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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를 배려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지하철 배려석이 시끄럽습니다. 누가 교통약자인가라는 '존재'에 관한 질문에서부터 '잠시 앉는 것도 안되느냐'는 운영방안까지 설왕설래가 한창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에 얽힌 사연 두 편을 통해 지하철 배려석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지 생각해 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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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지하철의 교통약자석
ⓒ 최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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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2018년 7월)부터 3호선 오금행(서울 지하철, 이하 생략)을 타고 충무로역에서 4호선 사당행으로 갈아타 이촌역에서 하차해 출근하고 있다.

내가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간은 주로 오전 8시 30분 무렵이다. 4호선 사당행은 도심을 벗어나기 때문에 빈자리가 많은 채로 달리기 일쑤다. 교통약자석 또한 빈자리로 가는 경우가 잦아 컨디션이 좋지 못한 날이면 앉아가는 편이다. 물론 양보해야 할 사람이 타면 이유 막론하고 무조건 일어나 양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며칠 전 목요일(4월 4일) 출근길이었다. 출퇴근 시간 3호선은 늘 사람이 많다. 그걸 잘 알고 타는데도 어떤 날은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맥이 풀리곤 한다. 그날은 유독 사람이 많았다. 내 뒤에 탄 사람은 옷이라도 끼었는지 비명까지 질렀다. 손을 주머니에 넣고 빼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30분 정도 간 후 갈아탄 4호선. 유독 치였던 후라 충무로역에서 타자마자 교통약자석에 앉았다. 여섯 자리 중 세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리고 두 정거장쯤 간 것으로 기억한다. 책을 읽고 있었지만, 지하철이 멈추는 순간 습관적으로 문 쪽을 쳐다봤고, 한 할아버지가 보여 자동으로 일어났다. 그런데 몇 초 후 뭔가 쑥 내 앞으로 들어왔다.

그 분의 거친 말, 거친 행동

몇 초도 되지 않을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뭘까 궁금해서 보니 등산용 지팡이였다. 더욱 놀란 것은 그다음이었다. 할아버지는 의자에 앉는 순간 나를 쏘아본 후 말을 거칠게 내뱉었다. 당혹스러웠지만 딱히 뭐라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치밀어 올라왔다. 와중에 나보다 먼저 앉아 있었던 60대 중반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모든 걸 봤다는 듯 놀란 눈빛을 하고 있었다. 

7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양복 차림에 구두를 신고 있었다. 등산용 지팡이는 접힌 채로 반짝이는 것이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가방에서 꺼낸 신문을 쫙 펼쳐 읽기 시작했다. 두 팔을 거리낌 없이 벌려 펼쳐 양쪽에 앉은 사람의 앞을 가리기까지 했다. 신문을 탁탁 거칠게 치거나 넘기기도 하면서, 한눈에 봐도 화가 잔뜩 나 있는 것이 역력했다.

'대체 뭘 그리 크게 잘못했다고 저러나?' 싶어 할아버지가 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조금 전 눈이 마주쳤던 60대 아저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몇 차례 흔들었다. 그런 후 그 아저씨는 일어나 다른 자리로 가 앉았다. 나는 몇 분 후 이촌역에서 내렸다. 그 할아버지는 내가 내릴 때까지 신경질적인 어조로 중얼거리며 신문을 펼쳐 읽고 있었다.

일하는 틈틈이 아침에 겪은 일이 생각나곤 했다. '지팡이로 쓰려고 가지고 다니는 스틱일지도 모르는데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하며 이해해보려는 순간 거의 쓴 적 없이 반짝거리던 지팡이가 떠올랐다. '처음부터 나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들고 타다 보니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향했을 거야'라며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할아버지의 다음 행동이 떠오르고 말았다.

할아버지가 타기 전 건너편에 앉았던 유일한 사람이 이미 일어나 세 좌석은 이미 빈자리였다. 이후 교통약자석에 앉아 있는 사람 중 가장 젊어 보이는 나를 향한 의도적인 행동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아울러 그동안 지하철을 이용하며 겪거나, 보거나 했던 일들이 우후죽순 떠올랐다.

사실 지난해 가을까지 교통약자석 부근을 잘 이용하지 않았다. 떠들며 이야기하는 어르신들도 있고, 끊임없이 메시지 오는 소리가 나거나, 다른 사람 아랑곳없이 이리저리 통화하는 등의 소음으로 나도 모르게 신경 쓰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노선으로 출근하기 시작한 며칠 후 별 생각 없이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은 것이 여러모로 낫겠단 생각이 들어 교통약자석 부근을 택했다. 사람으로 꽉 차 밀리기도 할 때 덜 밀리다보니 무엇보다 책 읽기에 유리했다. 그런데 교통약자석 부근을 자주 이용하게 되면서 예전보다 많은 것들을 보거나 겪게 됐다.

가운데 앉았던 사람이 일어나는 순간 다른 사람들의 안전은 나 몰라라 마구 밀치고 들어와 앉겠다는 할아버지 때문에 몇 사람과 휩쓸려 넘어질 뻔한 적도 있다. 지난해 11월 어느 날 퇴근길에 만삭의 임산부에게 자꾸 눈을 흘기는 육십 대 중반의 남자를 의식해 방패삼아 서서 간적도 있다. 

