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현재 프랑스에 살면서 취업준비중인 임준희씨(가명)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왔습니다. 노란조끼 시위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때로는 참여하면서 본 프랑스를 전하겠다고 밝혔습니다.[편집자말]
 지난 1월 12일 프랑스 노란조끼 9차 시위.
 지난 1월 12일 프랑스 노란조끼 9차 시위.
ⓒ 연합뉴스/EPA

관련사진보기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가 3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다. 정부의 유류세 인상으로 시작된 이 노란조끼 시위는 마크롱 대통령의 권위적인 태도와 반인권적 시위 진압, 집권기간 동안 밀어붙인 전방위적인 자유주의적 정책 등에 대한 전반적인 정권퇴진 운동으로 확장됐다.

그와중에 한국 언론은 가장 먼저 시위대의 '폭력성'에 주목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발전되지 못한 시위 문화에 비교해, 한국의 촛불혁명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자찬했다.

'폭력성' 주목한 한국 언론... 이것이 불편한 이유

촛불시위, 즉 박근혜 퇴진운동 당시 나는 '비폭력 평화' 시위에 대한 한국 사회의 강박이 한편으로는 불편했다. 마치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아주 먼 옛날일인 것처럼 까마득히 잊어버린 듯했다. 이런 강박에 사로잡히면, 경우에 따라 시위도중 발생할 수밖에 없는 폭력적인 상황으로 시위 자체를 전면 부정하고, 저항과 불복종의 자유와 권리를 축소해 인식하기 쉽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경찰이 마음먹고 폭력진압을 하거나 언론이 시위대의 모든 모습 중에 격앙된 모습만 과장 반복해 보여주면, 어지간한 시위는 모두 폭력시위가 될 수 있다. 국가 및 일체의 권위체가 민중을 부당하게 억압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때, 무차별적으로 비폭력을 주장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불법적 국가(및 권위체)의 폭력을 옹호하는 결론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폭력 시위에 반대한다면서 등장한 소위 '빨간 스카프 시위'를 보자. 나는 이들이 한국으로 치면, 박근혜를 지지하는 태극기부대 정도 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외치는 '비폭력-친정부'라는 구호는 국가의 불법적 폭력사용을 옹호는 것과 다름없다. 한국 언론은 이들을 두고 마침내 등장한 프랑스 문화시민인 것처럼 과장해 호의적으로 보도했다. 그들의 구호 중 "이제 폭력을 멈춰라"를 조명하면서. 

시민 권리 짓밟은 마크롱 정부
 
 지난 1월 15일 노르망디 시장들과 사회적 대토론을 나누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지난 1월 15일 노르망디 시장들과 사회적 대토론을 나누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 연합뉴스/AP

관련사진보기

 
'노란조끼 시위대' 속에 극히 소수로 섞여 있는 '깨부수는 놈(casseur)'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소수에 불과한 이들의 존재를 가장 반갑게 맞이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바로 마크롱 정부다.

마크롱 정부는 시위의 본질을 '깨부수기'로 환원하고, '노란조끼 시위' 전체를 불법 시위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시위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폭력시위근절법'을 하원에서 통과시켰다. 

지금 프랑스에서는 '시위 참가'와 '현행법 위반'의 간극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 시위에 나가기도 전에 폭력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물건을 소지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법적 제재를 받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2주전, 내가 살고 있는 지방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었는데 당시 경찰은 시 중심지로 접근하는 차들의 내부를 검문했다. 그 때문에 중심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심지에 거주하고 있다거나, 일을 한다거나, 시위에 가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다.

마찬가지 상황으로, 지난해 12월 8일에 파리에서 두 사람이 시위에 나가기도 전에 자동차 검문을 받았는데 차 안에 소지된 자동차 부품이 쇠로된 막대였다. 폭력 행위를 준비했다는 혐의가 적용돼 체포되기도 했다. 참고로 그들은 노란조끼를 착용하거나 소지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르몽드> 기사 참조). 

이런 식의 경찰검문은 형사소송법 78-2-2에 규정된, 범죄자 검거를 위한 경찰의 일반적인 권한에 근거한 것이다. 구체적인 영장 없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이런 검문은 명백한 경찰 권력 남용이라고 생각한다(관련 기사).

