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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남 전 의원
 신기남 전 의원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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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 소설에도 민족이 뭔지, 종교가 뭔지, 이념이 뭔지 등 회의하는 시각이 강하게 배어 있다.
"나도 그렇다. 민족이나 종교를 부정할 수 없고,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그거 때문에 수많은 전쟁이 나오고, 남을 박해하고 가혹행위를 했다. 그런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평화적 민족주의, 개방적 민주족의로 가도록 국가나 언론이나 교육에서 많이 인도해야 한다. 

종교도 종교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집단들의 이기주의가 막연한 적개심을 강조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거다. 민족도 민족 자체가 아니라 민족을 이용한 이기주의가 문제다. 정치지도자들이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민족과 종교 개념을 이용하는 거라고 본다. 파괴적인 이념에 의해 세계가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인류의 집단지성이 시급하다. 많이 반성하고 있는데 집단지성이 미약한 나라에는 아직도 그런 게 많이 남아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계도 그렇고, 터키와 그 주변 여러 민족들도 그렇고, 중국과 티벳트, 위구르족도 그렇다."

- 소설 속 여주인공도 이렇게 물었다. "같은 땅에 살아도 종교나 민족이 다르다고 해서 서로 전쟁을 하는 이유가 뭘까요? (중략) 저 이슬람 모스크 돔 지붕과 가톨릭 성당 십자가에는 무슨 차이가 있다는 것일까요?"
"종교가 종교 그 자체를 위해 존속하는 거는 아니다. 나는 종교 그 자체가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필요하고 인간이 더 인간다워지기 위한 하나의 필요에 의해서 종교가 있다. 종교가들이 많이 각성해야 한다고 본다. 요즘 가톨릭이 많이 각성하고 상당히 잘하고 있다. 과거에 종교개혁의 대상이 됐던 가톨릭이 요즘 개신교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평화를 주장하고 포용하지 않나? 종교가들이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종교인들은 그렇지 않는 것 같다. 지나치게 절대주의, 배타주의를 주장하고, 그렇다 보니 평화가 무시되고 분쟁이 나고 서로 투쟁하게 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었으면 그리 하지 말아야 하는데...."

- 유고슬라비아 밀레티치가의 세 여인에 관한 이야기도 아주 흥미롭던데 그 이야기는 왜 넣은 것인가?(사촌 자매간인 즈텐카 밀레티치와 베라 밀레티치는 여성 파르티잔이자 공산당원이었다. 즈젠카 밀레티치는 티토의 연인이고, 베라 밀레티치는 또다른 파르티잔인 모마 마르코비치의 딸(미랴나 마르코비치)을 임신했다. 미랴나 마르코비치는 나중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부인이 된다.)
"몇몇 사람들은 밀레티치 여성들의 이야기에 감동받았다고 했다. 밀레티치 세 여성은 유고슬라비아를 뒤흔든 영웅들의 연인들이다. 그 여인들을 통해서 그 영웅들의 행적도 동시에 살펴보고 싶었다. 소설이니만큼 재미있고 낭만적이어야 해서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넣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세 권의 티토 전기를 읽었다. 그 전기들 중에 밀레티치 얘기도 나왔다. 밀로셰비치(세르비아공화국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이자 신유고슬라비아연방 대통령. 임기 중에 발생한 유고내전, 코소보 분쟁에서 강경정책을 취해 '발칸의 도살자'라는 악명을 얻었지만 내전 후반기에는 서방국가들과 협상해 데이턴협정을 이끌어냄)의 부인인 미라(미랴나 마르코비치의 애칭)는 여걸이다. 그래서 미라 얘기를 소설로 엮은 거다.

밀레티치 여자 얘기야말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소설이다. 그 부분은 다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잘 모른다. <독재자의 연인들>이라는 책도 있더라. 거기에는 스탈린 애인, 히틀러 애인, 밀로셰비치 애인 얘기가 나온다. 독재자들에게도 사랑 이야기가 있다."

