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재료로 조리한 음식(요리)을 찾는 이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 나물을 넣고 지은 밥이 건강식으로 식당에 떡하니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경제적 여유가 생기며 살기위해 먹던 음식에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재료로 즐겁게 먹느냐로 옮겨진 결과다.
기왕에 먹을 거 싱싱하고 건강을 지켜줄 수 있다면 상당한 대가를 치르고라도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또 다른 이유는, 사람이 지닌 욕망 가운데 '식욕(食慾)' 또한 빠트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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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물밥 한 상 4월 봄나물이 시작되면 밥상은 더 풍성해진다. 금방지은 밥에 소금과 들기름으로 무친 어수리나 취나물을 고루 섞어 나물밥을 담아내고, 고등어 한 토막을 구어도 취나물이나 초피순 튀김을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계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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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사람의 건강이 뭔 상관이겠느냐 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다만 거친 음식이라도 배부르면 된다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전문적인 의학지식이 없어도 음식을 먹고 섭취한 영양소가 사람의 각 장기에 필요한 에너지원이란 건 안다. 일생 동안 깨끗한 피부와 밝은 눈도 따지고 보면 끊임없이 재생과 퇴화를 거듭하는 세포 조직을 이루는 영양소가 적절하게 공급되느냐 덜 공급되느냐로 나뉜다.
남새(밭에서 파종을 하거나 모종을 심어 기른 풀)와 푸새(산과 들에 저절로 나서 자라는 풀)로 구분지어 같은 종류도 나뉘고 가치도 다르다. 거기에 남새도 유기농인지, 친환경인지 나뉘기도 하고, 무농약과 저농약으로도 나뉜다.
왜 이런 구분법이 생겨났을까?
다른 이유가 있을 까닭이 없다. 바로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쌀농사를 짓는 농부가 양곡상에 내는 벼는 농약을 치고, 가족이 먹는 벼는 농약을 안 친다는 얘기는 이젠 모르는 사람이 없다.
농약이 사람의 건강에 이롭지 않다는 걸 알기에 농부 스스로 그렇게 해서 경제적 이득을 올리는 벼는 농약을 쳐서라도 많이 생산하려는 것이고, 가족과 먹을 쌀을 도정할 벼엔 농약을 안 치는 거야 소출은 적더라도 건강한 밥을 먹겠다는 지극히 평범한 발상이다.
결과적으로 남새밭에도 온갖 병해충과 보기 좋은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농약을 사용하고, 가족이 먹을 남새는 농약을 치지 않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느냐 물으면 어리석다. 소비자는 농사를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일단 깨끗하고 보기에 좋아야 장바구니에 담으니 농약을 안 칠 재간이 없다.
벌레 먹은 청겨자와 벌레가 안 먹은 청겨자가 있다면 어느 걸 장바구니에 담는지 지켜보면 안다. 벌레가 먹은 건 외면 받다 결국엔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벌레도 못 먹는 거라야 장바구니에 담다니 이렇게 웃긴 상황이 실제로 우리들 밥상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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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나물 4월 중순으로 접어들면 양양장날은 나물이 절반을 차지한다. 남새가 주종이지만 들이나 비교적 야트막한 산자락에서 채취한 온갖 들나물도 이때 맛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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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취 대부분 곰취를 최고의 나물인줄 안다. 하지만 옛날부터 어른들은 먹을 수 있는 꽃은 참꽃, 목 먹는 꽃은 개꽃으로 부르듯 나물도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취 중에 최고는 참취고 나물 중에 최고는 참나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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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릅된장무침 “그 집 음식 맛을 알려면 장맛을 보면 된다”던가, 된장에 고춧가루 조금 넣고 데친 두릅 쭉쭉 찢어 무치면 막걸리 안주로나 밥반찬으로 그저 그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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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밖을 나와 양양시장을 돌아보자. 철따라 제철 음식재료가 손님을 기다리는 곳이 바로 여기다. 계절은 물론이고 지금이 몇 월인지 달력을 볼 필요도 없다. 좀 더 엄밀하게 분석하면 같은 달이라도 대략 며칠인지까지 확인된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이곳엔 전문적으로 야채나 나물을 파는 상인도 있지만, 장이 서는 날 아침 일찍 각 마을에서 출발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나온 아주머니들 덕이다.
현남 지역에서 나온 아주머니와 복골에서 나온 아주머니가 보자기를 풀어 내놓는 물건이 다르다. 4일장엔 현남에서 먼저 두릅이 나오고, 9일장엔 두 곳 다 두릅이 손님을 기다린다. 그리고 다시 14일 장이면 현남은 또 다른 푸새가 더해지고는 순서로 장날 풍경은 새로운 푸새와 물건들로 계절을 알린다.
14일 장엔 두릅이 넘쳐나고, 19일장부턴 곰취와 참취가 장에 나오기 시작한다. 푸새랄 수는 없지만 남새 중에선 그나마 봄나물의 왕이랄 수 있다. 예전처럼 산에 기대 사는 이들이 적은 요즘은 곰취는 물론이고, 누리대나 병풍취는 푸새를 만나기 어렵다.
물론 해발 1000m 이상 되는 산에서 채취하는 나물 좋다는 거 이 아주머니들이라고 모르진 않으나, "하이고 그거 누가 가서 따와요. 다 늙어 무릎고뱅이가 말을 안 듣는데"란 말 그대로 산촌엔 산을 오를 젊은 사람이 없다. 산나물 얘기에 젊어서 산에 올라가 나물 뜯던 얘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며 각자 얘기 보따릴 풀어낸다.
아주머니들이 내놓은 물건을 잘 살펴보면 푸새도 제법 된다. 지장가리나 지장보살나물로 부르는 풀솜대, 돌미나리, 며늘취로 부르는 금낭화는 물론이고 야산 비탈에서 종류를 가리지 않고 뜯어와서 잡나물이나 막나물이라며 파는 게 그것이다. 이 마구 섞어 뜯었다는 나물엔 쥐오줌풀, 마타리, 뚝갈(은마타리), 삼나물(미나리냉이), 잔대, 모시대, 미역취, 부지갱이나물(쑥부쟁이) 등 그야말로 온갖 야산 나물이 뒤섞여 있다.
더러 "이거 다 먹는 나물 맞아요?"라 묻는 이들도 있고, "어머, 이거 산에 많던데. 그런데 이것도 먹어요?"라며 야속하게 나물을 사지도 않으며 이것저것 뒤집어가며 몇 번씩이고 확인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산에 많더라고 하는 이들이 꼭 사고를 친다. 봄철에 나는 온갖 풀이 비슷하게 보여도 먹을 수 있는 것과 독초가 서로 닮은 게 얼마나 많은데 그걸 직접 산에서 뜯어 먹겠다고 욕심을 부릴까.
넌지시 "아주머니 그거 닮은 거 엄청 무서운 거 많아요. 잘못하면 단 한 번 먹고 영영 맛난 거 못 먹는 일 생깁니다"라 하면, 응원군을 얻은 양 나물 파는 아주머니 금방 표정이 펴진다. "거봐 내가 전문가란 거 저 사람이 인정하잖우. 암말 말고 어여 이거 사가" 딱 이 표정으로, 검정비닐봉지 먼저 꺼내들고 "얼마치 주세요" 하길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