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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주년 전국 교사대회에는 5천여 명의 교사가 모여서 노동기본권 쟁취와 법외노조 취소를 외쳤다.
 30주년 전국 교사대회에는 5천여 명의 교사가 모여서 노동기본권 쟁취와 법외노조 취소를 외쳤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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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30주년 전국교사대회'에 다녀왔다. 이 대회의 구호는 '법외노조 취소! 노동기본권 쟁취'였다. 웬 '법외노조'냐고? 알 만한 사람은 구호만 살펴봐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지금 처한 상황을 눈치채고도 남을 것이다. 

합법노조에서 법외노조로 되돌려진 전교조 30돌

그렇다. 1989년에 설립된 전교조는 10년 만인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합법노조가 됐다. 1천6백여 명의 교사가 학교에서 쫓겨나고 위원장과 노조 간부들이 투옥되는 등의 희생을 치르고서였다. 

그러나 합법노조로 누린 시간은 길지 않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열 명도 되지 않는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했다. 전교조는 다시 제도 밖으로 밀려났고 법률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법외노조로 되돌아갔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교조는 전임 정부가 저지른 독단과 노동기본권 침해가 해소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2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 주요 구호가 '법외노조 즉각 취소'와 '해고자 원직 복직'인 이유이다.

퇴직한 지 3년이 넘으면서 자연스럽게 교육 관련 뉴스에 둔감해졌다. 그런데 며칠 전 시민사회 원로들이 이 현안 해결에 나섰다는 기사를 읽고 나는 서울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원로 시민운동가들이 발 벗고 나섰는데, 퇴직하긴 했지만 창립 조합원이 구경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집회장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나는 교사협의회 시절부터 알아온 경남의 한 선배 교사를 만났다. 대회장 들머리에서는 부인과 함께한 시민운동가, 아내의 고종사촌 동생인 초등교사, 그리고 서울의 사학에 근무하고 있는 후배 교사를 연이어 만났다. 일부러 만나려고 해도 쉽잖은 만남을 한꺼번에 겪은 셈인데 그게 창립 원년 조합원인 내 이력 덕분인지도 모른다. 
 
 1989년 전교조 창립을 전후한 집회를 담은 사진. 아이들도 머리띠를 매고 부모를 응원했다.
 1989년 전교조 창립을 전후한 집회를 담은 사진. 아이들도 머리띠를 매고 부모를 응원했다.
ⓒ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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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5월 28일 나는 연세대학교에서 이뤄진 전교조 창립대회, 그 역사적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다. 당일 아침 지역의 동료 교사들과 함께 상경하던 우리 전세버스가 인근 구미에서 전경 1개 중대에 가로막히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부터 8월까지 전국 곳곳에서 교원노조 참가자들에 대한 징계가 속속 이뤄졌다. '탈퇴각서' 한 장만 쓰면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그 한 장을 쓰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난 교사가 1600명이 넘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체포·투옥됐다. 

노조 가입 사실만으로도 징계에 내몰릴 수 있는 그 시기에 전교조는 일간지에 조합원 명단을 공개하는 배수진을 쳤다. 1989년 7월 14일 경북지부는 <한겨레>에 광고로 명단을 공개했다. 자신을 해치거나 위험에 빠뜨리는 '자해적(?)' 투쟁은 곡기를 끊는 단식 등으로 이어졌다. 그 길고 지루한 여름의 끝 무렵에 나는 같은 국어과 동료 한 명과 같이 소속 학교 법인에서 해임됐다. 

'사람과 교사의 길'을 배우다

나는 농반진반으로 그 시절에 나를 움직인 것이 '광기'였다고 말하곤 한다. 광기든 순수한 열정이든 간에, 그 시절에 우리는 모두 주역이었다. 모든 선택과 결정을 온전히 자신의 삶으로 했기 때문이다. 해직자는 물론이거니와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각서를 썼던 동료들 모두가 자기 삶의 든든한 주인들이었다. 

그들은 누구였나.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실존을 고민했던 사람들, 부끄러움으로 자신을 돌아봤던 사람들이었다. 5년여 해직 기간에도 생활을 옥죄었던 고단한 삶조차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 자신의 선택과 신념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들과 함께한 짧지 않은 세월 속에서 나는 사람의 길, 교사의 길을 배웠다.