'발칸의 도살자'라는 밀로셰비치의 공과

- 발칸반도의 지도자들을 보는 서구인들이나 서구언론들의 시각은 그것을 직접 겪은 나라의 국민들과는 차이가 크다. 주로 독재자로 묘사한다든지 등등...
"프랄랴크는 더욱 그렇고, 나는 밀로셰비치의 경우 변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다고 본다. 밀로셰비치를 '발칸의 도살자'라고 한다. 서방에서는 걸핏하면 그렇게 부른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자기들을 위해 희생된 사람이라는 시각이 많다. 그런데 서방은 자기들 편한 대로 해석하고 규정해 버린다. 그 민족의 처지가 되어 보지 않고.

밀로셰비치 전기를 읽어보면 그 사람도 할 말이 많다. 전범 재판을 받다가 어느날 감옥 안에서 갑자기 의문사했다. 변호사도 없이 재판했다. 자기가 변호사여서 자기의 정당성을 위해 스스로 싸웠다. 그가 주장하는 정당성이 전부 헛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강경정책으로 가다 보니 그런 비극이 일어났다.

1995년 데이턴협정(유고 내전의 보스니아 전쟁을 끝내기 위해 서방국가들의 중재에 따라 보스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3국 대통령이 이룬 합의)으로 보스니아 전쟁이 끝났다. 미국이 적극 개입해 성사시킨 건데 밀로셰비치가 그 협상에 응했다. 그런데 그 당시 세르비아 내에는 강경파가 많았다. 밀로셰비치만이 강경파가 아니다. '왜 굴욕적인 협정을 맺느냐?' 권좌가 위험할 정도로 밀로셰비치는 강경파로부터 엄청 많이 욕을 먹고 반발을 샀다. 하지만 밀로셰비치는 '지금은 협상할 때다'라며 자기 고집으로 협상했다. 밀로셰비치에게는 그런 공이 있다.

또한 밀로셰비치가 강경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데는 자기 민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내 압력이 있었다. 유고슬라비아라는 공동체(연방)를 분열시키면 안 된다는 세르비아 민족의 사명감이나 역사의식이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마구 독립해서 나간다고 하는데 그냥 놔두고 볼 수 있겠나? '위대한 티토의 사상은 어디로 갔나?' 이거다. 그런 점에서 밀로셰비치는 할 말이 있다.

나중에 밀로셰비치가 코소보에서 강경진압해서 무슬림을 많이 죽였다. 그것도 밀로셰비치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국내정치에 이용한 감이 있다. 코소보라는 땅을 독립시켜주기에는 세르비아의 반발이 엄청 심했다. 코소보에는 알바니아계 무슬림이 90% 이상이다. 그런데 그 땅이 세르비아의 성지다. 14세기 오스만 터키 제국이 쳐들어왔을 때 세르비아가 코소보에서 맞서 싸우다 전멸했다. 그렇게 해서 오스만 터키 제국이 더 이상 서쪽으로 못가게 막았다.

코소보는 세르비아 사람들에게 정신적 지주와 같은 곳이다. 우리의 백두산과 같은 곳이다. 거기를 무슬림한테 빼앗긴다? 오스만 터키 제국과의 전쟁에서 지는 바람에 이슬람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살아서 그렇지 원래는 자기들 땅이라는 거다. 그런 점에서 밀로셰비치는 할 말이 있다. 나도 밀로셰비치에 동정이 간다. 그는 원래 베오그라드대 법대를 나온 수재다. 변호사고, 인텔리였다. 그런데 정치계에 들어가다 보니 미라(부인)가 자기 남편을 밀다 보니 자주 강경정책으로 갔다. 하지만 항상 마음에는 (그런 강경정책에) 회의가 있었다.

그렇게 강경정책을 쓰고 있는 와중에 1995년 미국이 베오그라드를 포격했다. 그러니까 세르비아 강경파들이 결사항전을 외쳤다. 세르비아 군인들이 굉장히 용감하고 전쟁을 잘 한다. 자기들은 오스만 터키 제국과도 맞서 싸운 전통이 있다는 거다. 운동도 아주 잘한다. 축구도 테니스도 잘하고 농구도 세계 탑 클라스다. 그런데 밀로셰비치가 강경파를 누르고 협정(데이턴협정)을 맺었다. 미국의 회유와 강압도 있었지만 밀로셰비치 개인의 가치관도 작용했다고 본다.

