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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려견 은이에게.

은이야. 너에게 이렇게 긴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인 것 같구나.

먼저 좀 서운하지 않았니? 그동안 너의 생일엔 늘 맛있는 간식이나 장난감 등 네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선물했는데 이번엔 뭔지도 모를 적금을 받은 게 말야. 너는 이 적금이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겠지만, 나는 사람으로 치면 중년인 7살이 된 네게 꼭 필요한 선물이라 생각했어. 궁금하지 않니? 내가 왜 널 위해 적금을 들었는지 말이야.

그 이야길 시작하자면, 너를 처음 만난 4년 전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사실, 그 때 너를 우리 가족으로 맞이한 건 내 외동아들 때문이었단다. 형제 없이 홀로 지내는 게 좀 외로워 보이기도 했고, 유난히 친구 사귀기를 힘들어해서 네가 내 아들의 외로움도 덜어주고, 친구를 사귀는 데 도움을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어.
 
 나의 반려견 은이. 은이는 우리 가족들의 '생명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나의 반려견 은이. 은이는 우리 가족들의 "생명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 송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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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한 민간 유기견 보호소를 찾아갔고, 그 곳을 통해 임시보호 가정에 위탁되어 있는 너를 만났지. 넌 처음 본 나를 반겨주더니, 내 발치에 배를 드러내고 누웠지. 나는 그게 너도 우리와 가족이 되고 싶다는 표현처럼 느껴졌어. 그렇게 우린 2015년 6월 19일에 가족이 되었지. 당시 넌 추정나이 3살이었지만, 정확한 생일은 알 수 없었어. 그래서 우린 너와 가족이 된 이 날을 너의 생일로 정했단다.

처음 네가 우리 집에 왔을 땐 넌 무척 긴장되어 보였어. 하지만, 너란 강아지. 얼마나 눈치가 빠르고 똑똑하던지, 하루가 지나자 정확하게 배변 패드에만 배설을 하기 시작했고, 곧 집안을 활보하며 적응하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내 아들의 사회성발달을 돕는 보조자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내곤 했지. 하굣길에 너를 데리고 아들을 마중 나가면 친구 몇 명이 너를 보고 싶다며 우리 집까지 따라와 아들의 친구가 되어주었잖아.

'수단'이 아닌 '존재' 그 자체로 기쁨인 생명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마음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어. 내 아들을 위해 널 데려온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네가 '수단'이 아닌 '존재'로 느껴지게 되었단다.

우리와 생김새는 다르지만 네게도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었어. 네가 사람의 손길을 원할 때, 하기 싫은 양치질을 할 때, 먹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각기 다른 표정을 짓는다는 걸, 심지어 비오는 날 조금 우울해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특히 내가 눈물을 흘릴 때면 넌 내게 가만히 다가와 보드라운 털을 내밀며 내 감정에 함께 머물러 주었어.

유명한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씨는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된다>에서 이렇게 썼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입양했더라도, 일단 입양했다면 가족이나 친구로 대해줘야 한다'라고 말이야. 또, '반려견이 진정한 가족 혹은 친구라면, 원치 않는 손길에 싫다고 반응하는 반려견을 무조건 복종시키려 들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존중해주어야 한다'라고 덧붙였지.

우린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넌 내 아들의 사회성발달을 돕는 보조자가 아니라는 걸, 존재 그 자체로 기쁨인 소중한 생명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 그리고 네가 우리의 말과 표정을 이해해가듯, 너의 눈빛과 몸짓에서 네가 하고픈 말을 알아챌 수 있게 되었단다.

동물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그 불편한 말

너와 함께 하면서 우리 가족은 '생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졌어. 예전엔 모든 걸 '인간 중심'으로 생각했다면, 이젠 모든 생명은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됐지. 그래서 인간의 욕구를 위해 동물들을 이용하는 일에 반대하게 되었단다.

일상에서 동물실험을 한 생활용품을 사용하지 않게 됐고, 이젠 가죽이나 동물의 털을 이용한 의류도 착용하지 않는단다. 난 고기를 아예 먹지 않지만, 고기를 좋아하는 다른 가족들도 우리가 먹는 동물들도 생명답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

<길고양이로 사는 게 더 행복했을까>의 박은지 작가가 쓴 것처럼 나는 요즘 '동물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그 말, 모두가 꺼리김없이 던지는 그 말'이 참 불편하게 느껴진단다.

너와 함께 한 시간이 많아지면서, 차츰 네가 늙고 병들었을 때를 상상해 보게 됐어.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일이지만, 네가 나보다 먼저 할머니가 될 거라는 건 슬프게도 자연의 섭리잖니. 병원에 갈 일이 잦아지고 너를 치료하는데 목돈이 들어간다면, 혹시라도 목돈을 들여서도 완치할 수 없는 병에 걸린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 날 밤. 나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단다. 지금은 그 상한선이 아주 많이 올라갔지만, 남편은 처음 너를 데려왔을 때부터 '금액 상한선'이 있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노선을 택했고, 나는 이런 일로 갈등이 생길까 봐 지레 걱정이 되었어.

게다가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동물의 생명이 사람의 것보다, 아니 돈보다도 못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 같아. 작년에 속초에 큰 불이 났을 땐 말이야. 어떤 어미 소가 새끼를 밴 채로 탈출을 했어. 그런데 그 뉴스를 본 몇몇 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그 소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소는 재산이기 때문에 죽으면 재산 손실로 보상받을 수 있는데, 화상을 입어 쓸모없는 소가 된 채로 살아 있으면 보상도 받지 못한다는 게 이유였어.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생명을 재산 취급하는 모습들에 무척 화가 나. 하물며, 너를 두고 '돈'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상상만 해도 너무 끔찍하더라구.

반려견을 위해 적금을 들다

지난달 예방접종을 위해 동물병원에 갔을 때 나는 원장님께 이런 고민을 털어놨어. 원장님은 "많은 보호자들이 그런 고민을 하세요. 그래서 펫 보험도 가입하는데 사실 보험은 제한조건이 너무 많아요. 차라리 강아지 앞으로 적금을 하나 들어두시는 게 어때요? 보험에 낸 돈은 강아지가 아프지 않으면 없어지는 돈이지만, 적금은 사용하지 않으면 보호자님 재산이 되니 더 낫지 않을까요?"라고 조언해주셨단다.

아! 정말 이거다! 싶었어. 그래서 이번 네 생일에 너를 위한 적금을 들었단다. 마침, 내가 거래하는 은행에 반려동물을 위한 적금 상품이 있더라고. 매달 5만 원씩 꼬박꼬박 모아서 네가 늙어서 병에 걸리게 된다면, 그때 치료비로 쓸 계획이란다.

이 적금은 너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이기도 해. 네 생명을 두고 경제 논리로 고민하지 않기 위해서, 가족들 간에 갈등이 생기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차곡차곡 이 통장에 모아둘게. 네 생명 앞에 절대로 미안해지는 일은 없도록 할거야.

하지만, 은이야. 이 적금은 안 쓰는 게 더 좋겠지? 은이가 할머니가 되어도, 건강하게 잘 지낸다면 이 통장은 쓸 일이 없을 거야. 부디, 우리 건강하자. 먹을 것도 좀 더 신경 쓰고, 정기검진과 예방접종도 꼬박꼬박 하고. 최대한 오래오래 함께 하자꾸나.

이번 네 생일에는 '생명의 가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구나. 그리고 기도해.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들이 평등하게 존중받을 수 있기를 말이야. 적금으로 마음이 조금 편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유린 당하는 많은 생명들을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아파온다. '인간 중심' 아닌 '생태 중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너의 7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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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