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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1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를 개최했다. 사진은 조선중앙TV가 11일 공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
 북한이 1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를 개최했다. 사진은 조선중앙TV가 11일 공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
ⓒ 연합뉴스=조선중앙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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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이 노동당 회의에서 자력갱생을 유별나게 강조했다. 10일 노동당 청사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전체회의)에서 자력갱생 강화의 필요성을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11일자 <노동신문>에 따르면, 그의 발언 속에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나라의 조건과 실정에 맞고 우리의 힘과 기술, 자원에 의거한 자립적 민족경제에 토대하여 자력갱생의 기치 높이 (들고) 사회주의 건설을 더욱 줄기차게 전진시켜 나감으로써,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되어 오판하는 적대세력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어야 한다."
 
김 위원장은 금년 신년사에서 "자력갱생의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나가자"며 "이것이 우리가 들고 나가야 할 구호"라고 강조했다. 신년사에서 강조했던 자력갱생 노선을,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향후 일정 기간의 최대 과제로 확정한 것이다.

헌법보다 상위에 있는 노동당 규약에 따르면, 이 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당대회다. 그런데 당대회는 이제껏 일곱 차례밖에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실질적인 최고 기구는 중앙위원회다. 당대회가 없는 동안에는 중앙위원회가 당대회 권한을 대신한다. 따라서 중앙위원회의 결정이 실질적으로 최고 결정의 의미를 지닌다.

이번에 나온 중앙위원회 결정이 특별히 중요하다는 것은, 중앙위원회 직속인 정치국의 9일자 예고에서도 드러난다. 전원회의 하루 전날인 지난 9일 정치국은 "혁명 정세에 맞게 새로운 투쟁 방향과 방도들을 결정하기 위하여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를 4월 10일에 소집할 것"을 예고했다. 10일에 나올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이 새로운 투쟁 방향이 될 거라고 예고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자력갱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북한이 자력갱생으로 버텨왔다는 점은 온 세상이 다 안다. 올해 신년사에도 "언제나 투쟁의 가치가 되고 비약의 원동력이 돼온 자력갱생"이란 표현이 있다. '언제나'란 표현처럼, 자력갱생은 항상 북한을 따라다녔다.

지난 수십 년간 자력갱생을 외치지 않은 적이 없으면서도 새삼스레 강조하는 건, 북한의 심리적 위기감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이 자력갱생 원칙을 처음 확립할 때와 같은 위기감이 지금의 북한 지도부를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련의 압박 때문에 자력갱생 외친 김일성
 
 한국전쟁 당시의 김일성.
 한국전쟁 당시의 김일성.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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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자력갱생과 김정은의 자력갱생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김정은은 미국 때문에 위기감을 느끼고 자력갱생을 외치는 데 비해, 김일성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사실이다. 김일성은 적대 진영이 아닌 공산 진영, 그것도 소련의 압박으로 인한 고립 때문에 자력갱생을 표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에서는 1953년 3월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하고, 그 해 9월 니키타 흐루쇼프(흐루시쵸프)가 공산당 제1서기가 됐다. 이 정권교체는 북한 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스탈린 때만 해도 북한은 '중공업 우선 정책을 추진하되, 그에 필요한 자본을 소련 원조를 통해 조달한다'는 경제전략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흐루쇼프는 북한 내부의 반(反)김일성 세력을 지지하면서 그 전략을 흔들어댔다. 중공업 우선주의가 북한의 민생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명분이었다. 흐루쇼프는 이 명분을 내세워 대북 원조를 대폭 삭감했다. 북한 경제전략의 토대를 약화시킨 것이다.

흐루쇼프는 공산권 경제협력기구인 코메콘(COMECON)에 가입할 것을 종용하는 방법으로도 김일성을 압박했다. 북한 경제를 코메콘의 틀 속으로 끌어들여,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김일성은 말려들지 않았다. 박후건 경남대 교수의 <북한 경제의 재구성>은 이렇게 설명한다.
 
"흐루쇼프는 실용주의적 개혁을 단행하고 사회주의권 경제통합체인 코메콘을 확대·강화했다. 바로 이 시기에 북한은 코메콘 가입을 거부하고 자력갱생의 원칙에 기초하여 민족경제를 건설한다는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노선'을 경제정책의 기본 노선으로 설정했다. '중공업 우선 발전, 경공업·농업 동시 발전'이라는 중공업 최우선 정책을 추진하며, 내부의 자원을 극대화해 경제개발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스탈린 때는 '중공업 우선+소련 원조'란 공식이 북한 경제를 지탱했다. 흐루쇼프의 등장으로 '소련 원조' 부분이 약해지자, 김일성은 이 공식을 '중공업 우선+내부 자원 총동원'으로 수정했다. 이것이 자력갱생의 기본 원칙이다.

