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피렌체는 두오모와 미켈란젤로로 충분하다

고태규의 유럽 자동차 집시여행
19.03.20 15:57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41일째: 4월 14일 (일) 아주 기분 좋게 맑은 날씨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피렌체는 두오모와 미켈란젤로로 충분하다
 
지난번에 못 가본 우피치미술관에 다시 갔다. 오르세와 더불어 내가 기대하는 곳이다. 여기서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가, 장인이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바로 로마 다빈치공항으로 갔었다. 아침 6시부터 서두른 덕분에 30분 정도만 기다리다 입장하게 되었다. 지난번에는 1시간 이상 기다리고도 입장을 못했었다.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하면 좀 빨리 입장할 수 있는데, 자유여행자는 일정이 확실치 않아서 예약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직접 와서 줄을 서는 수밖에는.
 
관람 소감은 기대와 명성에 비해 좀 실망스럽다. 인상적인 작품은 10개가 안되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이 보티첼로의 <봄>과 <비너스의 탄생>, 렘브란트 자화상 2점.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주로 기독교 성화가 많았는데, 나는 성화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 샤갈이 직접 방문해서 기증했다는 그림을 기대했으나 어디에 있는지 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 미술이나 중세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보물 창고와 같은 곳이다. 상당 부분의 전시실이 로모델링 중이어서 아마도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3층에서 내려다 본 아르노강의 풍경이 오히려 볼만했다. 강 위에 베키오다리와 여러 다리들이 남쪽과 북쪽의 주황색 중세 건물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여기도 사진이 금지라서 몰래 사진을 찍느라 애를 먹었다. 작품들을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 루브르나 샤갈미술관처럼 후레시를 사용하지 않고 카메라 촬영을 허용하면 좋을 텐데. 빛을 쏘지 않으면 작품에 손상이 가지 않는다. 작품 도록집이나 가이드북을 더 많이 팔아먹으려고 그런지 대부분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사진 촬영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나라 박물관은 관대한 편이다. 일본은 아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우피치를 나와 아카데미아미술관으로 갔다. 현장에서 입장권을 사려는 사람들의 줄도 너무 길었고, 미리 예약권을 산 사람들의 줄도 길었다. 전체 관람자 수를 통제하기 때문에 일정한 수의 관람자가 밖으로 나와야 그만큼 들여보내는 것이다. 입장을 포기하고 성로렌쪼성당과 메디치예배당을 보러 갔다. 오후 1시 30분에 오픈하는데 마침 성당에서 미사 중이어서 미사를 본다고 들어갈 수 있었다. 11시에 시작한 미사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성체만 모셨다.
 
산타마리아노벨라교회를 찾아 갔는데 내가 처음 본 그 교회다. '눈 뜬 장님'이라고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지난주에 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피렌체역 앞에 내려서 본 교회가 그 건물이었는데. 오늘은 앞 쪽으로 돌아가서 정문도 보았다. 앞모습은 별로. 앞에 있는 광장에서는 아마츄어 가수가 땡볕 아래서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다. 가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온 힘을 다하고 있는데, 관객이 별로 없어 분위기는 썰렁했다.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베키오다리 서쪽에 있는 이름 모를 다리를 건너 피티궁으로 갔다. 안에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4개 있는데, 내가 특별히 기대하는 작품이 없어서 들어가지는 안했다. 시에나의 깜포광장처럼 광장에는 수많은 일광욕 족들이 앉거나 누워서 뜨거운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가는 도중 명품관이 있는 거리에서 불가리 매장에 들어갔다. 내가 지난 2월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 보았던 2013년 신상 선글라스가 있었다. 270유로. 사려고 했으나 아내 얼굴과 싸이즈가 맞지 않을 거 같아 포기했다. 지난 2월에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이걸 사려다가 물건이 없어서 다른 것을 샀다가 욕만 직싸게 먹고 지금은 내가 쓰고 있다. 스타일이 남성적이고 내가 써도 사이즈가 커서 흘러내린다. 서울에서 이걸 반품하려고 문의했더니, 환불해준다고 해서 유럽에 와서 반품하려고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내 선글라스를 파리에서 도둑맞는 바람에 이걸 쓰고 다니다가 이제는 중고가 되어버려 반품할 수도 없게 되었다. 99유로에 베르사체 정품을 쓰면 괜찮은 거지 뭐. 물건은 확실히 좋다. 지금까지 10번도 더 떨어뜨렸는데,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다시 아카데미아갤러리로 갔다. 오늘 두오모를 몇 번이나 보는지 모르겠다. 내가 오늘 본 명소들이 모두 두오모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사방에 자리잡고 있어서 이동하려면 두오모를 거쳐 가게 되어있다. 지름길도 있겠지만 내가 길을 잘 모르니까 두오모를 기준으로 움직여서 그런 것이다. 두오모를 보니 오래 전에 감명 깊게 봤던 영화가 생각난다. 일본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우리나라에서도 히트했던 작품이다. 그 영화 첫 장면에는 두오모를 중심으로 피렌체를 시가지를 전체적으로 조명하면서 남녀 주인공 사이에 속삭이듯 이런 대화가 오간다.
 
