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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앤라거갤러리'에서 열리는 '제니 브로신스키 전' 포스터
 "초이앤라거갤러리"에서 열리는 "제니 브로신스키 전" 포스터
ⓒ 초이앤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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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의 근원을 묻는 독일 작가 '제니 브로신스키(J. Brosinski)' 개인전이 삼청동 '초이앤라거갤러리(본사 쾰른)'에서 3월 27일까지 열린다. 전시명은 "할 수 있다면 날 잡아봐(Catch me if you can)"다. '스필버그'의 2002년 영화제목이다. 변장술에 능한 멋진 사기꾼이 주인공인 이 영화를 작가는 좋아한단다. "할 수 있다면 내 그림의 비밀도 캐봐"라는 말하는 것 같다.

브로신스키는 1984년 독일 '첼레(Celle)'에서 태어났다. 폴란드 이민자 출신이라 그런지 화풍에서도 삶의 난관에 대한 투지력을 보인다. 2006~2012년 '베를린 바이센제 미대(Weißensee Academy of Art)'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쳤다. 2011년 베를린에서 노이만(E. Neumann) 장학금, 2012년 슈투트가르트 학술장학금도 받았다, 2015년 등 라이프치히 레지던트 작가로 뽑혔다.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영국, 덴마크, 미국 등에서 전시를 했다.

"작품을 할 때만은 내가 삶의 주인공"
 
제니 브로신스키 작업하는 모습 작가의 홈페이지 사진
 제니 브로신스키 작업하는 모습 작가의 홈페이지 사진
ⓒ Jenny Brosin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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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요즘 독일과 유럽 등에서 잘 나가는 30대 작가다. 표현주의 전통이 깊은 독일에서 자랐다. 역동적인 세계 미술의 도시 베를린에 거주한다. 여러 나라에서 몰려든 작가들과 경쟁도 하며 자극도 많이 받는 모양이다. 그런 와중에 자기만의 차별화된 작업을 한다.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 제니는 2006년에 처음 베를린에 왔고 이 도시에 만족한다고 전한다. 지금 작가들이 너무 몰려와서 이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작업조건이 좋은 편이란다. 임대료도 괜찮고 베를린시의 지원도 있고 문화유산이 많고 일상을 활발하게 예술축제도 수시로 열린단다.
 
초이앤라거 갤러리 전시장. 왼쪽부터 '라거' 대표, '최선희' 대표 그리고 작가의메니저 '윌리엄' 작품 설명 중이다
 초이앤라거 갤러리 전시장. 왼쪽부터 "라거" 대표, "최선희" 대표 그리고 작가의메니저 "윌리엄" 작품 설명 중이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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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그녀의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비행기 공포증이 있어 이번에 한국에 오지는 못했다. 대신 그녀의 모든 작업 과정을 도맡아 관리하며 매니저 역할을 하는 '윌리엄'이 왔다. 그가 보기에 이 작가의 특징 중 하나는 "작업에서 재료를 쓸 때 유화만 아니라 요리나 청소할 때 사용하는 올리브 기름, 세정제 등을 즉흥적이고 충동적으로 섞어 쓴다는 점"이라고 설명한다.

아래 작가가 쓴 글을 읽어 보면 그녀가 언제 삶에서 온전한 주인공이 됨을 알 수 있다.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때 나는 내가 예술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신나게 작업을 할 때 사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캔버스 위에 결정을 내린다. 왜냐하면, 스튜디오를 벗어나 바깥세상에서 나는 정말이지 결정하는 걸 무척 싫어하기 때문이다."
 
최근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알베르트 욀렌(A. Oehlen)'
 최근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알베르트 욀렌(A. Oehlen)"
ⓒ ART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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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매체와 인터뷰에서 그녀가 선호하는 작가를 보면, 신표현주의와도 다른 추상을 하는 '알베르트 욀렌(A. Oehlen 뒤셀도르프 미대교수)',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감정을 중시하는 '클라인(F. Kline)', '회화성 없는 회화(painting without paint)'를 추구하는 '젠슨(S. Jensen 덴마크)', '탈회화적 추상'를 실험하는 '프랑켄탈러(H. Frankenthaler 미국)'등이 있다.

그녀는 전반적으로 탈회화적 추상화 계열에 가깝다. 미학자 진중권은 이런 회화에 대해 "화면에 물감을 칠하는 행위(painting)와 다르게 화면 위로 희석한 물감을 흘려 자국 남기기(staining)는 방식에 가깝다. 그러니까 화가의 터치를 통해 감동을 주는 게 아니라, 간판이나 인쇄물 같은 비인격적 제작물 즉 오브제를 통해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고 설명한다.

