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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독재자의 딸이 어떻게 대통령이… 야만스러운 미개국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그런 일이… 이 나라에서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라고 생각하죠. 스위스 사람 아무도 이해도, 용납도 못 해요."

몇 년 전 스위스 취리히에 갔을 때 현지 교민이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할 수 있냐"며 조국의 국민들을 원망했다. 그때 나는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3.1운동, 아니 3.1혁명 100년을 맞은 오늘날, 한국에서는 여전히 친일파, 독재자의 후손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태연하게, 뻔뻔하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 판·검사로 과도한 권세를 틀어쥐고, 고위 공무원이나 재벌기업인으로 갑질을 일삼고, 사이비 성직자나 교수나 언론인으로 특권을 누린다. 심지어 차기 대통령까지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완장을 차고 일본순사처럼 행세를 하고 있는 듯하다.
 
스위스 대통령은 집권하지 않아서, 국민들이 행복하다.
▲ 취리히 시민  스위스 대통령은 집권하지 않아서, 국민들이 행복하다.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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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대통령은 '집권'하지 않는다

스위스 국민들이 한국에서 그런 부적절한 대통령을 선출하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해보인다. 스위스의 대통령은 '집권'하지 않는다. 아무런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대통령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법으로 못박아 놓았다.

스위스 대통령은 그저 내각회의를 주재하는 의장 또는 사회자 역할에 불과하다. 심지어 그 정도의 자리마저 혼자 독점하지 못한다. 연방의회에서 선출한 7개 부처 의 장관들이 해마다 돌아가면서 맡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윤번제' 대통령제는 19세기부터 갈고 닦아온 스위스 직접민주주의의 찬란한 성과다. 일찍이 스위스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강대국의 외침으로부터 국토와 민족을 수호하기 위해 지방 분권에 기초한 직접민주제를 채택했다.

국가나 민족이라는 고고한 허상에 매달리기보다 자기 고향, 자기 가족을 지키자며 국민들의 전의를 독려했다. 옥쇄를 각오하고 사수하는 용맹무쌍한 스위스 용병의 신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한국은 대통령 1인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있다. '제왕적' 대통령인양, 국민의 주권을 모두 위임받은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한다. 지난 권위적 대통령 시절에 한국은 공화국이 아니라 전제군주국처럼 보였다.

공무원 임면권, 국군통수권, 외교권, 사면권, 법령집행 및 제정권, 지방정부 통제권 등 가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었다. 삼권이 분립이라지만 사실상 국회와 법원도 대통령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집권당의 대표나 원내대표도 청와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김구주석이 해방조국의 대통령이었다면……
▲ 김구 김구주석이 해방조국의 대통령이었다면……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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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가 해방조국 대통령이었다면

3.1혁명 100년을 맞이해 나는 '김구'를 다시 떠올리고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통일운동가이자 정치인 '김구'를 다시 생각한다. 의열단체 한인애국단를 이끌었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을 역임했던 바로 그 '김구'를 다시 그리워 한다.

"우리 나라가 자주 독립하여 정부가 생기거든, 그 집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은 일을 해보고 죽게 허락하소서"라던 김구가 남긴 말을 다시 꺼내어 복기한다.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경제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국방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만이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고, 타인에게도 행복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너의 소원은 무엇인가?' 라고 하느님께서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저의 소원은 오직 대한의 독립입니다." 라고 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인가?' 라고 물으시면, 나는 또 다시 "우리 나라의 독립입니다." 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인가?' 라고 세 번을 물으셔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 "저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완전한 자주 독립입니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 더 생각난다. 일본군 학병 탈출 1호, 마지막 광복군, 나의 스승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그 무시무시하고 무지막지했던 야만과 폭정의 5공화국 시절에 김준엽 총장은 사랑하는 학교와 학생을 지키려다 학교에서 쫓겨났다. 스스로 회고록에 이렇게 기록할 정도로 정권의 말을 듣지 않는 그에 대한 정권의 탄압은 가혹했다.

"(데모한 학생들을 처벌하라는 지시를 듣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문교부와 정면 충돌하고, 결국 재임중에 2차의 '계고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급기야는 민정당사 진입에 따른 처벌문제로 말미암아 강제 사임까지 당하고 말았다."

그는 오히려 총장을 지켜주려 애 쓴 제자들에게 감사와 공을 돌리고 있다.

"총장 물러나라는 데모는 많았어도 물러나지 말라는 데모는 그 데모가 처음이야. 제자들로부터 가장 성대한 환송을 받은 거지. 학생들이 내게 달아준 훈장이기도 하고."
 
다음 대통령은 통치는 하되 ‘집권’은 하지 않았으면……
▲ 청와대 가는 길  다음 대통령은 통치는 하되 ‘집권’은 하지 않았으면……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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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덜도 말고 김구 주석이나 김준엽 총장 같은 지도자가 대통령인 한국에서 단 하루라도 살아보고 싶다. 그렇게 기본적으로 '이치나 원리에 합당한',' 정의와 상식의 원칙에 따라'나라를 다스리는 합리적인 지도자를 학수고대한다.

친일파와 독재자의 후손들이 아니라, 성실하고 정직한 위대한 평민들이 대접받는 정상적인 희망과 행복의 나라를 갈구한다. 아니 스위스처럼 대통령이 아무 권력도 행사할 수 없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통치는 하되 '집권'은 하지 않는 그런 민주공화국을 염원한다.

덧붙이는 글 | 정기석 : 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시인('고고인류학개론 개정증보판')


태그:#한국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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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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