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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하는 일. 일하면서 떠올랐던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밤 아홉 시가 조금 지났을 때 무심히 스마트폰을 들었는데 때마침 카카오톡 어플 오른쪽 모퉁이에 빨간색 숫자 1이 생겼다. 이내 빨간 숫자는 2, 3, 4... 계속 늘어갔다. 어플을 열어보니 회사 단톡방에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꽤 늦은 시간인데도 회사에 남아 일을 하던 후배 직원 하나가 '일을 잘 마쳤다'라고 남긴 메시지가 대화의 시작이었다.

야근을 성실히 수행한 후배 직원에게 담당 상사는 고생했다는 메시지를 바로 남겼다. 그리고 이후엔 대부분 엄지척 이모티콘들이 이어졌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야근한 직원을 응원하는 이모티콘들이었다.

어떤 마음으로 보낸 이모티콘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평소 야근을 지양하는 신념을 유지하며 10여 년 이상을 일해 온 내게 밤 늦은 시간 '야근을 잘했어요~'라는 메시지가 영 탐탁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 회사 동료들이 단체 카톡방에서 주고 받은 몇 개의 대화 목록을 보면서 연장노동, 일명 야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자발적으로 야근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노동자들은 대체로 관리자가 일을 시키기 때문에 야근을 한다.
 자발적으로 야근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노동자들은 대체로 관리자가 일을 시키기 때문에 야근을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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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을 하고 싶은 노동자가 있을까? 있을 수 있다. 1일 8시간인 법정 노동시간 이후에 일을 했을 때 연장 노동에 대한 임금이 추가로 주어질 경우 그렇다. 자신이 누릴 여가시간보다 추가로 받는 월급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노동자가 있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야근을 할 것이다. 시간이냐 돈이냐, 어디에 더 가치를 두는지는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를 것이므로, 돈을 위해 야근을 한다고 해서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런데 내가 일하는 곳은 연장노동을 해도 추가로 주어지는 수당이 없다. 단, 관리자가 공식적으로 노동시간으로 인정하는 경우에만 추가 수당을 받는다. 하지만 공식적 연장 노동은 대개 주말이나 밤새워서 일할 때만 인정을 해준다. 평일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건 회사에 봉사하는 것이다. 물론 회사는 직원들에게 평일 연장 노동 시간을 고려해 월급이 책정되어 있다고 말한다.

직원들이 평소 야근할 것을 고려해 하루에 정해진 시간만큼 추가로 월급을 더 주는 그런 회사가 정말 있을까? 회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나같이 딱 8시간만 일하고 퇴근하는 직원들한테는 하지도 않은 노동에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 된다. 회사가 바보인가? 아니면 그 말을 믿는 노동자가 바보인가? 아니면 참 착한 회사인가?

아무튼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내가 일하는 직장에선 평일에 8시간을 넘겨 일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노동자에겐 손해다. 뭐? 일에 미친 사람은 평일 연장 노동도 즐긴다고? 맞다. 미치면 그렇게 할 수 있겠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그런 이들이 몇몇 있지만 주로 벤처기업 창업자들이 그렇지 않나 싶다. 달갑지는 않지만 이 경우도 야근을 하고 싶은 노동자가 있다는 편에 넣어두겠다.

손해보는 야근을 왜 하는 걸까?

자발적으로 야근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노동자들은 대체로 관리자가 일을 시키기 때문에 야근을 한다. 즉, 회사가 일을 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관리자들은 명시적으로 야근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냥 하루 8시간 안에 끝낼 수 없는 양의 일을 요구할 뿐이다. 프로젝트 일정상 시급하다는 이유를 대면서.

그나마 괜찮은 관리자를 만났다면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다. "이 건은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야. OO가 오늘까지 이 일을 해주면 프로젝트 전체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거야. 힘들기는 하겠지만 며칠만 고생하자." 이런 말을 듣는다면 '아! 내가 회사에서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며 기꺼이 야근을 할까? 뭐 그런 노동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실제로 강압적 지시든, 은근한 설득이든 관리자의 지시에 노동자들은 대체로 따를 수밖에 없다. 회사는 관리자의 손에 '인사평가'라는 무기를 쥐여줬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눈에 띄게 훌륭한,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로 평가자의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좋은 점수가 돌아가기 마련이다. 인사평가에는 주관이 상당히 개입되는데 이 인사평가 결과가 승진과 연봉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문제다.

