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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까미노] 산티아고 데 까미노 프랑스길 32일의 기록 Day - 4

19.02.23 19:59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산티아고 ⓒ 김기열
 


네 번째 날이 밝았다.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전 날의 깨달음은 평소에 아침 열한시는 되어야 일어나서 아점을 먹고 다시 낮잠을 자는 이런 게으름쟁이를 새벽 7시에 일어나게 만든다.

아침해가 떠오를때쯤 출발해서 해가 최고로 뜨거워지기전, 오후 2~3시 사이에 알베르게에 도착하는게 목표다.

또한, 약국선생님의 조언이 계속 마음에 머물려 있어, 상황을 보아 버스점프를 하기로 한다. 작은 것을 이룰려다가 큰 것을 잃게 되고, 큰 것을 이룰려다가 작은 것을 잃게 되긴 싫었다.

삶에 있어 이런 타협과 인정의 정신이 때때로 필요함을 까미노를 통해 알았다.

시라우끼에서 로르까로 가는 길에 누군가가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어두었다. 보아하니 화단과 조각품들도 가져다두어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였나보다.

구경하며 걷다보니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보여야할 노란 화살표가 보이질 않는다. 까미노에서 길을 잃는 경우는 허다하다. 특히 지독한 길치인 나는 순례자의 앞 꽁무니만 따라가거나, 노란 화살표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다. 앞의 순례자만 따라가다보니, 그 순례자도 길을 잃었던 것이다! 날보고 낭패라는 듯이 우린 길을 잃었어하곤 돌아가야한단다. 난 두가지 선택을 해야했다. 이 순례자를 따라가거나, 나만의 길을 개척하거나(?)

후자를 선택했다. 순례자와 인사하고 휴대폰을 꺼내 구글맵을 켰다. 난 그때 몰랐다. 구글맵은 정통 까미노길이 아닌 최단거리를 알려주고, 높낮이는 전혀 말해주지 않는다는 걸.

최단거리라함은 보통 도로길을 말한다. 난 아침동안 마주오는 차들을 바라보며 도로 위를 걸어야했다. 아주 위험했다. 도로길을 걸을 때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차가 가는 방향이 아닌 오는 방향으로 걸어야 한다.

차들은 정통 까미노길이 아닌 경우엔 아주 쌩쌩 달린다. 순례자에겐 충분히 위협적이고, 오감을 들썩이는 경험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안다고, 그렇게 한시간을 걸으니 이건 악몽이고 깨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게 맞았다. 보통 까미노에서 길을 잃으면 다시 노란 화살표를 찾을때까지 한시간이 되었든 두시간이 되었든 왔던 길을 돌아가야한다. 그리고 화살표를 찾게 되면 그 길로 다시 가는게 좋다. 필자처럼 도전정신도 좋지만, 이건 당신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도로길이 이어진다. 높은 도로도 나타난다. 다행히도 이 도로는 까미노길과 이어지는 도로였다. 노란 화살표를 찾았고 기쁨의 탄성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신이 도왔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 다음 마을에서 바에 들려 아침을 먹고 갔다. 아침은 보통 스페인식 오믈렛인 또르띠야와 pan(빵), 오렌지쥬스를 먹었다. 보통의 바는 오렌지쥬스를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생오렌지를 착즙기를 이용해 짜준다. 이게 참 별미다.

에스떼야까지는 정통 까미노길이 계속된다. 난 저 갈색의 형체가 바위인지 알고 스페인은 바위가 참 신기하게 생겼구나! 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건초더미를 쌓아 올린 것이였다.
크게 난이도가 있지 않은 길이였지만 그늘이 없다. 아침시간은 길을 잃어 통째로 날려버리고, 해는 뜨거워지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마음이 급하면 길을 잃게 된다.

