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가장 낮은 까미노] 산티아고 데 까미노 프랑스길 32일의 기록 Day - 0

19.02.23 17:00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몽파르나스 ⓒ 김기열
 



"가장 낮은 곳에,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항상 곁에 임하옵시고, 고통받고 차별받는 영혼들과 함께 아파하시고 위로한 나의 주님의 사랑을 생각합니다. 부디 우리가 걸어갈 길의 환한 등불로서 존재하여 주옵시고, 타오르는 신념의 연료로써 소외받는 자들을 보고 듣고 느낄 힘을 갖게 하옵소서. 당신의 발자취를 영원토록 따라갈 것임을 가슴 깊이 맹세합니다."



시간이 되었다. 이젠 길고 긴 잠에서 깨어날 차례다. 내 앞에는 언제나 문고리가 하나 있었다. 그 문고리를 잡고 열어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이 너무 힘들어 오랜 세월을 보냈다.

결국 나에게 이 문고리를 잡고 열 힘을 준 건 도피감이였다. 그렇다. 나는 도망가고 싶었고, 달아나고 싶었다. 현실은 나의 목을 옥좨어 왔고 심장을 짓눌렀다. 그렇게 병을 얻었다. 세상은 나에게 쉬라고 했다. 단 한번도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넌 쉬어도 된다" 고, "잠시 어디가서 좋은 것 보고 맛있는 것 먹고 쉬다오라"고, 처음 이 말들을 들었을 때 내 귀가 의심이 갈 정도였다.

경마장의 말들의 눈에 쓰인 안대에 대해서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찾아본 답은 이랬다. '경주마들의 시선을 레이스장이 아닌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서' 오, 얼마나 끔찍한가, 그런데 경주마들의 처지를 걱정 할 시간이 아니었다. 당장 내가, 나도, 그런 안대를 눈 위에 쓰고 있었다. 어쩌면 더 독하고 까만, 무거운 안대. 병원에서 그런 판정을 받고 한동안 베개와 천장 사이에 떠있으며 누워있으니 그때서야 이 안대가 느껴졌다.

이젠 새로운 눈이 필요했다. 그래서 떠났다. 사실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의 '쉬다오라'는 이정도 수준의 말이 아니였을 것이다. 내가 덜컥 유럽을, 까미노를, 그것도 800km를 33일동안 다녀오리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떠났다. 문과 길은 내 앞에 있었다. 단 한번이라도 내 힘으로 내 길을, 내 문을 열어보고 싶었다. 적지 않은 삶이지만 난 그 무엇도 끝까지 이루지 못했다. 이번만큼이라도 끝을 보고 싶었다. 마지막이라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었다.

유럽이라니, 난 단 한번도 유럽에 가보지 못했다. 당연히 영어도 초중고 교육에서 배운게 전부다. 스페인어는 아는거라곤 올라와 그라시아스 밖에 없었다. 현실적인 문제도 발목을 잡았다. 경비가 부족하다. 난 그렇게 내 30여일의 생활을 책임질 7kg 남짓의 배낭과 등산화, 지치고 지친 마음, 운동부족으로 생긴 뱃살, 약봉지들 그리고 끓는 피와 약간의 설렘과 기대와 두려움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파리에는 밤에 도착했다. 길을 헤매다 보니 시내에 도착하니 9시가 넘어있었다. 미리 예약한 호스텔에 짐을 풀고 주린 배를 움켜지고 그래도 파리에 왔으니 에펠탑은 봐야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으로 에펠탑을 보러갔다. 에펠탑은 그냥 에펠탑이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에펠탑이다. 조명이 반짝이면 그걸 보는 관광객들이 우와!하고 소리지는게 더 인상적이였다. 실망감과 함께 숙소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한 노숙인이 구걸을 하고 있다. 숙소를 기차역 주변에 잡았더니 돌아가는 길에도 많은 노숙인을 보았다. 그리곤 내일을 위해 금방 잠들었다. 오랜 비행으로 기절하듯이.

유럽에서 맞는 첫번째 아침이다. 출력해온 기차티켓을 확인하곤 체크아웃을 하고 파리에 온다면 꼭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 향했다.

몽파르나스 공동묘지.

여기엔 보들레르와 모파상, 베케트, 샤르트르, 보부아르가 잠들어있단다. 이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쉬고 있는지 궁금했다. 또 죽은 뒤에서야라도 만나보고 싶었다. 이들의 책들을 읽으며 밤을 지새웠던 시간들을 나는 안다. 많이 늦었지만, 인사하고 싶었다.

묘지관리인이 딱 봐도 관광객 모습인 날 알아보고 유명인들의 묘지 장소가 적힌 판넬을 건넨다. 하지만 너무 넓고 많았다. 기차시간은 두시간밖에 안 남았다. 인사할 계획은 목례정도로 수정하고 일단 찾아나선다.

묘지의 분위기는 굉장히 차분하고 조용했다. 으스스한 느낌보단 따뜻하고 산뜻한 느낌까지 들었다. 아침 산책지론 더할 나위 없다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제각기 다른 개성의 묘비들이 재미있었다. 마치 이들이 죽고 난 뒤에도 각기 다른 모습으로 서있는 것 같았다.

