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 겨자먹기라는 속담이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열두번도 더 내뱉어 보는 말이다.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산부인과에서 제공하는 추가 의료 서비스부터 시작되는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고 나도 정부와 어린이집 연합회나 유치원 연합회가 각을 세울 때마다 아이를 볼모로 잡고 세싸움을 하면 학부모들은 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휴가를 내거나, 원장 뜻대로 동의서에 서명을 하기도 한다.
아이가 공교육으로 진입하고 나면, 아이를 볼모로 하는 고래싸움 틈에서는 해방된다. 하지만, 3월 첫 등교날 받아 오는 안내장을 보면 이게 무늬만 공교육이 아닌가 싶다.
지역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준비해야할 학습준비물이 무려 28종에 다다른다. 규격도 엄격하기 그지없다. 준비물 중 바구니는 용도는 사물함 안 정리용이다. 규격은 가로 15cm, 세로 20cm, 높이 15cm 내외이다. 필통은 천으로 된 것으로 마련해야 한다. 플라스틱이나 철필통은 학습에 방해가 되어 허락하지 않겠다고 한다.
교과서 정리용으로 플라스틱 책꽂이도 준비하라고 한다. 한 번 교실에 비치하면, 학년이 바뀌고 아이들이 바뀌어도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물품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학기가 시작되면 학부모가 부담하고 준비해야 한다.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준비한 것을 지워나가면서 준비하면 10만 원 가까운 돈이 훌쩍 지출된다. 아이가 둘이면 곱절이 된다.
물품 준비도 준비지만, 학생생활지도 협조와 관련된 안내장의 문구도 이해하기 곤란한 영역이 많다. "~다", "~까"의 말을 실천하자, 샤프 사용은 자제하라, 핸드폰 휴대를 원칙상 금지하며, 휴대해야 하는 경우 부모와 교사의 허락을 받고, 등교 후 교사에게 제출을 해야 한다는 규제도 있다.
이러한 답답함을 단체 대화방에 올리니, 다른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친구들의 더 답답한 내용들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성교제를 금지한다, 화장을 금지한다, 귀를 뚫지 마라, 휴대폰은 무조건 압수다' 등의 안내까지 다양하기 그지 없다.
대화방의 공유 글들과 올라오는 다양한 학교의 안내문을 읽고 있자면 이게 교육의 3주체의 일원으로 학생이 생활할 수 있는 학교가 맞는지 의문이 든다. 게다가 뒤늦게 녹색어머니회와 도서 도우미 등의 학부모 참여 여부를 묻는 안내장을 내미는 큰 아이는 무조건 해야 한다고 학교에서 이야기했다고 하며 조른다.
이렇게 답답한 내용의 깨알같은 글씨로 수도 없는 안내와 지시사항이 가득한 학기초 안내문을 받아들고 잠시 분노하지만 학부모는 다시 울며 겨자먹기로 자식 가진 부모이기에 이리저리 준비하고, 대충 눈을감고 보내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렇게 딱풀 뚜껑과 몸통에 이름 스티커를 붙이라고 안내하고, 바구니의 규격까지 규정하는 일이 교사들에게도 쉽지는 않은 노동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해, 아이들의 삶을 이렇게 깨알 같이 규제하는데 신경쓰느라 얼마나 노고가 크실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도 생긴다.
적어도 이 부분이 학교 차원에서 마련이 되고 준비가 된다면 교사의 업무도 학생의 지도와 교습에 더 집중될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말이다.
그러기에 왜 이 모든 것을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한 대한민국이 의무교육의 대상인 공립초등학교 3학년 아이에게 요구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깊어지다가도 울며 겨자먹기라는 속담을 되뇌이며 아이의 짐보따리를 꾸리고 있다.
부디, 공교육답게 국가가 딱풀이나 가위 그리고 지우개나 볼펜 정도는 교육 예산으로 지원해주고, 아이들을 온전한 주체로 인식하고 그들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주는 조금은 세련된 교육 인식이 마련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
학부모들이 나서서 아이들 교통지도를 해야만 안전한 환경이 아닌 학교가 경찰이 혹은 다른 국가의 힘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순간부터 집으로 오는 순간까지 온전히 지켜줄 수 있는 그런 날들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울며 겨자먹지 않는 교육을 좀 만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민에도 실립니다. 더불어, 본 글과 관련하여, 특정 학교나 특정 교사를 비난하거나 문제삼고자 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이는 제도 개선을 요청하며 인식개선에 대한 공유의 바람으로 쓰여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