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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반죽해 새로운 이야기를 빚어내는 방식

박사랑, 『스크류바 』, 창비, 2017
19.02.15 22:51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이야기를 반죽해 새로운 이야기를 빚어내는 방식


  박사랑 소설가의 첫 소설집이다. 작가는 기존에 잘 알려진 텍스트를 자신의 상상력을 가지고 반죽하고 주물러 내서 새로운 소설들을 만드는 기법을 즐기는 듯하다. 작가의 등단작(2012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 수상)이기도 한 「이야기 속으로」는 그런 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을 보여준다. 김승옥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의 이야기 속으로 어느 순간 화자는 쑥 들어가 있다. 작가가 자주 쓰는 표현대로 하자면, 인물들에게 "따라붙"은 채로 화자는 소설 속을 함께 거닐게 된다.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소설은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이다. 어둡고 사람이 드문 주점을 보면 기웃거려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혼자 술을 마시다가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눠보는 상상도 했다.


"안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상호명도 한자로 쓰여 있는 소주병을 병따개로 직접 따야했던 그 시절, 어두컴컴한 포장마차 술집에서 처음 보는 남자들이 나눈 대화 치곤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알다시피 원작 소설에서 이들이 주고받는 말들이라는 것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엇나가고, 뒤에 합류한 출판사 직원의 죽음과 고통 역시 얽히기 싫은 마음에 방관해버린다. 박사랑의 소설 속 화자는 소설의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나이의 자살을 막으려고 각방을 쓰지 말고 함께 방을 쓰자고 필사적으로 제안한다. 그럼에도 사나이는 화장실에서 넥타이로 목을 메고 죽어버린다. 허탈해하며 빠져나온 화자는 "당신은 소설가이지 않습니까"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반복적으로 듣게 된다. 그의 손에는 급하게 빠져나온 여관방의 열쇠가 쥐어져 있다. 2012년에 살고 있는 그는 비슷한 상황에 또 마주한다. 외롭다고 같이 있어달라는 남자와 동행하고 방도 따로 잡지 않으며 자살을 할까봐 남자의 넥타이도 숨겨버린다. 남자는 다음날 아침 사라진다. 그리고 여전히 화자의 손에는 열쇠가 들려있다. 열쇠는 1964년에 김승옥이 작품에서 던졌던 문제의식을 작가가 다른 방식으로 또다시 이어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작가는 변주된 이야기 속에서 탐구를 지속한다. "당신은 소설가이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소설가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되묻는 듯하다. 원작의 이야기를 알아도, 결론은 바뀌지 않으며, 2012년은 1964년보다 더 외롭다. 1964년에는 각방에 남자를 방치함으로써 자살을 방조하지만, 「이야기 속으로」에서는, 그리고 2012년에는, 함께 방안에서 밤을 보내도 남자는 죽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외로움을 반죽해 더 외롭고 쓸쓸한 소설로 빚어낸 작가의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권태_이상」은 가장 최근에 쓰인 소설로 이상의 수필 「권태」를 차용했다. '매앵'과 '나'는 시골의 집에 휴가차 놀러갔다가 차와 핸드폰 배터리가 모조리 방전되어 버린 뒤 무기력함에 빠진다. 전자기기가 없는 곳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것을 찾지 못하며 친구인 두 사람은 욕정도 사랑도 아닌, "지루함" 때문에 섹스를 한다.

나는 이상이 느꼈을 참담한 권태에 대해 생각했다. 이것은 권태보다 더한, 권태 이상이었다. 아니다, 권태에도 끼지 못할 권태 이하인가. 아무튼 이 지독히도 푸르고 맑은 공간에서 나는 더 이상 생각할 일조차 없었다(27)

여기서 작품이 원래의 수필을 차용하는 기발함이 드러난다. 삶은 실제로 단조롭기 짝이 없는 일상들이 반복될 가능성이 많지만, 프레임 안에 찍어 해시태그를 달아 특별함이 있는 것처럼 부여해주는 현대인의 행위. 하지만 이상의 권태 '이상'으로 권태로움을 느낄 수도 있고, 그가 느꼈던 권태에 다다르지도 못하는 '이하'의 감정일 수도 있다는 예리한 비틂이다.

이상은 다르지 않을 내일에 오들오들 떨었지만 나는 내일이 달라질까 오들오들 떨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어둠속에서(31)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현대인은 권태 이하일 수도 있다고 지적한 작가의 비판의식이 더 날카롭게 드러난다. 권태로움에 못 이겨 몸부림치면서도 굳이 변화를 시도해보려고 하지 않는 더 무서운 무기력함.
세월호 사태에 대해 점점 일상처럼 익숙해져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알레고리 기법으로 그려낸 「사자의 침대」나 모성의 신화에 갇혀 여성의 욕망을 봉인해버렸던 엄마를 이해해가는 과정을 강렬하게 그려낸 「스크류바」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본문보다 흥미로울 수 있는 덧붙임
나는 작가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대학을 다녔고, 동아리 활동을 했다. 같은 동아리는 아니었지만 그녀를 한 번 본 적이 있다. "저 친구는 9살부터 소설가가 꿈이었고, 그거 외에는 한 번도 꿈꾼 적이 없대."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나는 꿈이 한 번도 없었고 그걸 향해 매진해본 적이 없어서 그 말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 가느다랗고 조용조용한 그녀를 보며 소설가란 저런 모습일거라고 원형적으로 담아두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시험 준비에도 실패하고 무기력함에 빠져있을 무렵 그녀가 궁금해져 검색을 해보았고, 2012년에 등단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린 시절부터 담아온 꿈을 마침내 이룬 사람의 노력과 수고가 결실을 본 것 같았다. 그녀의 첫 소설집이 나온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비슷한 시공간을 경험했기 때문에 느껴지는 정서나 장소들이 있어서 소설 속에서 그걸 찾는 재미도 있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문화예술위원회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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