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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인 종로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600여 년 동안 문화의 역사를 일궈온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는 종로에서 나고 자라며 예술을 펼쳐왔거나, 종로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 시대의 예술인들을 인터뷰합니다.[편집자말]
 김뻑국예술단 사무실에 고이 간직해놓은 감사패들
 김뻑국예술단 사무실에 고이 간직해놓은 감사패들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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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이어집니다)

화려한 무대에 서면서 높은 인기를 구가했지만, 그는 예술단 창단 이래 노인들이나 소외 계층을 위한 자선 공연을 꾸준히 열면서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노태우 대통령 표창장(1998년)부터 자랑스러운 서울 시민상(1994년), 국방부 장관상(1996년), 김대중 대통령 감사패(1998년) 등 수많은 표창장과 감사패는 그의 탁월한 재능과 봉사정신을 인정받은 덕분에 받은 것들이다.

환갑을 맞이했을 때에도 자비를 들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을 위한 잔치를 열었고, 중풍에서 회복돼 복귀했을 때에도 사비를 털어 종로 각지에서 왕성하게 공연을 펼쳤다.

"나쁜 소문은 빨리 퍼지잖아요. 풍으로 쓰러졌다고 이야기가 도니까 일감이 싹 끊기지 뭐예요. 내가 아직도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고 종로에서 열일곱 번을 공연했어요. 10원 하나 찬조금 못 받고, 도리어 내 돈을 3억 정도 썼죠. 김덕수 사물놀이패는 무료로 와서 공연도 해주고 했는데 그래도 비를 맞는다거나, 공연을 신명나게 하다가 악기 파손되고 하면 물어주고 그랬죠.

환갑잔치 할 때도 와준 사람들을 어디 그냥 보낼 수가 있나요. 쌀 다섯 가마니로 백설기 떡을 맞춰서 돌리고 그랬다고. 도와주러 오신 분들 차비도 챙겨드리고 했죠. 그때도 1억 정도를 썼어요. 모든 경험을 다 해보니까 건강이 최고예요. 내가 겨울에 공연하지 않는 것도 그 이유예요. 노인 양반들이 추운 날에 내 공연 본다고 무리해서 나오다가 넘어지거나, 쓰러지면 안 되잖아."


"베푸는 일만큼 행복한 게 없어요"
 
 김뻑국예술단을 함께 지켜온 제자이자 국악인 김순녀 선생과 함께
 김뻑국예술단을 함께 지켜온 제자이자 국악인 김순녀 선생과 함께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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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재담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지만, 그는 50여 년간 곁을 지킨 국악인 김순녀씨와 함께 국내외로 교육과 공연을 활발히 하면서 우리나라 전통예술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2012년 아리랑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아리랑을 영어·일본어·중국어로 개사해 불러온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래도 말로 하는 것보다 노래로 따라 부르면, 배우기가 더 쉽잖아요. 외국에 초대받아가서 아리랑도 많이 가르쳤어요. 얼마 전에는 베트남에서도 무료 강습을 해줬거든요. 고맙다고 감사패도 받았죠. 아리랑을 한국어로 배워가지고 공연을 하는데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요."

종로3가에 위치한 예술단의 자리를 그대로 지키면서 국악과 아리랑 강습을 이어가고, 꾸준히 공연을 펼치는 것도 우리나라 전통예술의 명맥이 더 오래 이어지길 바라는 바람에서다.

"국창, 명창은 다 여기 종로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예술인, 연예인 등 각종 재주꾼 중에서 여기 안 거쳐 간 사람이 거의 없어요. 나도 그래서 종로를 못 떠나고, 여기서 40년 넘게 있는 거죠. 매주 금요일마다 아리랑 무료 강습을 꾸준히 해왔는데, 배워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해요. 남한테 공짜로 베푸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거예요.

장구랑 북 수업도 하고 그러는데 취미로 하시는 분들이 많이들 찾아와요. 치매 예방에도 효과가 있고, 건강관리에도 좋거든요. 수업시간 1시간이라고 해도 다들 2~3시간을 하고 가요. 그래서 수강생도 많이 못 받아요. 여기서 수업 받고 나간 사람들 중에서 지금 활동하는 분들도 꽤 많죠."


"무대에서 죽을랍니다"
 
 85세에도 예술인생을 이어갈 수 있어 행복하다는 김뻑국 선생
 85세에도 예술인생을 이어갈 수 있어 행복하다는 김뻑국 선생
ⓒ 김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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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85세라는 나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또렷한 기억력과 녹슬지 않은 재담 실력을 뽐내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들을 잊지 않고, 죽는 날까지 자신의 재주를 펼치며 세상 사람들을 웃게 하겠다는 그의 바람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60년 넘게 이 길을 걸다보니까 해외 초대 공연도 원 없이 가보고, 아직까지도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말이에요. 남들은 60대면 은퇴하고 그러는데 85살 먹고도 놀지 않고 하니까 그 이상 더 바랄 것도 없어요. 이렇게 끝까지 재담가로 살다가 무대에서 죽을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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