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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 의원, 강제진압 정당성 주장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이 2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용산참사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09년 1월 20일 용산 참사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용산 남일당 철거민 진압 작전을 총괄했던 김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강제진압 정당성을 주장했다.
▲ 김석기 의원, 강제진압 정당성 주장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용산참사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2009년 1월 20일 용산 참사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용산 남일당 철거민 진압 작전을 총괄했던 김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강제진압 정당성을 주장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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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똑같은 결정을 할 것이다."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경북 경주, 아래 직책 생략)의 말은 끔찍했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극치였다. 용산참사 10주기에 대한 국민적 추모와 성찰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반성하고 사죄해도 모자랄 진압 책임자 김석기(당시 서울경찰청장, 경찰청장 내정자)는 지난 21일 국회 기자회견을 자청해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당시 진압은 정당했고, 지금도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똑같은 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다.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특공대원 한 명, 여섯 명의 국민이 죽었는데도 똑같은 결정을 하겠다니. 또다시 죽이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만약 그가 계속 공권력을 쥐고 있다면? 국민의 생명뿐만 아니라 경찰의 생명까지도 희생시키는 결정을 또다시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더욱 끔찍한 건, 국민의 목숨도 가벼이 여기는 자가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이다. 

김석기는 기자회견을 통해 '당시 영상'과 '대법원 판결문', 그리고 '순수한 세입자가 아닌 외부세력'이라는 주장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모두 허술하고 편협하며 왜곡됐다.

[왜곡 하나] "화염병" 반복했던 김석기, 그가 튼 영상
 
김석기 의원, 강제진압 정당성 주장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이 2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용산참사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09년 1월 20일 용산 참사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용산 남일당 철거민 진압 작전을 총괄했던 김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강제진압 정당성을 주장했다.
▲ 김석기 의원, 강제진압 정당성 주장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이 2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용산참사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09년 1월 20일 용산 참사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용산 남일당 철거민 진압 작전을 총괄했던 김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강제진압 정당성을 주장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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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문제부터 살펴보자. 철거용역과 특공대 진압 등 특정 시간대에 있었던 철거민들의 저항을 온종일 있었던 일인 것처럼, 폭력성을 부각시키는 영상이다. 

지난해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밝혀낸 '용산 철거현장 화재사고 관련 조치 및 향후 대응방안'(경찰청 수사국 작성, 김석기에 보고) 문건을 보면 '철거민들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는 영상과 사진들을 편집해, 경찰사이버수사대 900여 명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퍼트리고 댓글 공작에 활용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21일 기자회견에 나선 김석기는 '화염병을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던지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어 특공대를 투입했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농성 첫날인 2009년 1월 19일 상황이 특공대를 투입할 만한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조기진압만을 위해 안전을 버렸다'고 발표했다. 

경찰이 작성한 시간대별 '정보상황 보고서'에는 특공대 투입을 결정한 1월 19일 낮 12시 30분의 현장 대책회의에서부터 1월 20일 새벽 특공대 투입 전까지의 대부분의 상황이 차량통제도 풀린 소강상태로 기록돼 있다. 화염병 투척이 특공대 투입의 이유라고 하는데, 최초 화염병 등장 1시간 30분 전부터 특공대 1개 제대가 현장에 출동해 배치됐었다.

[왜곡 둘] 김석기가 믿고 있는 대법원 판결

'대법원 판결'은 어떤가? 김석기는 '대법원을 통해 진압이 정당했다는 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과잉진압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컸음에도 검찰은 김석기에 대한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무전기 꺼놨다'는 뻔뻔한 책임회피성 서면 답변만으로 무혐의 처분해 기소하지 않았다. 오직 철거민만 기소돼 재판이 진행됐다. 

철거민들의 판결문에서 대법원은 "경찰의 공무집행 시기와 방법의 적절성과 유효성에 대한 아쉬움은 별론으로 하고, 경찰의 공무집행을 위법한 것으로 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여섯 명이 세상을 떠난 참사의 진압 시기와 방법은 그저 '아쉬운' 일이고, 이 재판에서는 조기진압(시기)와 과잉진압(방법) 여부는 '별론'으로 다루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공무집행이 위법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대법원 판결은 철거민들에게만 책임을 뒤집어씌운 판결이었다. 그 판결은 재판거래와 사법농단의 최정점으로 구속수감된 양승태가 주심판사로 내린 것이었다. 당시 이명박 정권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용산참사 사건의 재판이 얼마나 불공정하게 진행돼왔는지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왜곡 셋] 또다시 '외부세력' 이야기 
 
"김석기가 죽였다"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지난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 "김석기가 죽였다"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지난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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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는 또 '외부세력론'을 들고 나왔다. 김석기에 따르면 '5명의 철거민 중 2명만 순수한 세입자이고, 다른 희생자 3명은 세입자가 아니라 폭력시위를 선동하는 전철연 외부세력'이라는 것이다. 죽어서도 원통할 노릇이다.

