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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고객과 비즈니스 상담을 하다가 대화가 끊어지면 묻는다. 

"취미가 뭐예요?"

부모님 세대의 무취미를 물려받아서 딱히 답변할 것이 없다. 그래서 "낮잠 자기(nap)"라고 말하면 "좋은 취미"라고 격려하면서 훈훈하게 대화가 끝난다. 해산물 식당에서 스테이크 요리를 주문하더라도, "Excellent choice"라고 찬사를 보내는 것과 비슷하다. 평균 35도가 넘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주재 생활을 하면서, 오후의 나른함을 이기기 위한 오수 (午睡)가 취미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다면, 실없는 사람이다. 우리 한국인에게 취미는 "아마추어에서 전문가로서의 진화가 가능한 활동"이다. "낮잠자기"가 고상한 잠재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도 볕이 좋은 날 오후에는 낮잠을 즐겼을 것이다.

 
윤증 명재고택의 사랑채 외부 전경
▲ 명재고택의 사랑채 외부 전경 윤증 명재고택의 사랑채 외부 전경
ⓒ 이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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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의 윤증 명재고택을 다녀왔다. 300년의 긴 세월을 오롯이 담아낸 고택이다.

대문과 담장이 없는 독특한 고택. 호기심을 참고서 사랑채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누마루의 창문으로 시원한 풍경이 보인다. 명재 선생의 13대 종손이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우리의 한옥은 앉아서 차경(借景)을 하는 건축이오! 같이 갔던 일행들이 새롭게 풍경을 보기 시작했다. 
 
명재고택의 사랑채 안에서 앉아서본 바캍 정원 풍경
▲ 명재고택의 사랑채 내부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명재고택의 사랑채 안에서 앉아서본 바캍 정원 풍경
ⓒ 이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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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 앉아서 볼 때 또 다른 한옥의 멋을 느낄 수 있다. 사랑채의 창문이 위로 올라가면서, 바깥 풍경이 16:9의 와이드 스크린 액자로 펼쳐졌다. 창문을 통하여 하루 해의 변화도 느낄 수 있다. 창문이 액자가 되고, 여닫이 문이 액자가 된다. 가공되지 않은 아름다움, 우리의 눈에 보이는 자연과 정원이 하나가 되었다. 가볍게 부서지는 노곤한 봄 햇살에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옛 사람들도 시간의 변화를 알고 있었을까? 그 단서를 명재고택에서 찾았다.

 
윤증 명재고택의 해시계 일영표준
▲ 명재고택의 해시계 윤증 명재고택의 해시계 일영표준
ⓒ 이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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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의 사랑채를 올라가는 계단 윗부분에 네모난 댓돌이 있었다. 일영표준(日影標準)이라고 새겨져 있는 명재고택의 해시계이다. 윤증 선생의 9대 종손이 직접 만든, 24시간을 볼 수 있는 해시계이다. 해시계의 영점을 놓고서, 천체를 살필 수 있는 위치를 정하였던 것이다.  13대 종손이 직접 시간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계로는 12시 정오인데, 해시계로는 11시 30분경이었다. 우리의 하늘 시간이 30분의 시간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잊혀졌던 우리의 시간을 다시 찾았다.

 
명재가의 24시간 해시계
▲ 명재가의 유물(국가민속문화재 22-13-5)  명재가의 24시간 해시계
ⓒ 명재고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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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택은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고, 그 고택의 계절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 기억하지 않으면 잊혀진다. 우리의 소중한 한옥고택을 지키기 위한 발걸음을 이제 시작하였다. 중장년의 사회 참여를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고택의 종손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이야기의 힘과 삶의 경륜이 있는 전문가들이 우리 곁에 오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의 고택에 대한 시선이 보다 편안해 질 수 있지 않을까?

그 유쾌한 발걸음이 이제 시작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동고님은 한옥고택관리사 협회장입니다.


태그:#한옥고택, #한옥, #고택, #한옥고택관리사 , #명품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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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이모작생활연구소 대표/ 미국 Wisconsin- Madison대학 MBA 졸업 (외교부) 국제기구 한-아세안센터 무역투자국 / LG그룹 해외 지사장(터키, 멕시코, 이집트 근무) (저서) 해외주재원 생활백서(2019년, 부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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