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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2시무렵부터 장흥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은 독서토론 수업에 참여했다.
 지난 3일 오후 2시무렵부터 장흥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은 독서토론 수업에 참여했다.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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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초등학교 5학년 최지오는 자신을 고양이 두 마리의 집사라고 소개했다. 지오가 독서·토론 수업에서 자신을 소개한 곳은 장흥초등학교의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은 장흥군의 읍내권에 위치한 학교답게 규모가 제법 컸다. '큰 꿈을 갖고 세계로 나가자'라는 문구가 학생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비전인 듯 보였다.
 
지난 3일, 오후 2시 30분부터 진행된 이날 수업에는 전남교육지원청에서 파견된 '토론수업 영상취재 기자'도 함께했다. '토론'이라는 용어는 흔하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교육이 이뤄지는지, 덧붙여 참여하는 초등학생 개개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토론 수업에 임하는지 등에 관한 전반적 상황에 관해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수업에서 주요 키워드로 삼은 것은, 국어사전 뜻으로 무엇을 보려고 고개나 몸 따위를 이쪽저쪽으로 조금씩 자꾸 기울이는 모양을 일컫는 '기웃기웃'이라는 부사를 차용했다. 특별히 이 낱말을 차용한 까닭은, 토론에서 흔히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논제와 그 근거를 논리 있게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에 있다고 했을 때 그 전제가 돼야 할 것이 바로 '관찰'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현상이나, 자신이 속한 공간, 그 공간에 파생된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등의 관계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있을 때에만 토론의 내용은 좀 더 구체성을 띠고 실생활적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수업을 진행하면서 교사인 나는 여러 번 느꼈다.
 
'관찰'이 이뤄지지 않고, 마치 계량화된 요리 레시피처럼 무턱대고 현장에서 매뉴얼 했을 경우, 참여자의 발화는 알맹이 없는 교과서적인 원론에 그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것이 잘못 됐다기 보다는, 학생들의 성장이라는 측면에 볼 때, 앵무새처럼 어른들이 주입된 말을 따라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가 하는 교사인 나 스스로의 회의감이 먼저 일었다. 각자 다른 삶의 방식에 따른 에피소드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더 나아가 토론이 끝난 다음에도 나는 허무감만 가득 쌓였다.

암기 했던 내용을 따박따박 읊조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토론이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줄까? 과연 이것이 '교육'이라는 그럴싸한 미명아래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또 다른 폭력은 아닐까? 하는 자문답이 있었다.
 
일찍이 독일 출신의 한나 아렌트는 <에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사유할 능력이 없을 때, 특히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할 능력이 결여 됐을 때, 통상적인 관용어구의 남발을 비롯한 관습적이고 표준화된 어휘로 자신을 치장한다고 했다. '사유의 불능'은 말과 행동의 천박함으로 드러난다고 했다. 그것은 수많은 유대인을 살인 및 교사한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을 관찰하면서 그가 쓴 철학적, 역사적 사유에서 우리는 확인한 바 있다. 그는 이것을 '악의 평범성'이라 말했다.
 
본인이 쓰고 있는 어휘가 어떤 의미인지, 국어사전적 의미 외에 본인이 사용하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적확한지, 그 개념에 대해 한번쯤 의심을 품어보게 만드는 것이 사실 '토론수업' 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아닐까.
 
따라서 수업 방법 역시, 토론이라는 큰 줄기가 정해졌다면, 전반적인 내용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 수업에 참여하는 인물, 공간에 따라 약간의 변화를 시도해야 했다. 나는 그것을 '기웃기웃'이라는 용어를 차용해 처음 만나는 학생들과 소통을 시도했다.
 
이번 수업을 포함하여 열 번의 수업이 진행된다. 나는 이 기간동안 장흥초등학교 학생 15명을 만난다. 주로 5~6학년으로 구성됐다. 학생들은 '기웃기웃'이라는 용어를 '조금씩 훔쳐보는 것', '숨어서 조금, 조금씩', '조심스레 숨어보는 것', '벽 너머로 쳐다보는 것', '궁금해 하는 것', '고개를 몰래 흔드는 것', '왔다갔다 하면서 보는 것' 등으로 풀이했다.

이때, 나는 국어사전의 본래 뜻을 먼저 일러주지 않았다. 스스로 그 낱말의 뜻을 추측해보고, 실제 사전에 등재된 뜻이 무엇인지 알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 후에 낱말과 정서적 관계를 맺기를 바랐다. 정서적 관계란 이성의 획일화된 사고가 아닌 자신의 감성에 기대어 관계를 맺는 방식을 말한다.
 
지식의 선입견이라 할 만한 '아는 것'에서 해방되는 것이 필요했다. 정답이라 고집하지 않고,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믿는 신화가 해체되길 소망했다. 날것 그대로 검열 없이 말하고 상호 대화를 통해, 각자의 생각을 키우는 것이 토론 수업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산파술'의 대가인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는 말로 '무지'에 대해 스스로 인정함을 고대부터 설파하지 않았는가. '아는 것'에 대해 실제로 아는 척 하는 것인지, 정말로 소화시킨 말인지 부터 회의를 품어 보는 것은, 일상을 영위하고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하는 데 가장 필요한 덕목은 아닐는지.
 
학생들은 책의 한 구절을 더듬는 과정에서 '분단'이라는 용어를 빌렸다. 분단이 어떤 느낌일까라고 물었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는 곳에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요."

학생의 대답은, 어른들을 숙연하게 했다. '그리움'이라는 직접적인 용어의 발화대신 학생은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더 논의하는 것이 필요할까.
 

태그:#장흥초등학교, #장흥공공도서관, #독서토론수업, #오마이뉴스,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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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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