 대화가 더 길어질 자리도 아니고 하니 그렇게 우리는 사회적인 미소와 인사를 보내며 대화를 급히 마무리했다.

'그런 결혼' 아닌 결혼 

"나 오늘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지원했어!"

지난 2018년 12월. '삑, 삑, 삑, 삑, 삐리릭!' 도어락 키가 열리는 소리에 부리나케 현관으로 달려나가며 퇴근하고 돌아온 반려인을 맞이한 나의 저녁 인사다. 그의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랗게 커지며 "응? 뭐라구? 정말로?" 황당하지만 재미있다는 표정에 곧 장난기 어린 미소가 번진다.

"아니 그게 말이야, 내가 딱 워홀을 지원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거든? 오늘 갑자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그런데 될지 안 될지 몰라. 그리고 정말 갈지 안 갈지도 모르고. 일단 한번 해본 거야!"

정신을 차려보니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가서도 혼자 들떠서 캐나다에 가면 무슨 일을 할 건지, 어느 지역으로 갈 건지, 어떤 여가 생활을 즐기고 싶은지를 잔뜩 떠들고 난 후였다. 그러면서도 내가 정말 가게 될지, 언어도 문화도 낯선데 가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쩔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반려인은 이렇게 맞장구치기 바빴다. 

"뭘 걱정해! 가서 뭐든지 경험하고 올 좋은 기회잖아!"

그리고 가장 마지막이 되어서야 너만 두고 떠나는데 괜찮겠느냐는, 약간의 미안한 마음을 담아 동의를 구했던 것 같다. '아마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 같은 상황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돌아온 반려인의 대답은 언제나 그렇듯 내 기대보다 더 따뜻했다.

"설마 내 허락을 구하는 건 아니지? 당연히 가야지! 떨어져 있는 건 좀 슬프지만, 나도 너무 기쁜 걸. 너의 소원이었잖아!"

허락 아닌 존중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설명회에 참석한 날 찍은 사진.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설명회에 참석한 날 찍은 사진.
ⓒ 김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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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소원. 나도 잊고 지내던 소원이었다. 언젠가 침대 맡에서 지나온 세월을 제법 진지하게 추억하던 밤이 떠올랐다. 그날 나는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모았던 돈으로 어학연수나 워킹홀리데이, 아니면 여행이라도 길게 떠나보고 싶었지만,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기 위해 모두 포기했더라는 말을 했었다.

어릴 때부터 세계를 호방하게 누리는 모험가와 여행자를 동경했었는데, 그저 동경에만 머무르는 현실에 발 딛고 산 지가 오래였다. 그러고 나서 아직도 그 꿈이 소원으로 남아 있다고까지 이야기했던가. 반려인은 그 말을 꽤 오래 기억해주고 있었다. 하긴 뭐 사회에 굵직한 발자취를 하나 남기겠다거나, 서울 한복판에 수십 평 대 아파트를 자가로 소유하는 것에 비하면 제법 소박하고 실현이 가능할 것 같은 소원이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살면서 제일 재밌는 몇 가지 일은 여행을 떠나거나 해외 드라마, 영화를 보며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 일이었다. 마침 K-pop이 부상하면서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은 해외 친구들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입시나 시험을 위해 준비하던 외국어는 그렇게도 지겹고 어렵기만 했는데, 누군가와 소통하고 문화를 알아가기 위해, 접하는 세상을 넓혀가기 위한 외국어는 배우고 싶은 열정이 차올랐다.

아마 그 소소한 재미들이 인생의 방향을 조금씩 만들어 갔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과 말에서 스쳐가던 일이 어느덧 현실이 되고 있었다. 지난 2월 중순, 정말 캐나다 이민성에서 워킹홀리데이 초청비자가 도착하고야 만 것이다.
  
"그럼 결혼은 왜 했어?"
 

아마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저렇게 자유롭게 살고 싶으면 결혼은 왜 했어?' 아니, 사실은 가끔씩 들려오는 내 마음의 소리다.

우리도 처음부터 결혼할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동거인으로 지내오면서 큰 불편함 없이 만족스러웠고, 혼인제도 자체가 가부장제의 산물이기도 하니 되도록 피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회는 법률혼 외의 관계는 가족으로 전혀 인정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크고 작게 쌓여가는 차별에 우리는 결국 백기를 들어 버렸다.

우리의 결혼에는 달콤한 프러포즈나 꽃잎 휘날리는 화려한 결혼식이 없었다. 대신 세금공제 혜택과 주택청약 순위, 배우자 수당, 재산과 연금의 법적인 보호 등의 현실적인 근거가 있다. 게다가 직장에 당당히 알리고 신혼여행 기간을 확보할 수도 있었으니 여러모로 이득은 이득이었다.

그렇다고 경제적 이유만으로 어쩔 수 없이 결혼했던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했던 건 우리가 이미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지 오래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함께 지내는 게 즐거웠고 위로가 되었다.

만약 누구나 법률혼이 아니어도 가족을 선택해서 구성할 수 있고, 그에 합당한 혜택을 차별 없이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그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는 생활동반자법이란 게 요원해 보였고, 우리는 상대적으로 손쉬운 고민으로 법률혼을 결정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결혼이란
 
 각자의 집에서 살 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차이점들을 발견해야 했고, 때로는 고쳐나가야 했다.?
 우리는 결혼했지만 "그런 결혼"은 아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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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우리는 차별적 관습에 따르지 않는 평등한 결혼생활을 위한 원칙을 세웠고 여러 가지 협의까지 마쳐 놓았다. 아내와 남편, 며느리와 사위 등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그대로 수행하지는 않기로 했다. 다행히 둘의 마음이 찰떡같이 잘 맞아서 몇 번의 큰 고비가 왔어도 원칙을 잃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프러포즈나 축가가 울려 퍼지진 않았어도, 흥에 겨울 때면 기타를 부둥켜안고 말도 안 되는 세레나데를 불러주는 일상이 있다. 지친 하루를 보내고 나서 누가누가 더 웃기고 민망한 춤을 잘 출 수 있는지, 서로를 웃겨주기 위해 한바탕 춤 파티를 여는 날들이 있다. 금요일 밤에는 함께 콘솔 게임기를 붙잡고 게임을 하거나 넷플릭스를 보며 새벽을 불태우고, 달큰한 땀 냄새를 맡으며 잠에 빠져드는 하루가 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끈끈한 유대감과 충만한 감정을, 안전한 관계와 공간을 만들어낸다.

내년이면 나는 최소 6개월 동안 캐나다에서 홀로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런 시간들이 몹시 그리워질 것 같다는 게 지금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쉬운 일이 없겠지만, 많이 부딪치고 넘어지면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할 생각이다. 나도 모르던 내 안의 어둡고 축축한 곳들을, 강하고 반짝이는 것들을 마주하게 될 날을 고대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이뤄가는 데 있어 용기를 북돋워 준 반려인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우리에게 결혼이란, 지금처럼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함께 성장하면서 재미난 그림을 그려나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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