나는 운이 좋았다. 창립 1세대로서 곡절 많은 역사와 부대끼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그 대가로 5년여 세월을 잃어버린 채 교직을 마감해야 했지만 말이다. 

전교조 소속 조합원으로 살 수 있었던 게 내가 '평균적인 교사'로서 살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고 생각한다. 전교조가 아니었다면 나는 교사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느 월급쟁이와 다르지 않은 직장인으로 세속적이고 향락적인 삶을 누리면서 살았을 것이다. 

전교조가 아니었다면 분단 조국을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 안에 자라는 파시즘, 가증스러운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반성과 성찰에도 이르지 못했으리라. 적당히 경력을 쌓고 삶의 조건들을 챙겨가면서 승진의 기회나 자리를 기웃거리며 살지 않았던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던가. (관련 기사 : 서른넷 풋내기였던 나, 학교에서 잘리다)

무엇보다 나는 전교조 활동을 통해 체벌을 서슴지 않았던 교사에서 매를 내려놓은 교사가 되었다. 끊임없이 말썽을 부리던 아이들을 설득하다 지치면 나는 분노를 가누지 못하고 무차별적인 매질로 아이들을 다스렸다. 체벌이 끝난 후 찾아오는 적요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아이는 고개를 꺾은 채 울고 있고 이성을 되찾은 교사에게 그 순간은 악몽 같았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지도했는가. 분노는 타버리고 재만 남는 순간,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를 위로하면서 면죄부를 주곤 했다. (관련 기사 : 문제아는 발길질과 따귀로…내가 왜 이러지?)

시간이 지난 후 영화 <도가니>를 보면서 나는 어떤 미사여구로도 체벌과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직 경력이 오래될 수록 지은 죄가 크다"는 역설이 성립하는 순간이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에서 그 존엄성을 짓밟는 체벌이 용인될 수 없고, 매가 아이를 바꿀 수 없다는 진실을 깨닫는데 나는 엄청난 수업료를 냈다. 

전교조 30년의 공과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들과의 교감과 실천을 통해 문제를 풀어낼 수 있었다. 그것은 교사협의회 시절부터 나누어온 매우 유용한 과제 해결법이었다. 그게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덤이었다. 

개별 조합원의 고민이 단위학교 동료들과 공유되면서 거기 걸맞은 해결점을 찾아내는 형식으로 뿌리내린 참교육 실천은 물론 학교 사회에 온존해온 불합리와 모순을 얼마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전교조가 이룬 성과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체벌이나 촌지 문제에 대한 교사와 학부모의 인식도 일정하게 바꾸어냈다. 

학생에게 부담하게 했던 각종 성금을 없애 학부모의 지출을 줄였고, 일제고사를 폐지하고 지역적 편차가 있긴 하지만 강제 야간자율학습을 없애기도 했다. 체벌 문제 등으로 환기된 학생인권조례와 무상급식·무상교육 등도 전교조 출신을 포함한 진보 교육감을 배출하면서 현실이 되었다. 

아이를 '인질'로 맡겨야 했던 학부모가 학교에서 주요한 교육 주체로 존중받게 된 데에도 전교조는 이바지했다. 학교운영위원회나 학부모회 같은 제도적 장치로 학부모가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성과는, 끊임없이 전교조를 색깔론으로 매도해온 정치세력과 수구 언론의 폄훼와 맞서며 이룬 것이었다. 어쨌든 전교조와 전교조 교사들은 그런 일그러진 시선과 맞서며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실천해왔다. 

