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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임준 군산 시장에게 명예시민증 받는 이치노헤 스님(왼쪽)
 강임준 군산 시장에게 명예시민증 받는 이치노헤 스님(왼쪽)
ⓒ 군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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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조동종 운상사 주지 이치노헤 쇼코(一戶彰晃) 스님이 군산시 명예시민이 됐다. 25일 군산시는 일본의 과거 잘못을 널리 알리고 한·일 교류협력 및 우호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이치노헤 스님에게 '군산시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
 
이치노헤 스님은 2011년부터 동지회(東支會·군산 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 회장을 맡아오고 있다. 스님은 일제의 조선 침탈과 과거 자신들의 첨병 역할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내용의 참사문비를 동국사 경내에 세웠으며, 군산 평화의 소녀상 건립 후원금을 보내는 등 한·일 관계복원에 헌신해왔다.
 
근대 유물들을 관광자원은 물론 학술 자료로도 활용하는 군산시 정책에 공감해온 이치노헤 스님은 그동안 자신이 수집한 일제강점기 관련 유물 1000여 점을 군산시에 기증했다. 군산시는 기증받은 물품을 시민과 관광객들이 관람도 하고, 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군산역사관(군산시 동국사길 21)에 전시할 계획이다.
 
"일제강점기 자료 찾아 보내드리는 게 큰 기쁨"
 
 원영금 통역사의 질문에 답하는 이치노헤 스님
 원영금 통역사의 질문에 답하는 이치노헤 스님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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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오후 동국사에서 진행한 이치노헤 스님과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통역 : 원영금 일어 통역사)
 
- 군산 명예시민이 된 것을 축하드린다.
"무척 반갑고 고맙다. 1년에 10회 정도 한국에 다녀간다. 1년에 1/6 정도는 한국에 사는 셈이다. 좋아하는 나라의 도시 군산에서 명예 시민증을 받아 기쁘다."
 
- 2011년 이후 오늘이 몇 번째 군산 방문인가?
"자주 왔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몇 회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웃음)"
 
- 군산의 아픈 식민지역사 자료를 수집해오고, 그래서 방문할 때마다 느낌이 남달랐을 것 같다.
"처음에는 군산이 아닌 동국사를 보러 왔다. 사람들은 나에게 군산에 간다고 했지만 나는 동국사에 관심이 있었다. 한국 학자에게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절이 있다고 소개받았다. 그 학자조차도 동국사를 못 보고 말로만 들었다고 해서 직접 보려고 방문했었다. 그때 동국사가 과연 어떤 일을 했는지 생각하게 됐다.
 
처음 왔을 때는 문동신 시장이었다. 그 후 계속 왔다. 그때 시장님 정책이 통하는 면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건축물에서 뭔가 배우려는 의욕이 서로 통했다. 목포나 인천에도 많은 건물이 남아 있다. 하지만 잘 활용하는 것 같지 않았는데, 군산은 자료를 많이 모으기도 하고 활용하는 면이 돋보였다. 유물들을 관광자원은 물론 학술자료로 활용하는 면에서 한국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치노헤 스님이 보내온 자료들
 이치노헤 스님이 보내온 자료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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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많은 유물과 자료를 보내왔다. 보람을 느꼈을 때는?
"자료 구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려움 속에서도 충실감, 만족감을 느낀다. 열 번에 한 번만 맞아도 성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의 성공은 백 번의 실패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일본 조동종 개조 도겐(道元) 선사 말씀처럼. 그렇게 어렵게 구한 자료들을 종걸 스님을 비롯해 여러분들에게 보내드리는 게 큰 기쁨이다.
 
요즘엔 군산 시내 영화관에 걸려 있던 포스터에 관심이 많다. 임팩트가 큰 자료라고 생각해서다. 유리에 그린 포스터도 있다. 조선은행(근대건축관) 유리문에 그려진 포스터와 자물쇠도 구해서 종걸 스님에게 보내드렸다. 지금 군산 박물관에 <로마의 휴일> 포스터가 붙어 있는데, 근대역사박물관이라고 하면서 그런 포스터가 걸려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
 
- 아쉽거나 어려울 때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인데. 동국사는 일제강점기 금강사(錦江寺)였다. 그때 주지 스님 네 명이 근무했다. 그중 4대 주지 기무라 스님 행적을 몰라 안타깝다. 전쟁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간 후 행적이 남아 있지 않다. 그분이 일본에서 근무했던 절 조차도 자그만 창고 같았다. 상당한 절(금강사)에 근무했음에도 일본에 가서 왜 그렇게 어려운 생활을 했는지, 일제강점기가 기무라 스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밝혀보고 싶지만 좀처럼 자료가 나오지 않아 못하고 있는 게 어려운 점이다."
 
'항일운동의 3대 성지' 중 한 곳인 전남 소안도 참배 예정
 
 희망을 말하는 이치노헤 스님
 희망을 말하는 이치노헤 스님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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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2월에도 중국 남경에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남경에 자주 가는 이유는?
"일본 오타니파 다이토 스님이 남경에서 평화 법회를 주도해오고 있다. 나도 그곳 연구회에 가입되어 있고, 다이토 스님과 친구도 된다. 처음에는 그분이 남경에 가자고 해서 가게 되었다. 그도 나와 함께 일본 불교와 일본군이 중국에서 어떤 일들을 자행했는지 그러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수집한 자료도 남경기념관에 기증했다."
 
- 4년 전인가. 중국 청도 지역에 있었던 '위안소' 사진을 공개하면서 '일본인이기 전에 한 사람의 불교도로서 위안부 문제를 널리 알릴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청도 위안소 사진은 중국 자료이기 때문에 남경박물관에 기증했다.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또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본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이토 스님과 내가 중국과 한국에 자료들을 제공했다. 지금도 일본에는 위안부 문제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허구라는 게 이미 밝혀졌다."
 
- 올해는 삼일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책 <조선 침략 참회기>를 쓴 입장에서 소감은?
"나에게 삼일운동은 각별하다. 오는 6월쯤 전라남도에 있는 섬 소안도(所安島)에 다녀오려고 한다. 삼일운동을 되새기게 하는 기념관과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많은 태극기가 걸려 있는 그곳에서 독립운동 하다가 희생된 분들을 위해 분향하려고 한다." (소안도는 일제강점기 치열한 저항정신을 보여줬던 자그만 섬으로 함경도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항일운동의 3대 성지'로 전해진다.-기자말)

- 앞으로 희망은?
"군산 명예 시민증이 나에게 큰 용기를 준다. 앞으로도 일제강점기 문제에 대해 더욱 열심히 연구해 나가겠다.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덧붙이는 글 | 이치노헤 쇼코(1949~) 스님은 일본 고마자와 (駒澤大學) 대학원 영미문학과 졸업. 아오모리현 운상사 주지이며 '사야마(狭山)사건 재심을 요구하는 시민모임' 실행위원이다. '인권, 평화, 환경' 활동을 위한 비영리민간단체 '촉광' 이사장이며 '동아시아 불교 운동사 연구회' 회원이다. 군산 '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조동종의 전쟁>(2010), <조선침략 참회기 - 조동종은 조선에서 무엇을 했는가>(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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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