유명인의 무덤은 결국 샤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묘지만 찾게 되었다. 안내판넬이 있어도, 미로같이 무수한 묘 사이에서 한 작가의 무덤을 찾기엔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였다.
샤르트르와 보부아르는 함께 묻혀있었다. 죽어서 영원히 함께인 이들 위엔 까르네(지하철 티켓)들이 놓여있었다. 나도 작게나마 까르네 하나를 올려놓고 눈을 감았다 떴다.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몽파르나스역으로 달려가듯이 가서 타는 곳을 체크했더니 기차가 너무 많다. 안내원에게 가서 물어보니 (2분 남은 시점이였다.) 화들짝 놀라면서 기차하나를 가리키곤 고고고고!! 하며 달리라고 한다.

겨우 기차에 탔더니 이젠 자리를 못찾겠다. 땀을 뻘뻘 흘리며 승무원에게 말하니 친절하게 내 자리로 안내한다. 내 옆좌석에 앉게된 프랑스 친구는 참 힘든날이야하곤 휴지를 건네준다. 인사를 하곤 땀을 닦고 안정을 위해 노력하다보니 이제야 기차 밖의 풍경이 보인다.

아름다웠다. 그제야 내가 까미노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있음이 실감이 났다. 이젠 돌아가지도 못한다. 이 기차 좌석은 비싸니깐.

그렇게 바욘에 도착했다.

프란세스 까미노의 출발지인 생장으로 가는 기차는 한시간 삼십분정도 여유가 있었다. 급하게나마 바욘을 살펴보고 싶어 역을 나섰다.
고풍스러운 동상과 시청건물, 넓은 강, 회전목마가 반겨준다.

골목길을 걸어 바욘대성당에 도착한다.
여기서 까미노를 출발하는 다른 순례자들도 있단다.
다행스럽게도 바욘을 수박겉핡기로 훑어보고 오니 시간의 여유는 있었는데..
출발시간이 되었는데도 기차가 오지를 않는게 아닌가!

멘붕이 와서 급하게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전광판으로 생장으로 가는 기차가 버스로 대체되었다는 방송을 찾았다.

이렇게 바욘 - 생장까지의 기차가 버스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단다.
버스 안은 순례자들로 가득차있었다.

이들의 알아듣지는 못해도 분명 기뻐하고 설레하고 있는 대화들을 듣다보니 금방 생장에 도착한다.

정류장에 내려 순례자사무실로 가기 위해 일단 다른 순례자들의 뒤를 따라간다.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이쯤되면 모두들 눈치챘으리라, 이 글쓴이는 아주 심각한 길치다.) 이 순례자들은 순례자사무실이 아닌 다른 마을로 가는 순례자들이였다. 하마터면 순례자 여권도 못받고 순례를 시작할 뻔 했다.

다시 방향을 잡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순례자 사무실은 보통 막차를 타고 오는 순례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저녁까지도 운행한단다. 모두 자원봉사자들이고, 다양한 언어를 하고 매우 프로페셔널하다.
나를 맞이하는 봉사자는 나에게 여러 정보와, 알베르게 리스트, 루트의 높낮이, 내일의 날씨등을 알려줬다. 나폴레옹 루트를 넘고 싶다고 하니 나를 한참 보더니 가능하겠어? 하곤 되묻는다. 날씨는 퍼펙트하단다. 다만 초짜티가 풀풀나는 이 뭣도 모르는 내가 걱정이 되었나보다. 잠시 생각하다 가겠다고 하니 축복을 빌어준다. 첫번째 세요도 찍어줬다. 그리고,

도나티보함에 2유로를 넣고 조개를 받았다. 배낭에 달아놓고 보니 제법 순례자풍이 난다. 오, 이젠 진짜 시작이다.

밖으로 나와 알베르게라는 곳을 찾아가보기로 한다.
시간이 많이 늦어 모두 가득찼단다. 이것을 생각했어야했다. 저녁시간에 생장에 도착한다면 특히 성수기땐 방을 구하기 어렵다.
붉은 빛을 띄는 생장거리를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한채 한시간을 알베르게를 찾아헤맸다. 가는 곳 마다 모두 자리가 없단다.

결국 1인방이 있는 하나남은 호스텔로 들어가게 되었다. 첫날부터 지출이 심했다. 악센트가 인상적인 여주인이 나를 맞아주었다.
짐을 풀고 내려오니 그 호스텔이 많은 고양이와 강아지로 가득 차있음을 알게되었다. 고백하건데, 나는 열성적인 고양이 애호가다. 마침 집에 두고온 우리 고양이도 생각났다. 주인에게 몇마리의 동물을 키우나고 물으니 무려 12마리의 고양이와 3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단다! 여긴 천국이다.

벽난로를 쬐며 살롱에서 고양이와 강아지들을 쓰다듬고 있다니,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주는 보상같이 느껴졌다. 난 언제나 이런 집에서 사는게 소원이였다. 리트리버와 수많은 고양이들이 나를 애워싸고 사랑을 나눠주는 그런 집, 첫날부터 인생의 버킷리스트중 하나가 지워졌다.
아주 많은 고양이들의 사진을 첨부하고 싶지만 지면이 모자름을 애석하게 느낀다. 다만 이 리트리버만큼은 꼭 보여주고 싶은데, 너무 스윗한 아이였다.
아이들과 놀고 있으니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여주인은 내게 아들 생각이 난다고 말하였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아는 프랑스어가 없었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반응을 하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한동안 동물친구들과, 여주인의 대화를 들어주었다.

밤이 늦어 내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으면서 내가 오늘 저녁도 걸렀음을 깨달았다. 내일부터 시작인 까미노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잠들었다. 아 배고프다 내일 뭐먹지 먹을건 있을까 이런..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