윌리엄에게 디지털시대에 이 작가는 회화의 위기감이 없냐고 물으니, 그는 이번 서울에선 회화만 소개되지만 실제로는 더 다양한 설치작품도 많단다. 브로신스키는 회화의 확장은 물론이고 회화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애쓰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그녀는 회화의 완성도보다는 회화의 가능성을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작품이 그림을 그리다 만 것 같다.

기존의 고정관념 깨는 추상화 
 
제니 브로신스키 I '아니야(Nope)' 유화, 올리브 기름, 꿰맨 캔버스에 목탄 145×114cm 2019. 지네가 보인다.
 제니 브로신스키 I "아니야(Nope)" 유화, 올리브 기름, 꿰맨 캔버스에 목탄 145×114cm 2019. 지네가 보인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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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미술을 해체하는 말 '아니야!'라며 회화의 새 출구를 찾는다. 게다가 지금은 회화의 전성기는 아니기에 그런 자리매김이 더 절박했나보다. 위에서 보면 그림이 그림 밖으로 나갔다. 또한, 작가는 색의 인위성을 없애려고 캔버스 천을 빨기도 한다. 때로는 화폭에 그린 것을 뭉개고 지우고 없애기도 한다. 그러다가 마음에 내키면 다시 그 위에 붓질을 시도한다.

예술이란 어디까지나 설명이나 해설이 아니기에 은유이고 표현이기에 또 작가는 선과 색상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넌지시 전한다. 적절하게 화폭에 만화 캐릭터나 영화, 음악, 문학과 관련된 문구와 숫자를 집어넣어 암시만 준다. 관객이 읽어내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다.

그래서 때로 작품이 어설프고 유치하고 엉뚱하고 부실해 보인다. 이게 다 완성된 작품이란 말인가 싶다. 그런데 실은 엄청나게 계산된 그림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그림은 지능적이다. 전시 제목처럼 작가가 숨긴 작품의 비밀을 캐려고 관객은 보물찾기를 해야 한다.
 
제니 브로신스키 I '마음을 풀고 살어!(Loose yourself)' 꿰맨 캔버스에 유화, 스프레이, 올리브 기름, 목탄, 아교, 106×94cm 2019. 제목이 관객의 눈길을 끈다
 제니 브로신스키 I "마음을 풀고 살어!(Loose yourself)" 꿰맨 캔버스에 유화, 스프레이, 올리브 기름, 목탄, 아교, 106×94cm 2019. 제목이 관객의 눈길을 끈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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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회화는 캔버스보다는 오브제 위에 그리는 추상화에 가깝다. 스프레이 작업도 당연히 들어간다. 팝아트에 단골 메뉴인 낙서도 즐긴다. 작가는 순간순간 떠오르는 자유로운 느낌을 '자동기술법'으로 처리한다. 전통회화의 규칙과 형식을 파괴하면서 정형에서 벗어나려 한다. 바느질도 활용한다. 때로 신발 자국도 나 있다. 찢어진 천에 캔버스를 붙였다 뗐다 한다.

위 작품의 제목이 '마음을 풀고 살어"다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말고 살라는 충고인가!

작가 자신도 "난 통제를 잃고 싶다"고 말한다. 위 작품명과 같은 메시지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겠다는 소리다. 말도 안 되는 차별화된 재료로 승부를 건다. 올리브잎, 곤충, 목탄, 흙, 지팡이, 먼지, 석탄, 흑연, 담요, 스테이플 등 화면에 별것이 다 들어간다. 누구는 이렇게 막 나가는 듯한 이런 틀에서 벗어난 추상을 '좀비 형식주의'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어떤 경우에도 희망의 끈 놓지 않는다
 
제니 브로신스키 I '희망하는 건 실수가 아니다(Hope is no mistake)' 꿰맨 캔버스에 유화, 스프레이, 올리브 기름과 스틱, 목탄. 50×200cm 2019
 제니 브로신스키 I "희망하는 건 실수가 아니다(Hope is no mistake)" 꿰맨 캔버스에 유화, 스프레이, 올리브 기름과 스틱, 목탄. 50×200cm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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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을 보면 우리는 'HOPE'라는 단어를 적었다고 지웠다 한 걸 알 수 있다. 작업의 과정마저 여과 없이 보여준다. '희망은 실수가 아니다'라는 제목에서 삶에 대한 작가의 긍정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작가는 관객에게 자기 나름으로 작품을 보면서 이 작가가 왜 이런 작품을 했는지 추리하고 상상하도록 이끈다. 또한, 궁금하게 만들어 이것저것 질문하게 한다.