3월, 상원의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폭력시위근절법'은 경찰의 권력남용을 더 공고하게 법규화하는 작업이다. 만약 이 법안 통과되면 집회에 참여할 권리는 지금보다도 현저하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심각하다, 경찰 폭력
 
 지난 9일 파리에서 열린 '노란조끼 시위' 현장. 한 시위 참가자가 부상을 입은 뒤 '스트리트 메딕'과 함께 대피하고 있는 모습.
 지난 9일 파리에서 열린 "노란조끼 시위" 현장. 한 시위 참가자가 부상을 입은 뒤 "스트리트 메딕"과 함께 대피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EPA

관련사진보기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찰 폭력이다. 프랑스 경찰은 시위대를 정면으로 향해 고무 알갱이 수류탄(grenade), 고무총(flashball, LBD 40)을 쏴대고 있다(물대포와 최루탄은 말할 것도 없다).

시위도중 찍힌 영상들을 보면, 경찰은 그야말로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와 손을 조준해서 쏜다. 최근 들어서는 시위의 적법성 여부와 무관하게 취재할 권리가 있는 저널리스트들을 직접 겨냥해 부상을 입힌 경우도 잦다. 

그 때문에 2월 9일까지 노란조끼 시위에서 경찰폭력으로 183명이 머리에 부상을 입었고, 19명이 한 쪽 눈을 잃었으며, 4명의 손이 경찰 폭발물에 의해 큰 부상을 입었고, 1명이 사망했다. 신고된 410명의 사상자 중에 308명이 시위자였고, 37명이 미성년자 고등학생이었으며, 12명이 행인, 44명이 저널리스트 그리고 9명이 의료진인 것으로 알려졌다(프랑스 탐사보도 매체 메디아파르(Mediapart) 보도 참조).
  
최소한의 자기 보호를 위한 도구를 소지하는 것도 문제삼은 경우가 있다. 가령, 보호안경, 마스크, 인공눈물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구류된 이들도 있다. 이 물품들이 최루가스 등 경찰 진압에 대비한 것으로, 폭력을 일으킬 용의가 있다고 본 것이다.

한 프랑스인 친구는 공권력의 위협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시위에 나가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테러보다 경찰이 더 무섭다." 

프랑스인의 분노가 당연한 이유
 
 프랑스 유류세 인상 반대 '노란조끼' 시위 현장
 프랑스 유류세 인상 반대 "노란조끼" 시위 현장
ⓒ 연합뉴스/EPA

관련사진보기

 
프랑스의 경제·행정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은 '고성장으로 유지되던 유럽형 복지모델이 저성장으로 돌아서면서 국가재정에 심각한 부담을 주어 마크롱식 개혁이 불가피한데, 복지병에 걸린 국민들과 포퓰리즘적 정치세력에 의해 심각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일까. 

나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크롱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자유주의적 권위주의 정부의 한계와 민낯이다. 자유 없는 자유주의, 반민주적 권위주의. 지난 40여 년간 신자유주의가 추구한 국가 모델이다.

저성장과 복지병이 문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벌어지는 불평등과 심각하게 위축된 민주주의가 문제다. 프랑스같이 부유한 나라에서, 물가도 한국보다 비싼 나라에서 한 달에 150만 원으로 살아가는 걸 상상해 보라. 그 와중에 마크롱이 부유세를 없애고, 대신 서민 생활에 직격탄이 될 유류세를 전폭 인상한다고 했을 때, 프랑스인들이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정부에 항의하는 집회에 나간 이가 큰 부상을 입고, 그 시위대를 취재하는 기자가 경찰 수류탄에 맞아 쓰러지고 있다. 마크롱이 유류세 인상을 취소하고 최저임금 인상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반정부시위가 몇 개월째 지속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 2018년 12월 22일 토요일, 파리에 모여 드는 노란색 조끼를 입은 시위대의 모습.
▲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 2018년 12월 22일 토요일, 파리에 모여 드는 노란색 조끼를 입은 시위대의 모습.
ⓒ 연합뉴스/AP

관련사진보기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노란 조끼'를 입고 시위대에 나온 사람들의 불균질성이다. 그들 중에는 극우주의자, 파시스트도 있다. 반대로 코뮤니스트, 아나키스트, 페미니스트, 반-파시스트, 반-자본주의자도 있다. 농민, 노동자, 소상공인, 중소기업 사장, 자유직업인 등 수많은 목소리가 존재한다.

오늘날 프랑스가 처한 위기와 68혁명 이후 가장 대대적인 시위가 중요한 까닭은 위기 이후 나아갈 방향이 어디여야 하는가라는 중대한 문제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즉, 수많은 목소리 중에 적지 않게 섞여 있는 극우주의자, 포퓰리스트, 파시스트를 어떻게 골라내고 설득해 낼 것인가. 그 이후 존재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어떻게 화음을 이뤄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 말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