참사 당시 54세였던 고 한대성씨는 경기도 수원 외곽의 논밭 가운데 위치한 작은 마을 신동에서 20년을 살았다. 결혼 10년 만에야 월세 단칸방을 벗어나 아담한 독채로 옮겨, 가진 것 없지만 행복한 가정을 일구며 살아왔다.

평소에 말이 없고 조용하던 그는 2007년부터 수원시에서 시작한 '신동지구 도시개발사업'으로 인해 절망하게 됐다. 논밭을 사이에 있는 보증금 500만 원 내외인 작은 농가주택이라, 보상비 몇 푼으로는 도저히 갈 곳을 찾을 수 없어 주거권 투쟁이란 것을 시작했다. 전철연은 똑같은 처지의 철거민들이 서로 연대해서 힘을 모을 수 있는, 유일하게 비빌 수 있는 언덕이었다.

용인 수지에서 용산 망루농성으로 연대하러 온 고 이성수씨(당시 51세)의 사연은 이렇다. 2007년, 그는 13년 동안 살아오던 집을 하루아침에 철거당했다. 10여 년 전에도 강제철거 당해 쫓겨났는데, 두 번째 강제철거를 당한 것이다. '뻥튀기' '즉석 생과자' 노점으로 생계를 유지해오던 그였다.

노점단속에 시달려오던 삶도 원망스러운 마당에 가족의 삶터까지 빼앗긴 터라 분노했다. 부서진 집에서라도 쫓겨날 수 없다면서, 천막을 짓고 살며 주거권 쟁취를 위해 투쟁했다. 유난히 사람을 좋아했다던 그는, 같은 처지의 전철연 회원인 용산 철거민들의 망루농성에 연대하러 갔다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경찰청에 마주한 서울 중구 순화동은 고 윤용헌씨(당시 49세)의 동네였다. '미락정'이라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식당 한편에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10년 동안 순화동에서 식당에 온갖 정성을 쏟으며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나 2005년 순화동 개발이 시작되면서, 영업을 하는 상가들이 있었음에도 철거용역 깡패들에 의해 동네는 폐허가 됐다.

2006년 추운 겨울, 철거용역 깡패들과 집행관이 '미락정'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물건을 빼앗아갔고, 가게를 폐쇄했다. 그는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주거권과 생존권을 되찾기 위해, 서울·경기 곳곳의 철거 지역 투쟁에 연대했다. 2009년 1월 19일, 가족들에게 '닷새 후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집을 나섰디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고 한대성씨, 고 이성수씨, 고 윤용헌씨. 김석기는 용산 철거민들에 연대하러 갔던 이들을 '폭력 선동꾼 외부세력'으로 몰았다. 죽어서도 모욕당하는 서러운 이름들이다.

김석기에게 철거민은 국민이 아니었다... 이런 그가 국회의원이다
 
 용산재개발지역 철거민들을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하면서 과잉진압 비난을 받고 있는 가운데, 진압작전을 승인한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이 22일 오전 진압작전 도중 사망한 고 김남훈 경사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 영결식장에 입장하고 있다.
 용산재개발지역 철거민들을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한 용산참사. 이 진압작전을 승인한 인물이 바로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사진은 김석기 의원이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었던 2009년 1월 22일 고 김남훈 경사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 영결식장에 입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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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의 "지금도 똑같이 할 것"류의 말은 어제오늘의 막말이 아니다. 2010년 3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용산의 경우) 미국 경찰이었으면, 발포했을 것"이라는 망발을 했다.

355일 만에 치러진 용산참사 장례에 대해 그는 "범법자들의 유가족에 돈을 줄 수 있는가?"라는 망언을 일삼아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모욕했다. 최경환에 의해 '진박' 인증을 받고 총선에 출마해서는 "용산 진압은 정당했고, 법과 원칙을 지켜 국가와 국민을 지켰다"라고 떠들었다. 

'정당한 법집행'의 결과가 국민 6명의 사망이라는 참사를 낳았다. 그게 정당한 법집행, 정당한 결과라 할 수 있는가! 그에 말을 종합하면, '철거민들과 경찰을 죽게함으로써 국민을 지킨 것'이 된다. 그에게 철거민들은 국민이 아니었다. 김석기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국민도, 경찰도, 국가도 아니었다.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자신과 이명박 정권의 안위밖에 없었다.

더이상 이런 자를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 국회는 금배지와 공소시효의 뒤에 숨어 유가족과 피해자와 국민을 모독하는 김석기를 방관해선 안 된다.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하지 못할 뿐, 범죄사실은 공식 조사로 밝혀졌다. 그를 국회의원에서 제명해야 한다. 국가폭력 사건에 공소시효란 있을 수 없다. 김석기의 가슴에 달릴 것은 국회의원 배지가 아니라, 수감번호가 돼야 한다.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피해 생존자들, 용산참사 10주기 추모위원회는 김석기의 국회의원 제명을 촉구하며 국회에 제출할 국민청원을 1월 31일까지 받고 있다. 국민의 이름으로 "지금도 똑같이 하겠다"는 김석기를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 김석기 제명 청원(https://han.gl/fjbvV), 2019년 1월 31일 청원마감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원호씨는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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