그런 김일성에 맞서, 흐루쇼프는 정권을 위협하는 방법으로 대응했다. 흐루쇼프는 소련식 집단지도체제를 북한에도 정착시키려 했다. 김일성을 '유일 지도자'가 아니라 '지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격하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죽은 스탈린'을 격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산 김일성'까지 격하하려 했던 것이다. 흐루쇼프는 반김일성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고, 이들이 김일성을 합법적 방법으로 공격하도록 유도했다. 김성보 연세대 교수의 <북한의 역사> 1권은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 소련 대사 이바노프는 조선노동당 상무위원이며 연안파 최고 실력자인 노(老)혁명가 최창익에게 당 중앙위원들의 결의로 김일성을 합법적으로 당 위원장에서 끌어내리고 대신 최가 당을 장악해 김일성은 내각 수상에만 전념케 하자고 제의했다."
 
국가기구보다 높은 노동당에서 김일성을 끌어내린 뒤 그를 실무적 의미의 행정부 수반으로 격하시키자고 제의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반김일성 세력이 준비한 무대가 1956년 8월 2일로 예정됐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다. 지난 10일 김정은이 자력갱생을 강조했던 그 무대를 활용해 1956년 당시의 반김일성 세력이 합법적 쿠데타를 준비했던 것이다.
 
 1963년 당시의 흐루쇼프.
 1963년 당시의 흐루쇼프.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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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을 당시, 김일성은 동구권을 순방하고 있었다. 김일성이 해외순방으로 바쁜 틈을 정적들이 노렸던 것이다. 반김일성 세력은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의 경제 실정을 비판하고 당수직을 박탈한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졌다.
 
"최창익·서휘·윤공흠·고봉기 등 연안계와 박창옥·김승화·박의완 등 소련계는 손을 잡고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 그들은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통해 합법적 방법으로 김일성을 당 위원장에서 끌어내리고자 했다. 그러나 최용건 등이 이를 포착하여 김일성에게 알렸다. 김일성은 조기 귀국하여, 8월 2일로 예정되었던 중앙위 전원회의를 8월 30일로 연기하며 사전에 대비했다."
- <북한의 역사> 2권.
 
해외순방에서 돌아온 김일성이 전원회의를 왜 연기했는지를 파악하지 못한 채, 반김일성 세력은 8월 30일 회의에서 예정대로 김일성을 몰아붙였다. 민생경제 실패를 비판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김일성이 친일파를 경제 참모진으로 중용했다는 비판까지 해댔다.

하지만 상황은 김일성의 사전 계획대로 흘러갔다. 김일성파는 발언자를 단상에서 끌어내리고 출당시켜버렸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대대적 숙청 작업이 '8월 종파 사건'이다. 흐루쇼프는 김일성을 약화시키고자 했지만, 이를 통해 김일성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 이것은 북한 정계에서 김일성 반대파가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처럼 소련이 경제원조를 삭감하고 북한 경제를 흔드는 한편 정적들을 부추겨 정권을 위협하는 분위기는 김일성이 자력갱생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적대 진영의 미국뿐 아니라 공산 진영의 소련마저 압박 정책을 전개하는 속에서 그는 그쪽으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1966년 당대표자 회의에서 그가 "사회주의 진영 내부에서 복잡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는 현 정세는 우리에게 자립적 경제 토대를 더욱 더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자력갱생 노선을 강조한 것은, 공산권 내부에 대한 서운함이나 경계심이 이 노선에 깔려 있음을 보여준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절박한 현실인식이 저변을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믿고 의지했던 소련한테 압박을 당한 일로 인해 북한 지도부는 자력갱생 노선을 표방했다. '세상에 믿을 것은 결국 나 하나뿐'이라는 인식이 당시 김일성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감안하면, 언제나 자력갱생을 하는 북한이 유난히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시점이 되면, 북한 지도부의 심리가 한층 더 비장해지며 한층 더한 전투 모드로 돌입될 가능성에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을 불신하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사람을 상대하듯이, 앞으로 한동안은 그렇게 조심스럽게 북한 지도부를 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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