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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내부 전경 덕수궁 내부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풍경이다
▲ 덕수궁 내부 전경 덕수궁 내부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풍경이다
ⓒ CPN문화재TV 임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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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고종이 승하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고종은 1863년 12살의 나이에 왕의 자리에 올라 1919년 1월 21일 죽음을 맞이한 대한제국 초대 황제(재위 1863~1907년)이다.

사인은 뇌내출혈로 알려졌지만 갑작스러운 고종의 죽음은 일제의 독살설로 이어졌고 이는 3·1 운동의 도화선이 됐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되며 6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고종황제. 그가 마지막을 보냈던 덕수궁을 19일 찾았다.

덕수궁은 조선 시대의 궁궐로서 경운궁으로 불리다가, 고종황제가 1907년 왕위를 순종황제에게 물려준 뒤 이곳에 머물게 되면서 고종황제의 장수를 빈다는 뜻의 덕수궁으로 부르게 됐다.

구한말의 역사적 현장이었으며 함녕전, 중화전, 석어당 등 전통목조건축과 석조전, 중명전 등 서양식 건축이 함께 남아있는 곳으로 조선왕조의 궁궐 가운데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는 곳이 덕수궁이다.
  
고종황제가 죽음을 맞이한 덕수궁 함녕전
 
보물 제820호 함녕전 고종 황제가 1919년 1월 승하한 장소
▲ 보물 제820호 함녕전 고종 황제가 1919년 1월 승하한 장소
ⓒ CPN문화재TV 임영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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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의 명소가 된 덕수궁 대한문 수문장 교대식을 뒤로하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광명문이었다.

광명문은 함녕전의 정문이었지만 1938년 일제가 이왕가 미술관을 만들면서 궁의 남서쪽 구석으로 옮긴 것을 80년 만인 올해 3월 1일 본래 위치로 이전했다.

광명문을 지나 다다른 곳은 함녕전(보물 제820호).

이곳은 고종황제가 거처하던 생활공간으로 일제에 의해 1907년 강제 퇴위 된 후 죽음을 맞이한 곳이며 조선 후기 마지막 왕실 침전이다.

현 덕수궁의 가운데에 위치한 중화전은 고종이 1897년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환궁 후 정전으로 사용하던 즉조당이 협소해 새로 지은 것이다. 원래 2층으로 축조 됐으나 1904년 화재로 소실돼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했다. 정문인 중화문과 함께 보물 제819호로 지정됐다.

석조전은 조선시대 궁중건물 중 대표적인 유럽풍의 석조 건축물로 1910년 준공됐으며 고종이 고관 대신과 외국 사절을 만나는 외교의 장으로 활용됐다.

해방 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 유엔한국위원단, 국립중앙박물관 등으로 사용되다가 2014년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개관했다.

아관파천 그리고 고종의 길 
 
사적 제253호 구 러시아 공사관 고종이 왕세자였던 순종과 1년 간 피신해있던 구 러시아 공사관, 아관파천의 장소다.
▲ 사적 제253호 구 러시아 공사관 고종이 왕세자였던 순종과 1년 간 피신해있던 구 러시아 공사관, 아관파천의 장소다.
ⓒ CPN문화재TV 임영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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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공원 안 옛 러시아공사관으로 이어지는 120m가 '고종의 길'로 복원됐다. 이 길은 아관파천 이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 당시 경운궁(덕수궁의 옛 이름)을 오갈 때 사용한 길이다.

아관은 러시아 공사관을, 파천은 임금이 궁궐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피난하는 것을 뜻한다.

1896년 명성황후시해사건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왕세자와 함께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데 이것이 '아관파천'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아관파천'의 장소였던 구 러시아 공사관 건물이 있다. 당시의 배치도를 보면 꽤 규모가 컸던 것을 알 수 있으나 현재는 탑에 가까운 건물만 남아있다.

광명문 복원은 덕수궁 제모습찾기의 첫걸음
 
광명문 2019년 3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광명문
▲ 광명문 2019년 3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광명문
ⓒ CPN문화재TV 임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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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승하하자 일제는 덕수궁을 공원으로 만들고 1920년대에는 현재의 덕수궁과 미국대사관 사이에 담장을 만들어 덕수궁을 둘로 쪼갰다. 일제에 의해 훼철된 덕수궁의 제모습찾기는 올해 광명문 복원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문화재청은 서양식 연회장이었던 돈덕전은 2021년까지,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기 전 가장 먼저 신축했던 선원전 권역은 2038년까지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나라를 빼앗기는 순간을 지켜만 봐야 했던 비운의 황제 고종. 일제에 의해 쪼개지고 훼손되며 근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덕수궁. 고종 승하 100년을 맞은 오늘에야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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