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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항쟁을 다룬 연극 '잃어버린 마을'이 지난 3월부터 4월초까지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되어 수도권 시민들과 젊은이들의 많은 관심속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승인으로 4.3항쟁 연극 '잃어버린 마을'이 5월 12일까지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재공연하게 되었다.

4.3항쟁을 다룬 연극이 서울에서 공연한 것도 화제였지만, 출연하는 배우들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이 4.3을 알게 되었다는 점 또한 큰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70여년 전 4.3항쟁시 학살과 40여년 전 민주화의 봄을 통해 국가 공권력의 폭력성을 고발하다
▲ 잃어버린마을 곤을동 70여년 전 4.3항쟁시 학살과 40여년 전 민주화의 봄을 통해 국가 공권력의 폭력성을 고발하다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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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은 "미국군사정부 시기인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 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서 설명되고 있다.

연극 '잃어버린 마을'은 4.3항쟁당시 폐허가 되어버린 곤을동(제주시 화북동 해안에 소재하며, 제주항 등대가 있는 별도봉 뒤편)이라는 마을에서 작은 불빛을 내뿜고 있는 '동혁이네 포차'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동혁은 4.3당시 곤을동에서 태어나 결혼하였으나 4.3당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1979년 대한민국의 격동기시대에 동혁의 아들 재구가 교수로 임용되고 임용 논문을 쓰기 위해 곤을동 아버지 집으로 오고 나서 4.3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게 된다.

부자간의 갈등으로 인해 아들 재구는 제주를 떠나 서울로 갔으나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심한 고문을 당하고 후유증을 겪는다. 그는 다시 곤을동으로 들어와 40여년 전 곤을동의 끔직하고도 야만적인 국가 폭력에 대해 풀어 나간다.

연극은 1948년 11월 불법 계엄령에 의해 초토화작전이 시작된 직후인 1949년 1월 대한민국 군인과 경찰로 구성된 토벌대가 해안 마을인 '곤을동'의 40여 채의 집을 이틀 만에 불태웠던 사건과 1979년 10·26사건 직후 '서울의 봄'이라 일컬어지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여 중첩 시키고 있다.

작가는 4·3항쟁과 서울의 봄, 그리고 5·18 광주항쟁과 6월 민주화항쟁 등 해방 후 한국 현대사에서 "국민을 위한 공권력이 국민에 폭력을 가하였고, 국민들은 국가라는 폭력에 의해 언제라도 희생될 수 있음"을 4·3의 피해자 '동혁'과 '서울의 봄'의 피해자인 동혁의 아들 '재구'를 통해 밝히고 있다.

4.3당시 군인들의 초토화 작전으로 잃어버린 마을은 109개나 된다. 그 중에 해안가 마을로는 곤을동이 '상징적'인 마을이다.

화북동에서 군용차를 습격했던 무장대 중 한 사람이 곤을동으로 피신했다는 보고로 곤을동은 '폭도 마을'이 되었고, 초토화 대상이 된다.

국방경비대 2연대는 해안가 마을인 곤을동을 포위하여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였다. 살아남은 자들은 마을을 떠났다. 지금도 곤을동은 초토화 되기 전 올래와 연자방아 등이 그대로 존치되어 있어 당시 참화를 상상할 수 있다.

연극의 주요 흐름은 제주도민들이 70여년 전 38도선 남쪽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단독선거를 반대하면서,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친일부역자들의 청산을 주장하는 제주민들의 당시 상황을 알려 준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가 산사람(무장대와 산사람의 구분이 필요)이 되거나 군인과 경찰의 폭력에 두려움을 떨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서북청년단의 하수인이 됐던 제주민들의 고통과 갈등을 담고 있다. 70년 후반 군부독재와 80년 '서울의 봄'에 민주주의를 부르짖다 고문을 당해야 했던 인물 등을 중첩시켜 국가 공권력의 폭력성을 연출해냈다.

결과적으로 70여년 전, 그리고 40여년 전에 있었던 국가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주권자들의 고통을 담은 것이다.

학살의 주범이자 배후인 미국군사정부와 미국 군사고문단 등의 본질이 빠져 있어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수도권 시민들에게 제주의 고통을 알리고 있고, 젊은이들에게 4.3과 80년 서울의 봄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는 연극이라고 볼 수 있다.
  
70여년 전 4.3항쟁시 학살과 40여년 전 민주화의 봄을 통해 국가 공권력의 폭력성을 고발하다
▲ 4.3연극 잃어버린 마을 70여년 전 4.3항쟁시 학살과 40여년 전 민주화의 봄을 통해 국가 공권력의 폭력성을 고발하다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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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3일 광화문 추념공간에서 가해기관의 책임자인 경찰청장이 참석하여 사과의 마음을 담아 헌화하였고, 국방부 차관도 사과를 했다. 이 연극이 4.3당시 잃어버린 마을을 대표하는 '해안가 곤을동 동혁이네 포차'를 통해 4.3의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자리가 되길 기대해 본다.
 

태그:#곤을동, #미군정, #4.3, #초토화,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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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보장된 정의의 실현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실천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이 지속될 때 가능하리라 믿는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토대이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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