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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선생님, 새 차 타고 이북 고향 가셔야죠'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이 사용하던 승용차가 노후되어 도로에서 멈추는 등 안전문제로 더이상 운행이 어려워지자 이 소식을 들은 노동자들이 뜻을 모아 승용차를 기증했다. 14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백기완 소장과 금속노조 김호규 위원장, 공공운수노조 최준식 위원장 참석한 가운데 기증식이 열렸다.
▲ "백기완 선생님, 새 차 타고 이북 고향 가셔야죠"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이 사용하던 승용차가 노후되어 도로에서 멈추는 등 안전문제로 더이상 운행이 어려워지자 이 소식을 들은 노동자들이 뜻을 모아 승용차를 기증했다. 14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백기완 소장과 금속노조 김호규 위원장, 공공운수노조 최준식 위원장 참석한 가운데 기증식이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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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좀 멋쩍지 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쑥스러운 듯 말을 아꼈다. 14일 오전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의 부축을 받으며 지팡이를 짚고 전국금속노조 사무실에 들어오면서였다. 백 소장은 이날 새 차를 기증받았다. 소감을 묻자 '거리의 백발투사'답지 않게 "멋쩍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이날 기증받은 차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제안하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십시일반 모금해서 구입한 '소나타'였다. 이를 기념해 이날 오전 11시에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조촐한 기증식을 열었다. 행사장 앞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은 현수막이 내걸렸다.

"백기완 선생님, 새 차 타고 이북 고향 가셔야죠?"

[새 차의 의미] 백 소장에게 승용차는 '노동 연대의 발'
 
눈시울 붉어진 백기완 소장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이 사용하던 승용차가 노후되어 도로에서 멈추는 등 안전문제로 더이상 운행이 어려워지자 이 소식을 들은 노동자들이 뜻을 모아 승용차를 기증했다. 14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기증식에서 백기완 소장이 감사 인사를 하며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다.
 백기완 소장이 감사 인사를 하며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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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소장이 차를 기증받은 사연은 이렇다. 87세의 고령인 데다 과거 독재정권에서의 고문 후유증을 앓는 백 소장에게 자동차는 탄압받는 노동자들에게 갈 수 있는 연대의 도구이자 발과 같았다.

정리해고에 맞서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부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일 때도 '희망버스' 일행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서 응원했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참석할 수 있었던 것도 자동차가 있어서였다.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고 김용균 씨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재해로 사망한 뒤에 결성된 김용균 청년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으로 달려갔던 것도 백 소장에게 차가 있어서 가능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위험한 주행이 계속됐다. 백 소장의 차는 운행 중 시동 꺼짐 현상이 잦았고, 정비를 해도 이런 현상은 멈추지 않았다. 이 말을 들은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이 지인들에게 차 선물을 제안했고, 이 말이 금속노조 김호규 위원장과 공공운수노조 최준식 위원장에게 들어갔다. 그 때부터 정규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비공개 모금을 해서 백 소장의 새 차를 산 것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힘을 합쳐 마련한 차였다.

[벽돌 한 장씩] "1만원씩 노동자들의 마음을 모았습니다"
 
백기완 소장 손 꼭 잡은 금속노조 위원장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이 사용하던 승용차가 노후되어 도로에서 멈추는 등 안전문제로 더이상 운행이 어려워지자 이 소식을 들은 노동자들이 뜻을 모아 승용차를 기증했다. 14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금속노조 김호규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는 백기완 소장 손을 꼭 잡고 있다.
 금속노조 김호규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는 백기완 소장 손을 꼭 잡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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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금속노조 김호규 위원장은 "오늘 이 자리는 백 선생님께서 소문내지 말고 조용히 행사를 치르라고 해서 마련된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행사"라면서 "1만원을 낸 활동가도 있고, 그 이상을 낸 노동자도 있는데 벽돌을 한 장씩 쌓듯이 이렇게 십시일반해서 구입한 의미 있는 차"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특히 "이 차는 노동자들이 피땀을 흘려서 만든 차이기에 더 의미가 있다"면서 "이 차를 타고 고향 황해도 구월산에 가는 날, 통일이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도 "거동하시기 힘든 몸으로 항상 투쟁 현장을 찾아오신 백 선생님에게 고마워하는 노동자들의 마음을 모았다"면서 "앞으로 이 차를 타고 좀 더 편하게 노동자들에게 다가오셨으면 하는 마음이고, 늘 건강하고 힘찬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수호 전태일 재단 이사장은 축하의 인사말을 하면서 백 소장에 얽힌 과거 일화를 소개했다.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에 백 선생님이 장준하 선생님과 같이 긴급조치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끌려갔습니다. 백 선생님과 함께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할 때 장 선생께서 심문관들에게 당부했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를 고문하는 건 좋은 데 나랑 같이 끌고 온 백기완에게는 손을 대지 마라. 우리나라의 국보와 같은 존재이다. 함부로 훼손하지 마라.'