알고 보면 각자의 입장이 있었다. 카라지치도 원래 의사(정신의학 전공)다. 그런데 보스니아 내에는 세르비아 사람들의 집단이 있다. 그들은 '보스니아가 독립하면 안 된다'는 의식이 있다. 카라지치가 뭐라고 했냐 하면 '보스니아가 독립한다면 우리 세르비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이쪽 땅은 세르비아쪽으로 가겠다, 그거 들어줘라'고 했다. 하지만 보스니아나 크로아티아가 그걸 안 들어줬다. '그래? 그러면 너희들 독립하는 거 반대야. 우리가 수백년 동안 살아온 이 땅을 왜 빼앗겨? 우리는 세르비아인들의 국가를 만들 거야.' 이렇게 됐다.

그걸 서양에서 보고 일방적으로 전쟁하고 전부 도살자라고 하는데 그것을 그쪽 사람들은 수긍 안 한다. 세르비아에 가면 서방에 대한 적개심이 많다. 포격을 안 했으면 통일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많다. 크로아티아는 가톨릭이다. 그래서 서방의 일부, 유럽의 일부라고 본다. 그런데 세르비아는 동방정교를 믿는 슬라브다. 그러니 서방은 크로아티아 편을 들었고, 세르비아는 그걸 비난했다. 서방이 종교를 이유로 세르비아보다는 크로아티아편만 든다고.

그러니까 세르비아 사람들이 대단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지금도 그렇다. 그게 언제 다시 재발될지 모른다. 미국과 EU 국가들의 포격에 의해 억지로 화평했는데 이게 몇 십년 지나면 어찌 될까 걱정된다. 또 다시 민족주의 바람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하고."

국제유고전범재판소의 판결은 합당한가?

- 소설에서 제기하는 중요한 질문이 "과연 유엔과 서방 강대국들이 유고전범재판소를 통해 주장하고 실현해온 정의가 과연 합당한가?"다.
"내가 볼 때 어쨌든 합당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우선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은 그쳐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전쟁은 최고의 죄악이다. 남북이 원수된 것도 6.25 전쟁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쪽은 서부유럽과 미국밖에 없다는 점이다. 거기서라도 강제로 폭격하고 평화유지군을 파견해서 전쟁을 막았다. 전쟁을 막아야 하는 지상과제가 있는데 그것을 할 수 있는 강제적인 힘은 서유럽과 미국밖에는 없었던 거다.

세 번째는 전범 재판을 함으로써 경고의 의미가 있다. 이전까지는 뉘른베르크와 동경 전범재판이 있었다. 이때에는 사형시키는 등 강경하게 했다. 그 교훈이 있다. 뉘른베르크와 동경 전범재판에서 전쟁을 일으킨 자는 책임지고 처벌한다는 교훈이 있었다. 물론 승전국의 횡포라는 비판도 있었다. 일본이나 독일이 이겼다면 미국이나 영국이 재판을 받지 않았겠나?

뉘른베르크와 동경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전범재판이다. 이제는 지휘관들도 처벌하는데 그 대신 사형제도는 없앴다. 전범 재판에 다소 무리가 있었어도 다음에 또 전쟁을 하면 지휘자 책임을 물을 거라고 경고한 거다.  이렇게 엄격하게 경고함으로써 전쟁의 재발을 막기 위한 유엔 정신을 보여줬다. 다소 의견이 다르고 무리한 부분이 있어서 동정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나나 남자 주인공인 준선도 그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 국제적 현실론을 인정하는 거네.
"그렇다. 가치관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그거 이상 나은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현실 가능한 최선책 아닌가? 우리는 언제나 차선책을 찾아야 하는데 차선책이 언제나 최선이다. 현실성이 있어야 하니까. 남자 주인공도 '재판소가 잘못했나? 강대국의 논리로 강요한 거 아닌가?' 하고 자문했다가 곧 '내가 한 재판에 자부심을 가진다, 정당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자답한다."

- 민족이나 종교가 아닌 이념에 의한 분단국가의 정치인으로서 그런 발칸반도의 역사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같은 케이스(case)는 아닌데 우리가 많은 공감을 얻고 같은 아픔을 느낀다. 우리도 그런 전쟁을 했던 나라고. 그 나라도 민족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웃에 살던 동료이고 주민이었다. 종교가 달랐지만 평화롭게 살았다. 그런데 전쟁이 나고 포퓰리즘에 의해 민족이 강조되다 보니 적개심이 나서 전쟁에 휩쓸렸다. 다른 민족끼리도 그런데 우리는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했다. 우리 분단은 우리 민족 스스로 한 게 아니다. 미국과 소련에 의해 만들어진 타협의 산물이다. 그래서 안타깝다.

