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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지부장 조연희)가 지난 2월 26일 '학교 내 친일 잔재 1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서 발표된 것 중 하나가, 서울 시내 113개 초·중·고교의 교가가 친일파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또 친일파를 노골적으로 찬양하는 교가가 있다는 사실도 발표됐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다음날  '친일 낙인 찍어... 교가까지 바꾸라는 전교조'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비판했다.
 
"이날 전교조가 지목한 서울의 한 고교 교장은 '해방 전후로 개교한 학교 대부분이 당시 유명 문인과 음악가들이 쓴 교가를 수십 년간 쓰고 있다'며 '노랫말에 친일적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부 단체가 친일파라 주장하는 음악가가 썼다는 이유로 교가를 바꾸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친일이 청산되지 않은 나라다. 해방 직후에는 더 그랬다. 친일청산을 추진했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빨갱이로 몰려 해체된 사실이 보여주듯이 해방 전은 물론이고 해방 후에도 친일파는 여전히 강력했다.

미군정과 이승만 집단이 친일파를 비호하는 상황에서 교가를 의뢰받은 친일 예술가들이 지난날을 뉘우치며 글을 썼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학생들이 부르는 교가들을 한 번쯤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전교조 보도자료에 거론된 성남고등학교 교가에서 드러난다.

'원석 두 님이 나셔서'... 친일파 노골적 찬양 
 
성남고 교가비
 성남고 교가비
ⓒ 김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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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동작구에 소재한 이 학교는 일제강점기인 1926년 조양학원으로 개교해 1938년 원석학원으로 바뀌었다. 원석학원이란 명칭은 설립자 원윤수·김석원의 성과 이름에서 딴 것이다.

사업가 원윤수(1887~1940년)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위해 국방금품을 헌납했다. 군인 김석원(1893~1978년)은 1915년 일본 육사를 제27기로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가 됐다. 1931년 만주 침략 때 전공을 세워 당시로써는 거금인 700원을 상금으로 받았다. 1937년 발발한 중일전쟁 때도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친일인명사전>에는 두 사람 다 등재돼 있는데 이 중 김석원은 일본 군부도 인정한 전쟁영웅으로 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중국 베이징 부근에서 벌어진 남원(南苑) 전투에서 1개 대대 병력으로 중국군 1개 사단과 교전하여 남원 행궁(行宮)을 점령하는 전과를 올리자, 중일전쟁의 영웅으로 선정되었다."
"(1939년) 전투를 마치고 조선으로 귀국하여 전쟁 영웅으로 대환영을 받았다."

문제는 성남고 교가가 이 두 사람을 노골적으로 칭송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가에서는 먼동이 트여 온누리 환해진 이 강산에 원·석 두 님이 나셨다고 했다. 원·석을 거룩한 존재로 칭송한다. 여기서 '원·석'은 언급된 원윤수·김석원이다.
 
먼동이 트이니 온누리 환하도다
환한 이 강산에 원석 두 님이 나셔서
배움 길 여시니 크신 공덕 가이 없네
성남 성남 우리 모교 무궁탄탄할지어다
 
성남고 교가
 성남고 교가
ⓒ 성남고
  
작곡가 김순응과 작사가 조병의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다. 또 교가가 학교 설립자들을 찬양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설립자들이 친일파인데도 이들을 찬양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친일작품과 가사가 비슷한 교가도  

한편, 서울시 동대문구에 소재한 대광고등학교 교가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친일파 이광수(1892~1950년)가 죽기 3년 전인 1947년 대광중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은 학교다. 이광수가 지은 교가의 일부는 아래와 같다.
 
하늘의 큰 빛이 사람을 비추어
어둠의 그늘을 다 흩어버리다
미움과 싸움에 세상은 끝나다
사랑과 화평의 새 세계 세우자
 
대광고 교가
 대광고 교가
ⓒ 대광고
 
하늘의 큰 빛으로 인해 어둠이 사라지니 사랑과 화평의 새로운 세계를 열자는 가사다. 가사 자체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이광수가 지은 친일 작품인 <희망의 아침(希望の朝)>과 비교해 보면 해석 여하에 따라 친일의 잔재로 볼  소지도 있다. <희망의 아침>은 이렇다.
 