아오이: 피렌체 두오모는 연인들의 성지래. 영원한 사랑을 맹세 하는 곳. 언젠가 같이 올라
가 줄래?
준세이: 언제?
아오이: 먼 훗날.
준세이: 먼 훗날, 언제? 한 10년 쯤 뒤?
아오이: 내 서른 번째 생일날. 약속해줄래?
준세이: 약속해줄게.
 
서로 다른 사람과 동거하고 있던 이 두 사람은 10년 뒤 아오이의 생일날 약속 장소인 두오모 꼭대기에서 다시 만난다. 아마도 이런 순정 소설 같은 스토리가 여성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 같다. 현실에서 그렇게 순진한 연인들은 거의 없다.
 
나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 여기에 있는 걸로 착각했다. 직원에 물었더니 여기엔 없단다. 어떤 일본 아가씨가 그걸 내가 방금 갔다 온 피티궁에 있는 미술관에서 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카메라에서 찍은 사진을 찾아보더니, 아니라고 한다. 내가 가이드북을 확인했더니 여기가 아니고, 로마의 바티칸박물관에 있었다. 지난주에 베드로대성당에 갔다가 그 박물관에 갔었는데, 일요일은 휴관이어서 가다가 발길을 돌렸었다. 다음 날 다시 가려고 하다가 그 차량 강도 사건을 당하는 바람에 모든 것이 다 싫어져서, 로마를 떠나 나폴리로 가버렸던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은 역시 명작이었다. 메디치가예배당을 보지 못한 보상을 여기서 받았다. <다윗-데이빗>이 단연 인기가 좋았다. 작품 배치를 전시장 중앙 코너에 해 놓아서 사람들이 거기에 몰리게 되어 있었다. 루브르에서 <밀로의 비너스>를 배치해 놓은 모습과 비슷했다. 작품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관객들이 바라볼 수 있도록 배치한 것이다. 몰래 사진을 찍다가 두 번이나 주의를 들었다. 나도 관람자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독자들에게 이걸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욕을 먹어도 찍어야 한다. 아내가 있을 때는 망을 봐주었는데, 지금은 혼자니까 자주 들킨다. 일본 호류지에서도 <금당벽화>와 <백제관음상>을 몰래 찍다가 들켜서 호되게 혼난 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 사람으로 어떻게 그런 작품을 찍지 않고 지나칠 수 있을까? 후레시만 터트리지 않으면 되는데, 지나치게 단속을 한다. 일본 교토 코류지(廣隆寺)에 있는 국보 1호인 관음보살상은 끝내 찍지 못하고 포스터만 찍어 왔다. 그 유물도 우리 국보 78호와 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정말 닮았다.
 
<데이빗>에 다가가기 전에 양쪽으로 서 있는 <팔레스타인의 피에타> 등 일곱 작품을 보면서 로댕의 작품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통 대리석을 덜 다음은 작품 기법이 로댕과 똑같았다. 중후함과 투박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당연히 로댕(1840-1917)이 약 400백 년 전의 대선배 미켈란젤로(1475-1564)를 모방한 것이다. 내가 미켈란젤로 작품보다 로댕의 작품을 먼저 보아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지. 여기는 미켈란젤로로 충분하다. 나머지는 별로 볼 게 없었다. 피렌체는 미켈란젤로 하나만 보아도 서운할 것이 없는 도시다.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다가 내 앞에 서 있는 아가씨 세 명을 만났다. 스페인 2명, 그리스 1명. 소피아, 바르바르, 엘레나.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교환 학생으로 서로 만나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영어도 곧 잘 한다. 그 중 바르바르가 선물가게에 있는 그림엽서에서 <데이빗>의 고추만 찍어 놓은 기념엽서를 발견하고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서로 웃는다. 한참 호기심이 많은 나이다. 기다리면서 한참이나 수다를 떨었더니, 지루한 줄을 모르겠다. 넷이서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사진을 내게 보내주라고 명함까지 주었는데, 아직까지 받지 못했다.
 