나는 또 길을 잃었고, 돌고돌아 에스떼야에 도착했다.
아예기에는 그 유명한 포도주가 나오는 수돗꼭지가 있다. 순례자에게 물과 빵, 와인을 나눠주던 전통에서 유래된 이라체 수도원의 기적이 보고 싶었다.
급히 아예기에서 다음 마을까지 가는 로스 아르꼬스행 버스를 찾았지만, 시간이 늦어 에스떼야 - 로스 아르꼬스 버스만 있었다.

아예기 - 로스 아르꼬스는 고독의 길이라고도 불리는, 12km 동안 마을도, 그늘도 찾아 볼 수 없는 구간이였다.

한숨을 머금고 정류장으로 향했다. 로스 아르꼬스까지는 버스로 금방이였다.

이 선택을 지금 생각하면 솔직히 아쉽다.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한다. 아쉬움이 다시 길을 걷게 만든다고, 아쉬움이 그리움을 키운다고.

이번 한번이 마지막이 아니다. 나에겐 남은 무수한 세월이 있고 그때 다시와 에스떼야 - 로스아르코스를 걷는다면 더 강한 기쁨이 임하지는 않을까 싶은 궁금증도 함께 뒤따른다.

그리고 혹시나 못 걷게된다고 하더라도, 아쉬움은 아쉬운대로 또 다른 가치가 있지는 않을까.

혹자는 말한다. 인간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났기에 아름답다고.
미완은 결코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란게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Anyway, 로스 아르꼬스에 도착한 나는 불편한 마음을 달래러 버스정류장 주변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는데

오늘의 하느님이 내게 준비한 선물이였다.
메뉴판엔 어떤 음식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베지터리안과 알레르기 있는 사람을 위한 배려로 가득했다. 스윗한 웨이터리스 덕분에 기분 좋게 주문했는데 아주 좋은 와인을 내주었다.

메인디쉬인 칠면조꼬치와 디저트 아이스크림을 맛보곤 난 이 마을에서 오늘 하루를 묵기로 결정했다.
살짝 취한채로 식당을 나선 나는 까스티야 문을 지나 공립 알베르게로 향했다.
몸을 씻고, 손빨래를 하고, 알베르게 앞의 잔디밭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데 검은 강아지가 날보곤 좋다고 뛰어와 안기고 뒹굴고 난리였다.

한참을 놀아주다, 날 보는 다른 순례자들과 마을주민들의 시선을 느꼈다.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들의 눈과 마주쳐 멋적게 웃곤 혹시 주인 있는 강아지라 실수했나 싶어 마을 주민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러자 전혀 문제가 없단다. 이 강아지는 스트릿 출신이고, 마을 사람들이 돌봐주고 있으며 자주 이 잔디밭에 와서 논단다. 그리곤 아까 놀던 모습을 좋게 보았던지 강아지를 백팩에 넣고 산티아고까지 함께 가는건 어떻나고 농담을 던진다.

그럴 수 있다면 그러겠지만 강아지가 싫어할 것 같다고 받아 쳤다. 난 이 강아지가 주인 있는 개라고 짐작한게, 털이나 코로 미루어 건강상태가 무척 좋았다. 스트릿 출신이 이렇게나 건강하고 친화적이라면 마을사람들의 사랑을 얼마나 받고 자랐는지 짐작이 갔다.

앞으로도 계속, 여길 오는 순례자들에게 주민에게 강아지가 사랑을 나눠주고 받았으면 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그날처럼, 낯선 순례자에게도 배를 보이고 발라당 눕지 않을까?

저녁은 다시 그 레스토랑에서 해결했다. 여전한 맛과 친절, 머쉬룸 소스에 차향이 나는 파스타와 연어구이, 바스크 지방에서만 나온다는 바스크 케잌을 차례로 끝장내곤 와인을 잔뜩 마셨다.
이 모든게 12유로라니 믿기지 않았다!

기억없이 숙소로 돌아갔고 그 날 밤도 와인숙취로 고생했다.
다신 순례 중에 과음을 하지 않겠다는 이루어지지 않을 다짐과 함께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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