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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에 위치한 <현 디자인 연구소>에서 최경원 대표
 연남동에 위치한 <현 디자인 연구소>에서 최경원 대표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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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국 각지에는 인문학적으로 조형성이 뛰어난 문화 유산이 많습니다. 세계 역사에서 드물게 구석기부터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시대별로 독창적인 유물도 많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미래 디자인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통은 미래를 만드는 자산이고 과거 역사를 통해 미래를 비추는 빛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경원(53) '현 디자인 연구소' 대표는 한국 전통 조형과 디자인에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최 대표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미술학과와 동대학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연세대, 성균관대, 국민대 겸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여러 대학에서 디자인 관련 강의도 한다. 그는 산업·공업디자이너이너, 홋컬렉션 대표, 작가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최경원 대표를 만나기 위해 '현 디자인 연구소'를 찾았다. '현 디자인 연구소'는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주택가에 있다. 오래된 가옥과 현대 감각에 맞춘 세련된 공간이 어우러진 골목의 노란 대문집이다. 이곳에서 인문학과 디자인 이론 및 실기 공부는 물론 '홋((HAUT)' 상품의 고안(考案)부터 디자인 등 제작 전 과정이 이루어진다.

'홋'은 '현 디자인 연구소'에서 한국 전통 문화유산 가운데 특히 조선후기 디자인에 주목하여 만든 자체 브랜드다. 조선후기는 문예부흥기라 불릴 만큼 새로운 예술(아르누보. Art Nouveau)이 번성한 시기다. 홋은 조선 후기의 탁월한 디자인과 조형성을 현대 생활용품과 접목해 색다른 공예품으로 제작하고 있다. 옷, 가방, 베개, 실내화, 액세서리, 식기 등 그 영역은 제한이 없다. 현재 인사동 쌈지길에 이어 유럽시장에도 진출하고 있다. 

옛것과 새것, 그 아름다운 결합  

"전통 문양은 아무래도 시대를 앞서간다는 느낌, 젊고 현대적 감각으로 다가오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전통을 혁신의 재료로, 새로움의 원천으로 활용하여 문화를 발전시키고 세계적인 명품을 만들고 있는 나라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우리 전통 조형을 토대로 세계인이 두루 사용할 수 있는 명품을 만들 수 있지요.

한 예로 우리가 흔히 '민화'라고 부르는 그림은 굉장히 치밀한 계획에 의해 그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난도의 테크닉에 전체적인 구도, 색상, 비례, 명도, 채도, 보색 대비가 능수능란합니다. 그림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이 그렸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이죠. 현대 색채 논리로 보면 상당히 현대적이고 당시 일본에 비해 앞서갔습니다. 우리나라 병풍 그림 역시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경원 소장은 우리 전통 디자인을  인문학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움의 원천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사동 쌈지길 3층 '홋' 에서.
 최경원 소장은 우리 전통 디자인을 인문학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움의 원천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사동 쌈지길 3층 "홋"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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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대표의 한국적 디자인 뿌리는 탄탄하다. 20대부터 시작해 2019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친 우리 문화 유적 답사, 폭넓은 독서, 시대의 흐름을 살핀 연구와 실험이 그 바탕이다. 그는 다독가이자 출판인, 현장에서 발로 뛰는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그의 저서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문화 버리기>를 읽다보면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우리 문화유산에 이어 세계 문화유산에 대한 풍부한 지식, 우리나라 전국 문화유적지를 충실히 취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25여 년 동안 우리 문화유적지를 답사하고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에 몰입했다고 한다. 그리고 철학, 역사, 건축, 예술, 디자인 이론 등 인문학과 현대적 관점에 입각해 우리 전통 유산에 숨겨진 가치와 우수성을 증명했다.

최경원 대표가 우리 전통 디자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그는 첫 번째로 '아버지에 대한 빚'이라고 말했다. 이젠 고인이신 그의 아버지는 6.25 전쟁 직후인 열일곱 살 때부터 손수 모터보트를 만들어 타고 다닐 정도로 발명과 기예에 능했다. 훗날 사찰의 용이나 단청을 그리고 손수 종을 제작했다. 소년 경원은 방학이면 아버지가 일하는 곳에서 머물렀고 때문에 절과 문화 유적지는 친숙했다.

두 번째는 '다양한 의문'에서 비롯됐다. 그는 성장하면서 '우리나라는 왜 이 모양일까?' 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시대와 환경 영향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부산이 고향인 그가 부산사대부고(부산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에 입학해  졸업할 때까지 또 서울에 올라와 86학번 대학생이 된 후에도 학교 안과 밖은 달랐다. 모순투성이였다. 1980년대 부산과 우리나라 사회는 전반적으로 답답했고 암울함을 견디지 못한 청춘들은 수시로 최류탄 속에서 데모를 했다. 

"대학교 교수님 말씀 가운데 '디자인은 디자이너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대중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저는 싫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게 좋았고 나의 즐거움을 위한 그림을 그려왔거든요.

