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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국가였던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은 추석과 설날 외에도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정월 대보름이다.

농민들은 한해 농사에 앞서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의 친목을 다지기 위해 대동회를 열고 달집도 태웠다. 농민들은 풍물을 치고 마을의 모든 집을 구석구석 구석 돌며 액운을 쫓았다. 마당과 안마당은 물론 부엌과 장독대까지 빠짐없이 모두 돌며 풍물을 친 것이다. 정월 대보름 무렵에 지신밟기를 행한 것이다. 물론 이런 풍경은 이제 기록으로만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로 귀해 졌다. 

대보름을 이틀 앞둔 지난 17일.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1구에서도 정월 대보름 행사가 열렸다. 물론 거창한 행사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끼리 모여 윷놀이도 하고 한기 식사를 나누는 조촐한 행사였다. 마을 회관 입구에 들어서자 주민들이 윷놀이를 하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 겨울이면 마을의 한편에서 자주 보았던 바로 그 모습이다.

이 마을에는 유난히 윷놀이 달인이 많은 모양이다. 모를 연속해서 4번이나 던지는 가히 '선수'급 실력의 주민도 있었다. 윷의 최고 단계인 모가 나올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럼에도 모를 곧잘 던지는 주민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윷놀이 중인 공세리 주민들. 주민들은 대보름 행사를 이틀 앞당겨서 진행했다.
 윷놀이 중인 공세리 주민들. 주민들은 대보름 행사를 이틀 앞당겨서 진행했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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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공세리를 찾은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얼마 전 마을 주민 한 분이 이날 '명예 주민증' 수여식이 있으니 꼭 참석하라는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빠듯한 일정이지만 거절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2월 달은 짧은데도 유난히 원고 청탁이 많다. 글 쓰는 것을 일로 삼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원고용지 20~30매 분량의 원고 청탁이 종종 들어오곤 한다.

원고지 10매 내외까지는 즐기는 수준으로 가볍게 쓸 수 있다. 하지만 원고지 20매 분량을 취재한 내용으로 채우는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기 이전에 노동에 가깝다. 글 노동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던 나는 요즘 나름 '시험'에 들어 있는 상태이다.

연속되는 '글 마감'으로 몸은 피곤했지만 공세리 일정은 거부할 수가 없었다. 주민들이 나를 위해 특별히 명예 주민증까지 준비했다는데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세리는 이진숙 부뜰(충남인권교육활동가 모임) 대표가 사는 마을이다. 취재차 마을에 자주 들르다 보니 어느새 공세리가 '우리 동네'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언젠가 마을 주민과 이장님에게 "이러다 공세리 주민이 되는 것 아닌가 모르겠어요. 명예주민이라도 시켜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주민들은 그런 내 말을 흘려듣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덕분에 나는 2월 17일 자로 공세리 1구 명예주민이 되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명예주민은 내가 처음이라고 한다. 물론 엎드려 절 받은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어쨌든 그런 감정은 뻔뻔하게 한쪽 주머니에 넣어 두고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만 따로 챙기기로 했다.

 
공세리 명예 주민증이 나왔다. 주민과 연대하는 삶, 내가 꿈꾸던 삶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공세리 명예 주민증이 나왔다. 주민과 연대하는 삶, 내가 꿈꾸던 삶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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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만들어 준 명예 주민증을 천천히 읽으면서 세심한 배려에 또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주민증에는 '위 사람은 공세리 마을에 대한 애정이 깊고 모두가 살기 좋은 마을공동체를 위해 연대해 왔기에 마을 주민의 뜻을 모아 대동마을(공세리 1리)의 명예주민으로 모십니다'라고 적혀있다. (명예 주민증에 적힌 주소는 공세리 1구 마을회관이다.)

주민증에 적힌 주민과의 연대, 초심을 생각하게 해

주민증에 적힌 '연대'라는 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난 2016년 서울 생활을 접고 귀촌한 나는 이런 저런 이유로 펜을 다시 들게 됐다. <오마이뉴스>에도 다시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그 무렵 다짐했던 것이 하나 있다. 회사나 관청의 입장이 아닌 주민의 입장에서 글을 쓰겠다는 다짐이었다.

최근 거부하기 어려운 청탁 원고가 늘면서 이런 초심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던 터였다. 거절할 걸 그랬나 하는 순간, 스트레스가 밀려오기에 청탁 받은 원고는 가급적 즐겁게 쓰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사람인지라 마감이 다가오면 어쩔 수없이 스트레스가 쌓인다. 청탁원고를 처리한다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취재하는 것을 뒤로 미룰 수도 없다. 그 때문에 두 배 세배 더 뛰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생기는 것 같다.

공세리 주민들은 이런 나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그들이 준 명예 주민증은 나에게 초심을 되돌아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나는 지금 초심대로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명예 주민증을 만들어 주민 공세리 1리 주민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태그:#공세리 주민 , #공세리 명예 주민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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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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