때문에 노동자들은 관리자의 업무 지시에 속으로는 불평하고 투덜대면서도 늦은 시간까지 상사의 지시를 따르곤 한다. 대체로 회사에는 고만고만한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노동자 입장에서 관리자의 눈에 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앞서 회사 단체 대화방에 야근 결과를 알리는 것처럼 암묵적 경쟁 상태에 놓인 노동자는 관리자와 동료들에게 자신의 노고를 호소하곤 한다.
     
한 노동자의 순응적 야근이 미치는 영향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한때 화제가 되었던 책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 오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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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의 지시를 밤 늦게까지 이행해서 칭찬을 받는 사람이 생기면 주위 동료들도 이젠 야근을 쉽게 거부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회사가 오랜 세월 노동자들을 통제해 온 방식이다. 내가 있는 회사에서도 이 전통적인 방법은 여전히 효과가 있다. 물론 나처럼 관리자에게 법정 노동시간 등을 운운하며 8시간만 일하고 "퇴근하겠습니다"를 외치는 이들이 간혹 있기는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인사평가자의 눈밖에 나기 십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일하는 8시간 동안 좀 더 집중해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회사에 오래 있으면서 상사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동료보다, 가시적인 혹은 정량화할 수 있는 영역에서 점수를 쌓아가는 수밖에 없다. 이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겉으로 동료라 말하지만, 실제론 내 점수 아래에 두어야 할 경쟁자가 된다.

회사에 오래 있는 직원은 나처럼 정시에 퇴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억울해 하기도 한다. 자신은 나처럼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나? 그러나 인사평가 결과를 받아들고 웃는 것은 상사의 지시를 잘 따라 야근하는 직원 쪽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량적 성과에서 앞선다고 해도 평가자의 정성적 선호를 넘어서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이렇게 각 개인을 경쟁 상대로 몰아가는 방식의 조직 관리가 겉으로는 좋은 성과(회사가 원하는 성과)로 이어질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조직원들 간의 미묘한 경쟁으로 인해 협력에 금이 가게 되고 조직원들 간의 갈등이 생겨나 생산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회사에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억눌린 상황에서도 '송곳'처럼 억압을 뚫고 나오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어 왔다.
 억눌린 상황에서도 "송곳"처럼 억압을 뚫고 나오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어 왔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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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내에서 개인의 보상과 연계된 인사평가라는 오래된 무기가 21세기 조직에서도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보면 노동자들의 연대가 얼마나 약한 고리인지 확인하게 된다. 상식선에서 벗어나는 회사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 조직원들이 다 같이 선을 정해 합의하면 무리한 일정 단축에 대응하기가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 각각의 사정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상은 실현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보상에 욕심을 내는 사람, 조직 내에서 더 큰 직책을 맡고 싶은 꿈이 있는 사람, 생계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이 필요한 사람 등은 노동자들의 단결에 있어 아주 약한 고리다.

그렇다면 이런 억압적 구조 하에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회사의 요구에 순응하는 것밖에 없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억눌린 상황에서도 '송곳'처럼 억압을 뚫고 나오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어 왔다.

조직원에게 점수를 매기고 일렬로 세워 등급을 매기는 구조에서도, 정량적 성과지표가 반영되지 않는 제도 하에서도 손해를 일부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주어진 1일 노동시간 안에 집중력을 발휘해 주어진 업무를 상식 선에서 성실히 수행한다.

물론 가시적인 성과도 다른 이들에 비해 좋은 경우가 많다. 만약 당신이 이런 부류의 사람이라면 절대 신념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처음엔 관리자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퇴근하겠지만 1년, 2년, 3년... 꾸준히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일하면 관리자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OO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은 하는 사람이지'라는 평판을 얻게 되는 사람이 생기게 되면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다. 함께 할 수 있는 진정한 동료 한두 명이 있다면 이런 변화를 떠 빨리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히노 에이타로 지음, 이소담 옮김, 양경수 그림, 오우아(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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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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