1. 밤이 새었다 희망의 아츰 동편 하늘에 솟는 햇발은
다들 받아라 듬뿍 받아서 소리소리 높여서 만세 불러라
2. 이러 나거라 우리 임금의 분부를 받자와 일억일심(一億一心)히
넓은 천지에 팔굉일우(八紘一宇)의 새론 세계를 일욱하라고
3. 대륙 이만리 대양 십만리 대아세아의 대공책국(大共策國)의
우리 일장기 날리는 곧이 자자손손 만대의 복누릴 국토

밤이 새고 어둠이 물러가며 하늘에서 햇빛을 비추기 시작했으니, 그 빛을 받아 온 천하가 한 집안이 되는 팔굉일우의 새로운 세계를 열자는 내용의 가사다.
 
이광수
 이광수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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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고 교가와 비교해 보면, 교가에 나오는 '하늘의 큰 빛'이 <희망의 아침>에 나오는 '하늘에 솟는 햇발'과 유사하다. 교가 속의 '어둠의 그늘을 다 흩어버리다'도 <희망의 아침> 속의 '밤이 새었다'와 유사하다. 교가의 '사랑과 화평의 새 세계 세우자' 역시 <희망의 아침>의 '팔굉일우의 새론 세계를 일욱하라고'와 비슷하다. 

친일할 당시 자기가 쓴 시와 정반대 내용 담기도 

한편, 친일파(1900~1979년) 주요한이 지은 교가들을 보다 보면 헛웃음이 날 수도 있다. 이전에 그가 지은 친일 가사들과 너무도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싱가포르 점령을 축하하는 의미로 1942년 3월호 <신시대>에 기고한 '마음 속의 싱가폴'에 이런 가사가 있다.
 
여보게 싱가폴이 함락되었다네
하지마는
자네 마음속에 아직 함락 못 된 것이 없는가
동아에 새론 날이 오는 적에
자네 가슴에는 아직 낡은 물이 고여 있지 않은가
아메리카와 영국의 유물이
자네 머리에 녹슬어 붙지 않았는가
자유니 권리니 이익이니 행복이니
자기니 개성이니 향락이니 성공이니
그따위 가짜들이 진짜 행세를 하고 있지 않은가
······
광대무변한 황은을 가리고 있지 않나

일본의 적국인 미국·영국의 정신적 풍토, 즉 자유·권리·이익·행복·자기·개성·향락·성공 같은 가짜들 때문에 광대무변한 일왕(천황)의 은혜를 느끼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가사다.

이런 시를 썼던 그가 서울 중구 덕수초등학교 교가에는 "날램과 슬기를 아울러서 우리는 자유의 선봉 된다"는 가사를 집어넣었다. 자유는 가짜라며 자유를 무시했던 '마음 속의 싱가폴'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일제가 패망하자 자유·권리·이익·행복 등에 대한 종전의 태도가 갑자기 바뀐 것이다. 이 교가를 지을 때 그가 진정성을 갖고 있었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주요한은 1940년 9월호 <조광>에 아래와 같은 시조를 기고했다. 고유의 시조 형식을 빌린 친일 작품이다.
 
동경서 오신 벗과 북경서 오신 벗님
동아의 너른 터를 한 집인 듯 여기도다
오대주 한 뜰 될 날을 머지않아 보오리

일본에서 중국까지 한 집을 이룬 여세를 이어 전 세계가 하나의 뜰로 통합될 것을 기대하는 시조다. '동경서 오신'과 '북경서 오신'에서 알 수 있듯이, 시조의 무대는 조선이다. 조선과 일본과 중국이라는 동아의 한 집을 발판으로 '조국'이 전 세계를 향해 뻗어가기를 희망하는 시조다.

이처럼 '조국 일본'의 팽창을 염원했던 그가 해방 뒤에 신석초등학교(서울 마포구) 교가를 지을 때는 우리 민족을 조국으로 지칭했다. 이 교가는 "비춰라 밝혀라 조국의 앞길을"이라는 구절로 끝난다. '조국 일본'이 팽창하기를 희망했던 사람이 '조국 한민족'의 앞길을 염려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이처럼, 친일파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거나 친일파가 지은 서울 시내 일부 학교의 교가들을 보노라면 납득할 수 없거나 친일 가요와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조선일보>는 '친일파가 썼을 뿐 교가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지만, 정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태그:#친일파 교가, #전교조, #이광수, #희망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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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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