마침 학교 분위기도 어수선하여 그 핑계로 학교를 그만 다니려고 했죠. 한데 하루는 그동안 대학을 들어오기 위해 공부한 게 억울하기도 하고 의문이 들더군요. '정말로 디자인은 대중을 위한 것인가? 디자이너는 소비자를 위해 헌신해야 하고 생산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었죠. '다른 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디자인을 어떻게 하길래 세계인을 사로잡는 명품이 될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고요."  

 
도자기 디자인의 손가방
 도자기 디자인의 손가방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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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오래된 미술책을 읽다가 유럽과 일본의 훌륭한 디자이너는 탄탄한 인문학 소양을 갖추고 그 나라 전통과 문화를 기반으로 매력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세계인을 매료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당시 우연히 읽은 도올 김용옥 선생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또한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조각가인 사촌형 집에 들렀다가 책꽂이에 꽂아진 그 책을 그는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한국 디자인 세계는 척박했고 우리 전통 유산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 연구 서적이 빈약하던 시절이었다. 전통디자인 이론가 역시 거의 무인지경(無人之境)이었다. 그 후 그는 노자, 맹자, 중국철학서, 미학, 예술학, 역사, 건축 등 광범위한 독서로 지적 허기를 채우며 대학원 시절을 보냈다.  

세 번째는 '만남'이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과 이상해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와 만남, 그리고 병산서원이었다. 1990년대 초 대학원을 졸업하고 조교 발령을 받은 얼마 후였다. 한샘(가구 제작 회사)에서 실시한 디자인 워크숍 마지막 날이었다. 그는 안동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학부 때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했고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한국문화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사실 대학원까지는 책상물림 공부였어요. 한국전통문화와 예술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역시 없었고요.

한데 두 교수님의 해설 들으며 병산서원과 안동의 부석사 등을 둘러보면서 마치 금광을 발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병산서원이 위대해보이기도 했거니와 아울러 내가 속해 있는 문화권이 굉장히 훌륭하다는 사실,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앞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현장답사를 하면서 한국 문화의 진면목을 보기 시작한 거죠. 그곳에서 제 인생을 우리 전통 문화에 바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 후 최경원 대표는 우리나라 문화유적지를 두루 돌아다녔다. 또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를 만났고 그로 인해 한국 문화를 바탕으로 한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꿈을 키웠다.

시간이 흘러 책 <알레산드로 멘디니>를 썼다. 그는 그간의 경험을 여러 권의 책에 담았다. 청년 시절 부족하다고 느낀 디자인 이론서를 채워가듯 그동안 풍성하게 담아온 것을 꺼내기 시작했다.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Good Design.2004>, <그레이트 디자이너 10, Great Designer 10.2006>, <붉은 색의 베르사체 회색의 아르마니.2007>, <르 코르뷔지에v안도 타다오.2007>, <Oh! My Style.2010>, <디자인을 읽는 C.E.O.2011>, <알레산드로 멘디니.2013>,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문화 버리기. 2013>, <디자인 인문학.2014>등이다. 
 
전통 신발 혜(鞋)를 모티브로 만든 꼬까신 실내화
 전통 신발 혜(鞋)를 모티브로 만든 꼬까신 실내화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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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디자인을 어떻게 하는가 보다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그것을 오랫동안 연구했고요. 또 요즘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일은 백제와 통일신라시대 등 우리 선조들이 사용한 색깔을 찾는 것입니다. 흔적 없이 사라진 우리 문화 유산의 발굴과 복원이에요.

그래서 일본에 종종 갑니다. 일본에 있는 우리 유물을 통해 우리 선조들이 사용한 색깔과 디자인을 유추하고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죠. 그리스 조각을 연구할 때 사료가 많지 않아 역으로 로마시대 조각으로 그리스 조각을 추적하듯 비슷한 방식이지요. 백제 9등신 관음상 등 일본은 우리 유물을 가지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없고 모르고 있는 게 많아요. 안타까운 일이죠."   


최경원 대표는 우리 전통 문화 유산을 인문학과 보편적 학문에 근거한 제대로 된 해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 전통 문화 유산에 대한 오래된 선입견과 인식, 패쇄된 이론, 즉 서양 문화의 우월주의나 국수적 민족주의, 일제강점기 식민사관에서 벗어나 전통 문화에 대한 충분하고 정확한 이해가 필요할 때라고 한다. 한편 요즘 우리 역사와 전통 문화를 바라보는 국민 의식이 달라지고 있어 희망을 본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연남동을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를 좇아가느라 우리는 우리 뿌리를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먼 훗날 역시 후대의 전통이 될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상품과 건축물 등을 좀 더 주의 깊게 봐야겠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 의·식·주 등 우리 삶과 밀접한 디자인, 깔삼하고 예쁘고 재미있고 실용적인 디자인 속에 담긴 인문학적 의미, 사회적 의미를 되새겨 볼 때라는 생각 역시 그랬다.               

태그:#홋((HAUT), #디자인 인문학 , #독서, #한국 전통 문화유산 , #조선후기 아르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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