좀 더 오래 전 일이지만 사람들이 많지 않은 한낮 바닥에 앉아 커피를 타먹던 노인들을 보았다. 앞에 서있는 일곱 명의 여학생들에게 "너희들 중 누가 제일 예쁘냐?"는 등 술주정하는 노인, "(이어폰 없이) 동영상 좀 봤기로 부모 뻘 되는 어른에게 그렇게 지적 하냐?"며 도리어 야단치는 노인, "젊은 것이 노약자석에 뻔뻔하게 앉아 간다"며 어떤 여자와 신경전을 벌이며 두발로 지하철을 꽝꽝 차며 가던 육십 대 중반의 남자 등. 다 열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다. 

'나는 저렇게 나이 먹지 말아야지!'

그리고 그 때마다 이미 했던 다짐을 다시 하곤 했다.

"볼일이 없는데도 출근 시간대 맞춰 지하철 타고 뱅뱅 도는 할머니,할아버지들도 많다고 하던데 젊은 사람들에 대한 피해 의식으로 그러기도 하고, 오기? 어깃장? 때문에 그런다나 봐.

교통약자석은 노인들은 물론 임산부나 장애인, 일시적으로 몸이 불편한 사람 등 교통 약자를 위한 자리 아냐? 그런데 단지 노인이라서 교통약자라고 생각, 당연히 노인들만 앉는 자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씁쓸해.

그래서인지 일곱 사람 앉는 그 자리에 나이 많은 분들이 서 있어도 절대 비켜주지 않는 젊은 애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 뭐 저렇게까지 하나 싶다가도 안하무인 노인들을 보게 되면 솔직히 그런 행동이 이해되기도 하고 그래. 나만 그런가?"


나이 앞세워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 들게 하는 노인들

누가 이처럼 말한 적이 있다. 솔직히 최근까지 아무렴 설마 할 일없이 바쁜 출근 시간대 일부러 그럴까 생각했다. 양보 받는 것을 진심으로 감사해하던 분들, 양보를 거절하며 꿋꿋하게 서가던 머리 희끗희끗한 분들, 임산부에게 당연한 듯 양보하던 70대 할아버지, 서서 졸며 가는 젊은 청년에게 자리를 양보한 후 문 쪽으로 걸어가 몇 정거장을 서서 가던 어떤 할아버지 등 그동안 어른다운 점잖은 분들을 더 많이 봤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지난 목요일 그 일을 겪은 이후 부쩍 들고 있다.

목요일 그날 이후 일을 겪기 며칠 전 출근길에 읽은 '"70살도 안 된 것이" 갈등 끊이질 않는 지하철 교통약자석(4월 1일자)'이란 기사와 잠깐 읽은 일부 댓글들도 떠오르곤 했다.

"몇 년 전, 출산 두 달 앞둔 만삭의 몸으로 앉아 있는데 '임신한 것이 유세냐'며 기어코 나를 일어나게 하고 앉던 할머니 생각이 나 끔찍해요."

"나도 70대지만 나이 앞세워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 들게 하는 노인들도 많아요."

"그 여자분이 임신 3~4개월이라고 자꾸 말하던데 '임신한 것이 맞냐?'며 옷까지 들치며 폭행하던 어떤 할아버지 생각이 나네요."

"우리나라는 노인들만 많지 어른은 별로 없다."

"장애인 분이 앉으시는데 노인 한분이 '장애인이면 장애인이지 거기에 왜 앉아 가냐?'며 '막무가내로 앉지 말라'고 소리 지르는 것을 봤어요."  


그 기사가 메인에 있던 그날 댓글은 2200여개, 그로부터 며칠이 9일 오전 11시 기준 현재 3231개(다음 2928개, 네이버 303개)의 댓글이 달려 있다. 댓글들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목요일의 그 할아버지처럼, 자신보다 젊은 사람들이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필요 이상의 화를 내는,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나이 많은 분들을 질타하는 내용의 댓글들이 달렸다. 물론 댓글만으로 단정 짓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나이 많은 분들은 상대적으로 댓글을 쓰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서도 한편으론 '댓글이 많은 것은 그런 어른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에'쪽으로 생각이 굳어진다면 이는 지나친 건가? 

그날 일이 며칠째 복잡하게 떠오르고 있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면 내가 먼저 잘못한 것이 맞다. 교통약자가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날 그 자리에 앉아간 것이 그렇게 잘못한 건가? 앞자리는 모두 비었는데 하필 내게 와서 그런 행패를 부릴 만큼 그렇게 잘못했나? 임산부 자리는 임산부가 아니면 앉으면 안 되지만, 교통약자석은 비어 있을 경우 나 같은 사람도 사정이 있으면 잠깐 앉을 수 있다는 생각이 그렇게 잘못됐나? 생각 또 생각, 묻고 또 묻고 있다. 

남의 흉을 더 많이 보는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현재 내가 가장 선호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선호할 수밖에 없는 대중교통수단인 지하철이기에 이러한 문제에 관심이 많다. 관심을 둬야 어떤 답이든 가능할 거란 생각이니 말이다. 앞에서 언급한 기사에 의하면 갈수록 교통약자석을 둘러싼 갈등 관련 민원이 늘고 있다고 한다. 아쉽고 씁쓸하다.

[관련기사] "에이, 재수 없어"... 임산부 딸이 집에 와 운 이유 ☞ http://omn.kr/1ik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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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