이념이 서로 다른 사람과 집단이 생기는 것도 불행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불행은 전쟁을 했다는 데 있다. 그것은 김일성과 소련의 결정적인 잘못이고 패착이다. 씻을 수 없는 실수였다. 전쟁만 안 했으면 이렇게 원수가 안 됐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스스로 이념에 의해 분열했다고 보지 않고 외세에 의해 강제로 분열했다고 본다. 전쟁만 안 했어도 이렇게까지 원수가 안 됐을 텐데 서로 무수하게 죽였다. 그러니 원수가 안 될 수 없다. 저쪽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것 같지만 원한이 있다. 이것을 앞으로 어떻게 푸느냐가 중요하다. 그래도 우리는 전쟁한 세대가 아니다. 이제 후손들이 그 전쟁의 기억을 짊어지고 가지 말고, 전쟁의 기억에서 벗어나야 하다."

- 남자주인공의 전직이 유고전범재판소 재판부에서 근무한 판사인데, 이것은 소설에 발칸반도의 역사를 끌어오기 위해 동원한 설정인 것 같다.
"그 사람의 입을 통해 현실을 설명하고 싶었다. 게다가 내가 법률가니까 그 사람이 경험했던 재판을 내가 잘 소화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지 않겠나? 게다가 (남자주인공의 모델이 된) 권오곤 재판관을 내가 잘 알고, 평소에도 유심히 봐두었다."

- 소설은 끝부분에서 한국 정치에도 칼을 들이대면서 '분열의 정치'를 한국정치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다사다난한 우리의 근·현대사가 유고슬라비아 역사와 공통되는 요소가 있다고 느꼈다. 막판에 한국정치를 소설에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넣었다. 20년간 정치를 한 내가 느낀 것을 사족같이 슬쩍 넣음으로써 스스로 그런 말 하나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정치를 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게 있다. 정치인들이 자기의 세력 확장과 집권을 위해서 너무 과도하게 움직이고, 과도하게 언행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을 서로 분열시키고, 대립하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드는 정치를 지양해야 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성숙하고 세련되게 했으면 좋겠다. 우선 언행을 세련되게 하면 좋은데 너무 말을 함부로 한다. 자극적인 말을 해야 인기를 얻고 보도해주니까. 그 책임이 언론에 있어서 언론에 권고하고 싶은 게 있다. 언론이 정치인들의 자극적인 말을 크게 보도하면 거기에 자극받아서 국민들도 열광한다. 정치인들이 성숙된 언행을 할 수 있도록 언론이 유도해야 한다.

그런데 언론은 정치인들이 자극적인 말을 하는 거를 좋아하고, 심지어 기대하고 주문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정치가들이 언론에 의해 조종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해야 언론에 잘 노출되고, 유명해지고, 자기 편 내부에서도 칭찬받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 쉽다. 특히 정치에 막 뛰어든 사람들이 그런 착각을 하기 쉽다. 그래서는 안된다. 그러면 포퓰리즘에 의해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가 되고 만다."
 
신기남 전 의원의 첫 장편소설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
 신기남 전 의원의 첫 장편소설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
ⓒ 솔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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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투쟁은 군사독재와 싸울 때나... 21세기에는 달라야"

- 지금은 직접 정치를 안 하고 있지만 분열의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정치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치면과 행태면이 있을 거다. 가치면에서 보면, 우리 민족이 공동으로 지향해야 할 것은 평화와 민족통일이다. 이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야 하고, 중지를 모아야 한다. 같은 나라의 정치인과 언론, 국민이 그것을 일치시키지 못해 서로 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그리고 행태면에서는 아까 말한 대로 극단적 미움의 언어를 동원해 몰아붙이는 '대결구도 중심의 경쟁'을 세련되고 성숙한 경쟁으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도 야당 때 그랬지만, 한쪽은 무조건 반대하고, 한쪽은 무조건 밀어붙이는 극한투쟁을 했다. 그게 민주화운동시대, 군사독재와 싸울 때는 맞는 방법이다. 하지만 지금 21세기는 민주화운동시대에 했던 방법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나?"