철없는 아이가 장난을 치듯 그렇게 그렸지만, 작가의 이런 방식은 오히려 관객의 눈길을 끈다. 게다가 대부분 작품에서 동양화처럼 여백이 많다. 거의 화면에 70~80%를 차지한다. 과장하면 운동장만 하다. 그런 공백이 관객에게 오히려 생각할 여지를 제공한다. 그것이 더 심화될 경우 그들에 내면 속으로 파고 들어가 상상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녀는 작가이면서 싱글맘이다. 그러니 산다는 게 만만치 않다. 갑자기 방에 '지네'가 나타나면 당황한다. 이런 예기치 않는 일도 화폭에 그대로 옮겨진다. 그녀에게 멋지게 그린다는 개념은 없다. 거대담론이 들어갈 여지가 더더욱 없다. 다만 일기처럼 일상을 예술화할 뿐이다.

페인터가 아니라 사유하는 아티스트 
 
제니 브로신스키 I '국기(Flag)' 캔버스에 유화, 스프레이 페인트 300×60cm 2019
 제니 브로신스키 I "국기(Flag)" 캔버스에 유화, 스프레이 페인트 300×60cm 2019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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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작업할 때 창작의 우연성과 사고의 유연성에 중시한다. 거기에 유머도 가미한다. 그녀의 회화는 캔버스에 그린다기보다는 캔버스를 오브제로 삼아 만드는 설치미술 같다. 그래서 작품을 벽에 고정하는 게 아니라 벽에 건다. 언제나 변경 가능하다는 메시지다.

전지전능한 작가적 관점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근대주의 작가나 하는 일이다. 현대 작가는 그렇게 하면 자격 미달이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의 개입을 극히 절제한다. 색깔 대신 얼룩 같은 것을 대신 끄적인다. 그리고 좀 유치해 보이는 문구, 숫자. 기호 등만 추가할 뿐이다.

정리해 보면 제니 브로신스키 작가는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회화 이후의 회화' 즉 틀을 벗어나는 탈회화적 추상화가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녀는 단지 사물이나 사람을 재현하고 그것을 변형하는 페인터가 아니라, 관객까지도 그녀의 작품 속으로 끌어들여 그들에게 사유하고 참여하도록 촉구하는 아티스트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독일에서 서울을 기차로 왔으면 좋겠다"
 
초이앤라거 갤러리 공동대표인 ‘라거’와 ‘최선희’ 디렉터. 뒤 상단에는 고양이 톰이 제리를 쫓아다니는데 모습을 그린 '톰(TOM)'이 보이고 하단에는 ‘벼룩서커스(Fleacircus)’가 보인다.
 초이앤라거 갤러리 공동대표인 ‘라거’와 ‘최선희’ 디렉터. 뒤 상단에는 고양이 톰이 제리를 쫓아다니는데 모습을 그린 "톰(TOM)"이 보이고 하단에는 ‘벼룩서커스(Fleacircus)’가 보인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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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 앤 라거 갤러리는 2002년부터 유럽과 한국의 미술계를 오가며 일한 '최선희' 디렉터와 1998년부터 런던에 갤러리를 운영하던 독일인 '야리 라거(Jari Lager)'가 만나 2013년 쾰른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이후 2016년에는 서울 분관을 열었다. 여기에 최선희 자매인 독일통 '최진희' 디렉터도 합류한다. 이 3명의 공동대표는 지금 런던, 파리, 쾰른을 거점으로 삼아 맹활약하고 있다. 이번에 최진희 대표는 오지 않았다.

독일 라거 대표는 서울에 1년에 3-4번 정도 온다. 갤러리를 나오면서 하는 그의 말, 서울을 기차로 오고 싶단다. 하긴 서울·부산 간 30분에 주파하는 고속기차도 예견된다. 유럽에선 한국이 매력적이지만 너무 멀고, 운송비 많이 들고, 남북대치로 리스크 높은 나라로 보인단다.

그래서 그는 안타까워한다. 북한이 막혔지만, 철도길이라도 열리면 좋겠단다. 일본은 섬이기에 어차피 비행기를 타야 하지만 남한마저 섬이 된 것은 아쉽단다. 그러면서 최근 독일 소식까지 전한다. 모든 걸 새로 시작하는 동독의 여러 도시는 요즘 서독보다 더 현대화되었다고. 하여간 남북화해시대에 라거가 들려준 독일 이야기가 내 귀에 더 솔깃하게 들려온다.  

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글 | [제니 브로신스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jenny_brosinski/?hl=ko&fbclid=IwAR0ICrAAgh_FbuNf-NvB2lSdslBiOqaom7w5WT4uA9bxBbJ3mk-D10ApP84
[초이앤라거 홈페이지] http://www.choiandlager.com/
서울시 종로구 팔판길 42. 총리공관 옆 070)7739-8808, 070)7739-7826
[제니 브로신스키작품 소개] https://www.artsy.net/artwork/jenny-brosinski-flag


태그:#제니 브로신스키, #탈회화적 추상주의, #최선희 , #야리 라거, #초이앤라거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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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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