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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부터 20일까지 5박 6일 동안 '2019 오키나와 평화기행'을 다녀왔다. 필자는 오키나와의 여러 미군기지 현장과 오키나와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장소들을 돌아다녔다. 그 중 가장 아름다웠던 풍경 중 하나는 오키나와평화기념공원의 해안절벽이다. 사실 이 절벽은 수많은 오키나와 주민들이 일본군에 의해 강제적으로 몸을 던진 곳이다.
 
오키나와평화기념공원에서 바라본 해안과 절벽. 오키나와전쟁이 끝날 무렵 저곳에서 수많은 오키나와인이 몸을 던져야 했다.
 오키나와평화기념공원에서 바라본 해안과 절벽. 오키나와전쟁이 끝날 무렵 저곳에서 수많은 오키나와인이 몸을 던져야 했다.
ⓒ 신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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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평화기념자료관은 오키나와전쟁부터 시작해 미군점령기와 일본 반환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오키나와전쟁은 1945년 일본군이 본토와 천황 방어의 시간을 벌기 위해 벌어진 전쟁으로 민간인 약 12만여 명을 포함해 20만여 명이 사망한 전쟁이다. 당시 일본군은 오키나와인에게 미군에게 잡힐 바에는 차라리 죽으라고 교육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불구가 되어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독약과 수류탄, 다시 말해 그냥 죽거나 자폭하라는 단 두 개의 선택지만을 주었다. 

전시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당시 오키나와 주민들이 구술한 전쟁에 대한 증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이 영상자료와 기록물로 전시되어 있다.

김민환 한신대 교수는 논문 <일본 군국주의와 탈맥락화된 평화 사이에서>에서 "끈기 있게 오키나와 전쟁의 진실을 말하는 이 증언들이야말로 바로 오키나와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오키나와적인 방식은 전쟁을 낭만화하지도, 평화를 낭만화하지도 않는 것이었다. 마주치는 여러 풍경들 속에서 오키나와적인 방식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다음 행선지를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에는 어김없이 미군기지를 지나쳤다. 주일미군기지의 4분의 3 이상은 오키나와에 배치되어 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오키나와의 건물들과 마치 너른 초원처럼 펼쳐져 있는 미군기지 내 잔디밭은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바닷속이 훤히 보이는 유리보트를 타고 둘러 본 헤노코 기지 매립 예정지인 오무라 만에는 삼천 년의 시간 동안 형성된 푸른 산호초 군락이 있었지만, 그곳을 매립하려는 공사 현장도 함께 있었다. 강제적 집단자살의 현장인 치비치리가마라는 석회동굴에는 당시 목숨을 잃었던 사람들의 유골과 함께 어느 청소년들이 침입해 부숴버렸다는 유품들의 잔해가 널려 있었다.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전쟁과 군사화를 직시함으로써만 평화는 말해질 수 있었다. 
 
치비치리가마 동굴 안에 있던 당시 사망자의 유골
 치비치리가마 동굴 안에 있던 당시 사망자의 유골
ⓒ 신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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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전쟁 종전 후 74년, 미군으로부터의 일본 반환 후 4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쟁의 상흔과 점령의 현장은 오키나와 곳곳에 뒤엉킨 채로 남아 있다. <저항하는 섬, 오끼나와>라는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오늘날 오끼나와 사람들이 전쟁을 증오하고 군대를 불신하며 '국방'이라는 의제에 동의하기를 거부하고 있다면, 그 근저에는 무엇보다도 오끼나와전의 경험과 기억이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우리에게 오키나와전쟁의 역사를 해설해준 분들은 모두 헤노코나 후텐마 기지 반대 운동에 함께하는 분들이었다. 

답사 외에도 이번 오키나와 평화기행의 주요한 일정 중 하나는 1972년 5월 15일 오키나와의 일본 반환을 기념하기 위해 치러지고 있는 42회 '5.15 평화행진'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평화행진 발대식의 기조강연에서 강연자는 '역사는 0에서 시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금 덧붙여 본다면 과거 사람들이 걸어왔던 그 발자국의 끝에 우리가 서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 앞에는 길이 놓여있다.

5.15 평화행진의 마지막 날, 우익단체가 대거 몰려들었다. 행진하는 길의 바로 옆에서 계속 확성기로 행진을 비난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우리가 외치는 기지 철거의 구호와 우익의 비난이 같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모두는 같은 길 위에 있었고, 각자가 바라는 평화를 말하고 있었다.
 
헤노코 미군기지 공사장 정문에서 기지정문을 가로막았던 사람들이 경찰에게 끌려나가고 있다.
 헤노코 미군기지 공사장 정문에서 기지정문을 가로막았던 사람들이 경찰에게 끌려나가고 있다.
ⓒ 신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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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해 행동한다고 했을 때 그 행동이 무엇이든 간에 그 방향은 지난 시절 있었던 전쟁의 참상을 어떻게 기억하고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서부터 정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평화행진의 참가자와 우익은 물리적으로 같은 시간을 살아왔지만, 다른 역사를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따라서 전쟁을 반대할 수도, 전쟁을 부추길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전쟁은 언제나 끔찍한 참상을 낳았다. 오키나와처럼 그 역사가 오랜 한국사회의 군사화 역시 한국사회가 어떻게 전쟁을 기억하고 있는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태그:#오키나와평화기행, #오키나와전쟁, #주일미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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