- 그러면서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하면서 언론의 편파성, 아집, 편가르기가 분열의 정치를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언론이 민중들과 정치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가치면과 행태면에서 좀더 바람직한 구도가 만들어지도록 언론이 잘 이끌어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언론도 편 싸움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너무 극단적이다. 금도가 있어야 하는데 시종일간 어느 편에 서거나 하나의 논리로 나가는 것을 보면 언론이 언론이 아니라 정치집단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좀더 고급스러운 언론기자들, 편집진이 나와야 한다.

언론이 쓸데없이 주변적인 거를 너무 크게 보도하고, 그런 보도들이 지면을 많이 차지한다. 자극적인 거를 대문짝만하게 뽑는다. 과장되고 극단적이다. 진짜 필요한 기사는 별로 없다. 예를 들면 문화면에서 도서관 문제를 쓰는 언론을 못봤다. 우리(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가 뭘 해도 보도가 안된다. 문화면이 너무 약하다. 센세이셔널한 대중문화만 보도한다. 

매일 정당에서 최고위원회의나 원내대책회의를 하면 TV가 막 가서 보도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그거 하려고 아침에 나오는 거다. 꼭 하나씩 자극적인 것을 준비해오고 그게 언론에 제일 크게 난다. 내용도 없는 말들인데 말이다. 언론이 그걸 조장한다. 언론이 원래 그런 건가? 그러니 말을 험하게 해야 크게 나고 그게 인기있는 것이 돼 버린다. 가려서 보도해야 한다. 진짜 중요한 말은 크게 쓰고, 별로 중요하지 않는 장난 같은 말은 보도를 안 하거나 적게 써야 한다.

언론이 정치인들의 무거운 말, 진실한 말을 보도하면 정치인들도 그렇게 따라 간다. 정치인은 자기 인기가 올라가고, 표를 얻기 위해 사는 사람이고, 어떻게 해야 언론에 많이 나고 인기를 얻을지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정치인이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혹은 도덕적인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물론 가능하면 지성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면 좋겠지만, 대중이 투표하는데 그런 사람만 나올 수는 없다. 정치인은 대중하고, 유권자하고 수준이 같다. 그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언론이 유도해야 한다."

- 소설 속에서 통일이 가장 시급한 역사적 과제라고 하면서 '자주성'을 강조했다. 지금 한반도 상황에 적용하면 미국과의 공조 없이도 남북관계를 독자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현실을 무시하면 안된다. 미국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과거에 이 나라의 적화통일을 막아주고 경제부흥을 가져다준 공적도 있다. 다만 우리가 차지할 수 있는 부분은 우리가 하자는 거다. 우리도 힘이 생겼다. 국제적인 위상도 높아졌고, 경제력도 커졌고, 외교력도 강해졌다. 그래서 그 힘을 발휘할 여지가 있다. 미국의 위치가 중요함을 부정할 수 없지만 틈이 있을 수 있다. 과거보다 능력이 생겼기 때문에 그러한 틈을 잘 활용할 수 있지 않겠나? 우리의 독자적인 스탠스를 한껏 할 수 있는 거를 모색해보자는 얘기다. 이것을 지금 우리 정부가 많이 시도하고 있는 것 아닌가?"

- 소설의 끝부분에는 '포퓰리즘' 얘기가 나오는데 왜 넣은 건가?
"일부 집단의 선동에 의해 대중들이 움직이는 게 포퓰리즘인데 그런 정치를 하면 안된다는 거다. 정치인과 언론이 현실과 미래를 잘 생각해서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원칙적인 얘기를 한 거다."

- 하지만 일부에서는 '진보의 포퓰리즘'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합리성이 없는 선동을 포퓰리즘이라고 하는데 진보가 그게 필요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합리적인 주장을 하는 게 무슨 포퓰리즘인가? 그냥 '진보정책'이지."

- 진보의 포퓰리즘 중 하나로 요즘 대세인 페미니즘이 거론되기도 한다.
"대세는 아닌 것 같다. 언론이 흥미 위주로 부각해서 보도할 뿐이다. 그게 포퓰리즘이라고 칭할 만한 선동적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서구에서 이미 경험한 것을 우리가 이제 경험하고 있는 거다. 포퓰리즘이라고 하려면 강한 세력을 얻고 선동에 휩쓸려 갈 정도가 돼야 한다."

