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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회항 사건으로 유명한 대한항공 전 부사장 조현아씨 부부의 이혼소송이 화제다. 재벌가의 혼사 스캔들이야 전혀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그들 부부의 이야기가 새삼 세간의 이목을 끄는 것은 전개과정이나 상황이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굉장히 드라마틱해서다. 얼핏 보더라도 작심하고 만드는 역대급 막장 드라마, 그 이상의 흥행요소들이 차고 넘친다.   

먼저 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남편이고 그 사유가 아내의 폭행과 폭언 때문이라는 점부터 그렇다. 대게 그 반대의 경우가 많고,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들은 원고와 피고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게다가 남편 측은 그동안 상습적으로 폭행당했다며 이혼소송과 별개로 아내를 형사고발까지 했다. 특수상해, 아동학대, 배임 등 그 혐의도 꽤 무겁고 위중하다.

뿐만 아니라 남편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는 듯 아내 조씨가 자신과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폭언을 퍼붓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도 공개했다. 화면에 비친 여성은 전혀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로 보였다. 이게 현실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레알' 스토리라니, 관전자들이 욕하면서도 눈길 주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노릇일 터다.

지극히 평범한 국민이라면 이 같은 전반적인 상황들을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남자인 남편이 여자인 아내에게 상습적으로 맞아왔다는 대목에 이르면 더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남성이 여성보다 체력이나 완력이 더 강하고, 상대적으로 폭력에 익숙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무리 재산 많은 아내라도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남자가 어디 있겠냐며 손사래를 칠 수도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건 고정관념이다. 실제로 이 세상에는 매 맞는 남자도 있다. 그것도 꽤 많다.

지난 2017년 이재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이 경찰청으로부터 넘겨받은 자료가 그 같은 사실을 입증해준다. 이 의원이 공개한 '2015년 이후 가정폭력 현황'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 7월까지 발생한 가정폭력사건의 피해자는 총 10만 7012명이었고 그 중 1만 4884명이 남성이었다. 가정폭력 피해자 10명 중 적어도 1명 이상은 남성이고, 해마다 5천 명이 넘는 남성들이 아내에게 맞고 경찰에 신고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그런 남성 피해자는 소폭이나마 해마다 늘어나고 있었다. 특히 60대 이상 고령일수록 전체 피해자 중 남성의 비중이 높고(약23%) 그 증가세도 가파른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들의 가정폭력 피해문제가 그냥 가벼이 봐 넘길 수준은 이미 넘어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재정 의원도 보도자료를 통해 "가정폭력 피해자의 75.5%가 여성이었으나 남성피해자도 매년 증가 추세에 있어 가정폭력문제는 성별의 문제로 국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실제로 폭행을 당하고서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2008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기혼남성의 19.9%가 폭언, 무시 등의 정신적 학대를 경험했으며, 11.1%가 육체적 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전체 기혼남성 10명 중 적어도 1명 이상은 매 맞아 본 경험이 있다는 말이다. 기혼남성을 총 9백만 명 정도로 보면 적어도 9십만 명이 그렇다는 얘기다. 신고 건수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매를 맞고도 그냥 덮고 넘어가는 남성들이 예상 외로 많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물론 해당 자료가 시기적으로 오래 된 것이라며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재정 의원의 분석처럼 남성피해자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황은 오히려 당시보다 더 악화되었을 지도 모른다. 비록 10여 년 전 통계치지만 그것을 지금의 현실에 대입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L법무법인 윤대기 변호사는 "아직 그 건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것은 아니지만 아내의 상습적인 폭력 때문에 이혼상담을 청해 오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남성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아내에게 똑같이 폭력으로 맞대응하면 큰 불상사가 있을까 우려해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는가 하면 맞고 나서도 그런 사실 자체가 부끄러워 드러내기조차 꺼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라고 말했다.

결국 남성들은 폭력의 피해자이면서도 남자로서의 위신과 체면 때문에 경찰신고는 물론 다른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하고 혼자 앓는 처지인 것이다. 더욱이 이들은 사회적 관심에서도 배제 되어 있다. 여성에 비해 워낙 소수인데다가 남성은 여전히 사회적 강자라는 인식 때문이다. K의원의 김선호 원장은 "심지어 골프채나 주방용품까지 휘두르는 아내들도 있지만 남성들은 그로 인한 육체적 상처보다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더 심각하다"라며 "자칫 평생을 괴롭힐지도 모르는 정신적 상처를 제대로 치료받지도 못하고 쉬쉬하며 안고 살아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씁쓸하다"며 안타까워 했다.   

폭력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인간의 악행중 하나다. 배우 김혜자씨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호소했다. 아이와 여성은 물론 성별이나 연령의 차이없이 누구나 폭력으로부터 보호 받아야 마땅하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예외가 되서는 안 된다. 세상 모든 남성이 여성보다 힘이 센 것은 아니고, 폭력이란 게 반드시 힘이 센 자가 약한 자를 상대로 휘두르는 것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조현아 부부의 이혼소송을 계기로 가정폭력 피해 남성들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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