무엇보다도 진보 교육감에 의해서 도입된 '혁신 교육'이야말로 교원노동조합으로서 전교조의 역량을 유감없이 드러낸 성과였다. 어느덧 10년을 넘기며 혁신 교육이 국가교육정책의 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혁신 교육이 시대에 조응한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물론 전교조의 교원노동조합 활동이 성과만 남긴 것은 아니었다. 이룬 공에 앞서 두루 지적되는 과도 마땅히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교육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조직으로 자부하고 있지만 실제로 조직은 조합원의 그것을 얼마나 받아안고 있는가는 스스로 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떨어지는 조직률, 젊은 교사들의 저조한 가입률, 활동가의 고령화 현상 등 조직의 신진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은 노조의 영속성에 위기로 다가오고 있지는 않은가. 그간 정권의 탄압과 싸우면서 생겨난 해직교사 문제나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작 시대적 과제를 살펴보지 못하고 그 대안도 모색하지 못한 점도 짚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날 대회는 청와대 앞에서 결의문을 채택하고 마무리되었다. 결의문에서는  ‘쉼이 있는 배움, 삶을 위한 교육’이 제시되었다.
 이날 대회는 청와대 앞에서 결의문을 채택하고 마무리되었다. 결의문에서는 ‘쉼이 있는 배움, 삶을 위한 교육’이 제시되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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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여 명의 교사가 참석한 '전교조 30주년 전국교사대회'는 우정국로에서 본대회를 마친 뒤 청와대까지 행진했다. 거기서 결의문을 채택하고 마무리되었다. 결의문에서 제시된 '쉼이 있는 배움, 삶을 위한 교육'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 나는 무척이나 궁금하다. 

참석 교사들이 목놓아 외친 '법외노조 취소'와 '해고자 원직 복직'은 언제쯤 이루어질 수 있을까. 늘 그래왔듯이 그걸 전망하는 일보다 함께 내딛는 한 걸음이 더 소중할 터이다.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이 새로운 30년의 길이자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교조 조합원이다"

나는 2016년 2월 31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감하고 학교를 떠나왔다. 그때 "31년…뒤돌아보지 않고 떠납니다"라는 글에서 나는 그렇게 썼다.
 
"풋내기 교사 시절에 전교조 창립에 동참한 이래 10년 동안의 비합법 시대를 끝내고 합법노조로 누린 세월은 고작 17년, 저는 다시 법외노조의 조합원으로서 교직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십여 년 싸워서 얻은 합법 지위를 잃고 빈손으로 떠납니다.

……1천5백여 명이 넘는 교사들을 내쫓은 1989년의 대규모 해직사태에도 불구하고 전교조는 늠름히 살아남아 10년 만에 합법화의 역사를 이루어냈습니다. 오만하고 시대착오적인 정치 권력이 잠시 역사의 물길을 거스르긴 했지만, 이 퇴행의 역사는 절대로 오래가지 않을 터입니다.

그걸 말없이 가르쳐 주는 건 역사입니다. 역사의 교훈은 인류의 발전, 그 문명사의 요체임을, 그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것은 청맹과니 권력의 패악이고 무지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고스란히 17년 전의 과거로 퇴행하는 역사를 확인하면서 떠나는데도 이 걸음이 허전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1989년에 공개된 조합원 명단의 맨 첫 번째 이름 '안동 복주여중'의 정영상(1956~1993)은 복직 전에 세상을 떠났다. 해직 뒤 충북 단양에 살면서 "안동 복주여중에서 수돗물 / 떨어지는 소리 죽령 너머 단양의 내 방에까지 들려온다"(시 '환청')고 노래했던 그는 내 동갑내기 벗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난 이가 여럿이다. 배주영(진보종고), 황현자(고령중), 지송월(청송여종고), 정관(포항 중앙고), 장성녕(성주 성광중), 박병준(달성 동국고) 선생이 그들이다. 이들을 보낼 때 흘렸던 눈물도 슬픔조차 이제 아득해졌다. 근년 들어서는 김창환(예천여고), 채희성(경주 신라고)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전교조에서 만든 교육선전 자료. '나는 전교조 조합원이다'
 전교조에서 만든 교육선전 자료. "나는 전교조 조합원이다"
ⓒ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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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명단에는 조직을 떠난 이들도 많다. 어떤 이유로든 그들의 선택을 비판할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집회마다 그림자처럼 나타나는, 이제는 늙수그레해진 그리운 얼굴들, 그들과 함께한 짧지 않은 세월 속에서 나는 사람의 길, 교사의 길을 배웠음을 거듭 확인한다.

지난 25일 대회를 마치고 나는 후배인 초등교사와 함께 오후 7시 35분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무 걱정 없이 우리의 투쟁을 낙관하면서 말이다. 나는 퇴직 몇 연차쯤이면 다시 자랑스러운 합법노조의 퇴직 조합원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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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기사 포함, 모두 1천여 편의 글을 썼다. 2019년 5월,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에 연재한 '친일문학 이야기'를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으로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