"이만한 기회라도 온 게 다행 아닌가?"

- 혹시 정치에 복귀하고 싶은가?
"지금이 6학년 중간 학기인데... 어디에선가 기자들이 물어봐서 단호하게 얘기했다. '오랜만에 좋은 기회를 얻어서 소설을 발표할 기회를 얻었고, 좋은 평가도 받고 있고, 앞으로 쓸 거리도 많은데 이거를 내던지고 간다는 건 지금 내가 선택할 길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가능하지도 않다.'

정치를 해보니까 정치계에서 존속하려면 좋은 말로 하면 자기가 자제해야 하고, 심하게 얘기하면 굴욕을 견뎌야 한다. 정치를 현실적으로 하려면 자기 뜻을 꺾고, 아부도 해야 한다. 그런 세계에 다시 가서 누구에게 아부하고 의지하고 기대고 자기를 낮추고 자기 하고 싶은 거 못하고,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것, 개인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싶다.

정치는 공적인 세계를 위해서 자기를 많이 자제하고 희생해야 한다. 그것도 의미가 있고, 많은 성과도 거두었고, 자부심도 갖고 있지만 그만큼 했으면 할 만큼 했기 때문에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한 걸 하고 싶다. 나를 위해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던 가치의 세계를 추구해볼 때가 됐다. 이만한 기회라도 온 게 다행 아닌가? 그런데 이걸 포기할 수 있겠나?"

- 두 번째 장편소설을 이미 썼다고 했는데 언제 나오나? 
"원래 소설을 두 권 써서 출판사에 넘겼다. 그런데 출판사가 두 번째로 쓴 소설을 먼저 내자고 해서 이번에 낸 거다. 두 번째 소설이 첫 번째보다 질적으로는 더 낫다. 첫 번째 소설을 쓰는 데 1년이 걸렸다. 1년 동안 그 소설을 쓰다 보니까 실력이 붙은 거 같다. 습작이 된 거다. 첫 번째 소설은 40년 만에 처음 쓴 거였다. 그러다 두 번째 소설을 쓰다 보니 소설 쓰는 기술이 는 것 같다는 걸 느꼈다. 첫 번째 소설은 두 번째 소설을 위한 습작이 됐다. 그리고 이제는 두 번째 소설이 첫 번째 소설을 개작하기 위한 습작이 된 것 같다. 첫 번째 소설은 구성이나 표현에서 좀 개선할 여지가 있다. 대대적인 개선작업을 구상하고 있다. 그 소설에서는 해군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내가 해군에서 복무하면서 한 경험을 많이 넣었다."

- 처음 쓴 소설의 제목이 뭔가?
"<목련의 연인>이다. 제목부터 이상하지만 3류 애정소설은 아니다. 목련은 해군장교의 하얀 제복을 상징한다. 난 그 제목을 그대로 쓰려고 한다."

- 어떤 내용인가?
"주인공이 해군장교 출신이다. 해군에 복무하다가 한 여인을 만난다. '한국판 사관과 신사'랄까? 주인공은 그 여인과의 관계를 계속해 나간다. 난 사랑을 길게 본다. 순간적인 게 아니라 일생을 가는... 결혼하거나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남녀간의 진정한 애정이 무엇인지를 표현해보고 싶었다.

이번에 낸 소설의 주인공은 국제유고전범 재판소의 재판관이었는데 다음에 낼 소설에는 국제형사재판소가 나온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국제적인 비인도적인 행위나 학살 등 전쟁범죄를 처벌하는 국제재판소다. 여기에도 한국 출신 재판관이 한명 배출됐다. 권오곤에 이어 두 번째 한국 출신 국제재판소 재판관이 된 사람(송상현, 2009년부터 2015년까지 ICC 소장을 지냈다)이 모델이다. 그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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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①] 소설가로 데뷔한 '천신정'의 '신' "발칸=비극' 선입관 깨고 싶었다"
[인터뷰 ②] 독약 마시고 자살한 '프랄랴크'를 아는가?

태그:#신기남,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 #밀로셰비치, #밀레티치가 여성, #국제유고전범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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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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