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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가 지난 12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빈소를 조문한 뒤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 전 의원, 삼남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임의장과 인사를 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가 지난 12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빈소를 조문한 뒤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 전 의원, 삼남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임의장과 인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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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다가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끌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한 제자의 얼굴과 그가 학창시절에 쓴 시가 떠올랐다. 

'그 제자'는 1980학년도에 이대부고 고2 학생으로 그의 아버지는 '내란사건'에 엮여 사형수로 수감 중이었다. '내란사건'에 엮인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고, '그 제자'는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다. 

1980년, 내 기억 속에 김홍걸은 한창 생기발랄할 청소년기를 보내야 할 때였지만, 도무지 말이 없었다. 교내 어디에서도 고개를 치켜들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마 신군부의 탄압을 받던 아버지 걱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는 수업시간 그와 눈빛이 마주칠 때마다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라'고 이심전심의 말을 눈빛으로 전하곤 했다.

그해 늦가을. 그 제자는 하굣길에 교무실 내 자리로 찾아와 겸연쩍은 표정으로 봉투 하나를 두고 떠나갔다. 그가 떠난 뒤 봉투를 펼쳐보니 노트에 만년필로 쓴 시 두 편이 있었다. 그중 한 편을 소개한다.
 
가을

무덤 뒤켠에 사는 시인은
거리에서 잔뜩 취하고는
곧잘 이곳을 지나간다.

그때마다 그는
들국화 따위를 짓밟고는


영원의 꿈에 젖고 싶었지만

그런 풍성한 가을은 이제
이 근처엔 없었다.

그 근처에 낯선 화가 하나가
맥 빠진 그림 같은 걸 그리고 있었다.

- <우리생활> 17호 1981. 2. 5
 
그로부터 꼭 39년이 지난 오늘, 나는 뉴스 속의 그 제자를 골똘히 바라봤다. 어머니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서 꼿꼿이 서 있던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아버지에 내란혐의 누명을 씌운 신군부 수장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씨 앞에서 말이다. 추측컨대, 그는 그 시절이 떠올랐나 보다. 그 제자 옆에 서 있던 형도 그 순간만큼은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조문객과 상주의 어색하면서도, 한국 현대사의 증인이 마주하고 있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나는 여러 생각과 말들이 떠올랐다. 나는 이 말들을 문상 온 이순자씨와 빈소를 지키는 상주들에게 전하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과 이웃들에게도.
 
"이것이 인생이다." "이것이 역사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된다." "음덕양보(陰德陽報)." "용서는 사람의 덕행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마 18: 21-23)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 (눅 6: 37-39)

"나를 위해 용서하라. "용서하는 사람은 지는 게 아니라 그게 이기는 길이다." "용서의 대전제는 가해자가 먼저 참회하고 회개해야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질 수 있다." "쉽사리 용서해 주면 그 잘못을 반복한다."

"내가 살아서 남을 용서한 것만큼 하늘나라에서 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고인은 이 모든 상처들을 당신 가슴에 끌어안고 하늘나라에 가셨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서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이희호 여사의 유언이 쟁쟁히 들리는 것 같다. 우리 민족의 평화, 화해 그리고 통일의 그 날이 오리라 기대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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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