백 선생님은 지금도 노동운동의 현장에 함께하면서 우리에게 큰 힘을 주시고 올곧은 마음과 당당하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몸으로 보여주고 계신 분입니다. 우리 시대의 등대와 신호등 같은 존재인데, 후배 노동형제와 자매들이 이번에 정성을 모아주신 것을 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날 행사 사회를 맡은 금속노조 김원근 대외협력실장은 "6년 전엔 GM노동자들이 말리부 차를 사줬고, 이번에 현대차인 소나타를 6년 타신 뒤, 그 뒤 6년은 기아차, 또 그 뒤 6년은 쌍용차까지 타시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마움] "통일과 노동해방 되는 날까지 이 차 타고 달리겠다"
 
'백기완 선생님, 새 차 타고 이북 고향 가셔야죠'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이 사용하던 승용차가 노후되어 도로에서 멈추는 등 안전문제로 더이상 운행이 어려워지자 이 소식을 들은 노동자들이 뜻을 모아 승용차를 기증했다. 14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공공운수노조 최준식 위원장,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백기완 소장, 금속노조 김호규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기증식이 열렸다.
▲ "백기완 선생님, 새 차 타고 이북 고향 가셔야죠" 14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공공운수노조 최준식 위원장,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백기완 소장, 금속노조 김호규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기증식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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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소장은 "갑자기 목이 멘다"면서 "나 같은 늙은이가 무슨 쓸모가 있다고 살기도 힘든데 없는 주머니를 털어서 나에게 자동차를 만들어준다고 하니 이게 될 말인가요"라고 반문하면서 입을 열었다. 백 소장은 8.15 해방 직후에 겪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울에 가면 중학교 다닐 수 있고, 네가 좋아하는 공부뿐만 아니라 축구선수도 될 수 있다고 해서 13살 때 남쪽으로 내려왔어요. 그런데 맨발로 다니니까 동네 꼬마들이 나만 보면 꿀밤을 때리더라고. '야 이 자식아! 서울에서 거지 노릇을 하려면 신발이라도 신고 다녀야지.'

그런데 하루는 복동이라는 친구가 자기 집에 가자는 겁니다. 맨발을 걸레로 털고 방으로 들어갔더니, 그 애 엄마가 '똑똑하게 생겼는데, 신발도 신지 않는 녀석을 데리고 왔다'고 한마디 던지더라고. 밥상이 들어왔는데, 내 밥그릇과 숟가락은 없어. 그럼 앉아 있을 수가 없잖아. 그래서 나가려는 데, 복동이가 앉으라고 해서 다시 주저 않았더니, 그 애 아버지가 자기 밥그릇을 주면서 한 마디 하고 자리를 뜨더라고. '에이~ 잘 데 없으면 또 와 인마!'

그분 직업이 마부야. 하루는 마부 아저씨가 노래하면서 마차를 끌고 왔어. 동태 한 마리를 사가지고 왔더라고. 여덟 식구인데 동태 한 마리로는 국을 끓일 수 없잖아. 내 친구 그릇과 큰 형의 그릇에도 동태가 없어. 마부 아저씨의 그릇에는 동태 꼬랑지가 있더라고. 그런데 숟가락을 들다말고 '아 오늘은 입맛이 없구먼'이라고 말하면서 밥그릇을 내게 주고 나가시더라고."

백 소장은 "내가 통일문제연구소를 한다니까 통일이 뭐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통일은 돈이 주인인 세상을 사람이 주인인 세상으로 만드는 것, 주인을 빼앗아 오는 것이 통일"이라며 "이런 고답적인 이론을 박복동이라는 내 동무의 밥상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부 아저씨가 밥그릇을 내게 던져주면서 그 이론을 던져주고 나갔다"면서 "있는 놈과 나쁜 놈들의 자기 배만 불리는 게 아니라 나보다 더 배고프고 아픈 사람이 있으면 밥그릇을 통째로 주어야 하는 것,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을 완결하는 게 통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차를 기증한 노동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말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나는 이제 수명이 다해서 5초 뒤에, 또는 한 시간 뒤에 꼴까닥할지 몰라. 죽을 때 죽더라도 끝나지 않는 수명이 있어. 사람이 주인인 세상을 만드는 일이야. 이 차 타고 돈이 주인인 세상을 뒤집고 사람이 주인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숨 바치고 싸우겠다, 이거야.

노동자들이 사주는 차를 벌써 두 번이나 갈아탔는데, 여러분들이 사준 차를 타고 노동해방 세상 이룩하는 날까지 내달릴 작정이오. 좋은 차를 늙은이에게 줘서 정말 고맙소."

이날 조촐한 행사는 쑥스럽게 시작해서 노동해방 만세 삼창으로 끝이 났다. 백발의 거리투사다운 시작과 마무리였다. 행사를 마치고 거리로 나서면서 백 소장은 한 마디 던졌다.

"고맙고, 미안하지 뭐. 여전히 멋쩍어."
 
'백기완 선생님, 새 차 타고 이북 고향 가셔야죠'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이 사용하던 승용차가 노후되어 도로에서 멈추는 등 안전문제로 더이상 운행이 어려워지자 이 소식을 들은 노동자들이 뜻을 모아 승용차를 기증했다. 14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백기완 소장과 금속노조 김호규 위원장, 공공운수노조 최준식 위원장 참석한 가운데 기증식이 열렸다.
▲ "백기완 선생님, 새 차 타고 이북 고향 가셔야죠"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이 사용하던 승용차가 노후되어 도로에서 멈추는 등 안전문제로 더이상 운행이 어려워지자 이 소식을 들은 노동자들이 뜻을 모아 승용차를 기증했다. 14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백기완 소장과 금속노조 김호규 위원장, 공공운수노조 최준식 위원장 참석한 가운데 기증식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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