호텔로 돌아오다가 길거리 행상이 파는 여행용 가방을 하나 샀다. 35유로. 어제 호텔 부근 쇼핑센터에서 사려고 했던 세일 가방이 80유로였으니까, 싸게 산 셈이다. 물론 품질은 떨어진다. 맨 날 호텔 방으로 음식을 담은 쇼핑백을 두 개씩 들고 다니는 게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 사려고 했었다. 이제는 가방 하나로 깔끔하게 음식이나 식자재를 호텔 방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방에 들어와서 테스트를 해봤더니 좀 작다. 가장 큰 걸 살걸 그랬나보다. 제일 큰 사이즈는 45유로라고 했었는데.
 
저녁을 먹고 인터넷으로 베니스에 숙소를 알아보았으나 여의치 않았다. 한인 민박은 80유로인데 주차가 안 되고, Ibis는 30킬로나 떨어진 파도바에만 하나가 있었다. 이태리에는 Ibis가 별로 없어서 불편하다. 우리 수준에는 딱 좋은 숙소인데. 이비스 블루(버짓)는 대개 50-80유로로 싸고, 인터넷 잘되고. 주차 잘되고. 안전하고, 접근하기 좋고, 친절하고, 서비스 좋고. 아침 식사도 7-10유로로 싼 편이다.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자고 밤 11시쯤에 다시 일어났다. 메일로 석사 학생들 논문 지도 해주고, 원고 쓰고, 하루하루가 정말 바쁘다. 여행 하면서 이렇게 바쁘게 보낸 적은 처음이다. 다행히 중간고사라서 학보 원고를 한 주 쉬어도 된다는 편집장 메일을 받고 마음이 편해졌다. 매주 원고 마감 시간에 맞추느라 정말 스트레스 받았는데. 날마다 원고를 마감해야 하는 일간지 기자들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
 
아내에게 올 때 피부약, 건전지, 보험계약서, 여행일정표를 가지고 오라는 메일을 보냈다. 살이 2킬로나 빠져서 안 오겠다고 협박하는 걸, 겨우 설득해서 다시 합류하기로 했다. 19일 밤에 밀라노에 도착한다. 아내는 이런 집시형 여행을 싫어한다. 사실 이런 여행은 웬만한 사람은 못한다. 일주일 정도 하면 너무 힘들어서 나가떨어진다. 패키지 상품도 일주일만 지나면, 너무 힘들어서 입술이 다 불어 터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자유여행은 여행사 가이드 대신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일정과 프로그램을 본인이 스스로 물색하고 조정하고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여행이라기보다는 그것 자체가 노동이다. 다음 날 호텔 구하느라 밤에 몇 시간을 인터넷 앞에서 보내기도 한다. 관광 명소 찾아다니느라 엄청 헤매기도 부지기수다. 매끼마다 식사를 해결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어두운 밤에 현지에 도착하면 호텔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면 간단한데, 그렇게 하려면 엄청난 경비가 든다. 현지에서 여행사에 그런 일을 다 맡기면 아마도 유럽 3개월 여행에 2인 기준으로 1억 쯤 들것이다. 우리는 4천만 원으로 마치려다 보니까 이렇게 힘든 것이다. 아내도 그게 힘든 것이고. 패키지처럼 울루랄라 가이드만 따라다니는 여행을 생각하고 따라 왔다가 생고생을 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안 돌아오겠다고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주행 및 숙박 내역
 
주행 경로: 피렌체
주행코스: 피렌체
주행거리:
주행시간:
도로유형:
숙박: Ibis Red(50)
주차장: 지상/무료
아침식사: 별도
인터넷: 가능/무료
 
 

태그:#피렌체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