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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자신의 누리집에 실은 글을 당사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편집자말]
'PD수첩'은 9일 오후 공주보 해체를 둘러싸고 공주에 불고 있는 거대한 바람의 실체를 집중보도했다.
 "PD수첩"은 9일 오후 공주보 해체를 둘러싸고 공주에 불고 있는 거대한 바람의 실체를 집중보도했다.
ⓒ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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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과 영산강 댐들의 일부 철거를 권고한 4대강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는 숙원이던 우리 강 재자연화의 첫 삽을 뜨게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깊은 문서였습니다. 정치에 오염되지 않은 관련 학계의 명망 있는 학자들이 장기간에 걸쳐 머리를 맞대고 내린 결론이 100%의 타당성을 갖고 있으리라는 데 대해 나는 한 점 의문도 갖지 않습니다. 그동안 정치에 오염되고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운 무리를 하도 많이 보아왔던지라 이들의 참신함에 큰 기대를 건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발표되자마자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들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조사위원회를 헐뜯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최소한의 양심을 갖고 있다면 사업을 진행하고 있을 때 취한 입장과는 별개로 그 망국적 사업이 빚은 비극적 결과를 허심탄회하게 인정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당시 그들이 무슨 이유로 그 망국적 사업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는지 몰라도, 그 결과 흉하게 망가진 우리의 강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러나 요즘 보수언론에 연일 대서특필되는 4대강 관련 기사들을 보면 화가 나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습니다. 가짜뉴스 수준의 논리로 댐들을 그대로 놓아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것이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댐 존치의 정당화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일일이 반박하기조차 싫을 정도로 유치한 수준을 넘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이 모든 일의 원죄를 짊어지고 있는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의 뻔뻔스러움에 할 말을 잊었습니다.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 내린 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정치적 논리로 폄훼하는 것도 모자라, 이 문제를 뜬금없이 이념의 차원으로 몰고 가는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4대강 댐들을 해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도대체 이념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4대강 찬양에 경악

제가 9일 오후 시청한 MBC 'PD수첩'은 마치 4대강 사업을 찬성한 이들의 망언 퍼레이드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대운하를 파면 그 위에 다니는 배들의 스크류가 돌아가는 덕분에 수질이 깨끗해진다는' 발언으로 우리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던 사람은 또 다른 주장으로 큰 웃음을 선사하더군요. 자못 성난 표정으로 '녹조가 귀중한 자원인데 녹조가 좀 낀다고 뭐가 그리 말이 많냐'고 일갈하는 그를 보면서 또 한 번 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지금 지구온난화로 골칫거리가 되는 메탄가스와 이산화탄소도 귀중한 자원 아닙니까? 그것들을 산업적 용도로 따지면 녹조에 비할 바 있겠습니까? 문제는 음용수로 써야 할 깨끗한 강물에 독성이 있는 녹조가 짙게 낀다는 데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아예 우리 강들을 모두 녹조 인공양식장으로 만들자고 주장하든가요. 
 
금강 환경·생태 전문가 김종술 시민기자는 'PD수첩'과 한 인터뷰에서 " 4급수의 물에서 서식하는 실지렁이와 붉은깔따구가 무더기로 발견됐다"며 공주보 수문을 개방해야 한다고 했다.
 금강 환경·생태 전문가 김종술 시민기자는 "PD수첩"과 한 인터뷰에서 " 4급수의 물에서 서식하는 실지렁이와 붉은깔따구가 무더기로 발견됐다"며 공주보 수문을 개방해야 한다고 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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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웃기는 것은 '금강 하상에서 최근 자주 발견되는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 유충이 반가운 존재'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 생물들은 4급수의 지표종입니다. 그들의 출현은 금강의 수질이 그만큼 악화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그는 지렁이가 토질을 정화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실지렁이가 하상을 깨끗하게 해줄 테니 반가운 존재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더군요.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또 하나 내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것은 자유한국당 의원 입에서 댐 해체 혹은 보존이 이념 문제라는 망언이 나온 사실이었습니다. 두 명의 의원 입에서 이런 망언이 나온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도대체 이 상황에서 뜬금없이 이념이 등장하는 걸까요? 초등학교 수준의 상식을 가진 사람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을 겁니다. 강의 건강을 망치고 있는 댐들을 철거할 것인지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생명(生命) 대 반생명(反生命)'의 대립 구도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 쓸모없는 애물단지 댐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습니까. PD수첩에는 댐으로 물을 막은 후 금강에서 수만 마리의 물고기가 떼죽음하는 참혹한 장면이 나왔습니다.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동안 끔찍한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댐 해체는 죽어가는 생명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데 그 근본 취지가 있습니다. 

이런 생명 대 반생명의 대결 구도를 엉뚱한 이념의 대결구도로 변질시키는 자유한국당 의원의 기상천외한 발상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럼 우파는 댐 건설 지지입장이고 좌파는 댐 해체 지지입장이라는 말입니까? 이 세상 어느 곳에서 이런 기준으로 좌우를 가른답니까? 사상 초유의 기발한 발상으로 기네스북에 오를지도 모르겠군요.

댐 해체가 가져올 농가 피해? 언론의 과장 보도가 문제

PD수첩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진실은 그동안 보수언론에서 이야기하던 댐 해체가 가져올 농가 피해는 거의 가짜뉴스에 해당하는 정도의 보도였다는 사실입니다. 현장의 농민들을 인터뷰 한 결과, 적절한 대응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피해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보수언론은 댐을 해체하면 그 부근 농업에 치명적인 타격이 올 것인 양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공주보 수문을 연 뒤 쌍신동의 한 농장이 가뭄 때문에 농사를 망쳤다고 지난 2월 16일 보도했다. 그러나 PD수첩 제작진이 살펴본 결과 이는 사실과 달랐다.
 조선일보는 공주보 수문을 연 뒤 쌍신동의 한 농장이 가뭄 때문에 농사를 망쳤다고 지난 2월 16일 보도했다. 그러나 PD수첩 제작진이 살펴본 결과 이는 사실과 달랐다.
ⓒ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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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해체는 4대강 사업 이전의 상태로 돌려놓자는 아이디어입니다. 우리 농민들은 바로 그 상태에서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아무 탈 없이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해서 치명적인 손해가 발생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뻔한 일입니다. 

취수구의 재조정이나 관정 굴착 등 나름대로 비용이 들 테지만, 애당초 불필요한 공사로 이중의 비용을 초래한 이명박 정권에 궁극적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단지 대응 비용이 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댐 해체를 저지하려는 것은 수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4대강 사업이란 망국적 사업을 주도하고 그것을 방조한 범죄에 대한 심판이 당연히 내려져야 하지만 아직 요원한 과제 같습니다. 저들이 거의 완벽하게 언로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중은 계속 왜곡된 뉴스만 접할 뿐이고, 그 결과 심판의 날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PD수첩은 진실을 밝혀주는 한줄기 소나기 같은 시원함을 주고 있습니다. 

부탁하건대 여러분도 이 프로그램 꼭 보시고 4대강 사업의 진실에 눈 뜨시기를 바랍니다. 저들이 제일 바라는 것은 국민의 무관심 속에 자신들의 죄과가 묻혀 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태그:#4대강,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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