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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 공복상태에서 이 책을 읽는 건 위험합니다. 불금, 주말 밤에 읽는 것도 권장하지 않습니다. 중국집 배달 가능한 시간에 읽기를 추천합니다.      

짜장면, 짬뽕, 볶음밥, 탕수육, 군만두, 물만두... 오직 중식만을 다루는 책. 한국판 <고독한 미식가>에 최적인 책. 바로 그 책을 소개합니다.

 전국에 계시는 영화, 드라마 피디님들, 작가님들 제 말 좀, 아니 제 글 좀 읽어보세요. 어딜 가도 이렇게 좋은 콘텐츠 구하기 힘듭니다. 조영권 작가의 <중국집>은 이렇게 구성됩니다.       

- 에피소드 형식 (미니시리즈, 시즌 제작 다 가능!)
- 주인공이 매번 전국 각지로 출장을 떠남 (로케이션 헌팅 필요X, 제작비↓)
- 출장지에는 반드시 오래된 중국집이 있음 (중국집 섭외만 하면 끝!)
- 백발노인이 주방을 지킴 (출연자 많이도 필요X, 제작비↓↓)
- 출장 의뢰인과 주인공과의 인연 (감동 코드O)
- 한국인의 소울 푸드인 중식의 맛과 역사
- 음식과 피아노 조율이라는 안 어울리지만 또 그렇게 안 어울리지는 않는 조합의 매력     

 
<중국집>의 표지는 피아노와 조율사가 주인공이라는 반전!
 <중국집>의 표지는 피아노와 조율사가 주인공이라는 반전!
ⓒ CA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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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에게 출장이란  
 
  
"사실 장거리 출장은 수입에 큰 도움이 되지 않지만 나는 그 어떤 곳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건 바로 유별난 내 취미 때문. '전주 하면 역시 그걸...'"

<중국집>, 7쪽 (전북 전주 진미의 물짜장 편) 
    
 
목차 대신 차림표가 있는 이 책에선 전국 13개 지역, 37개 중식당의 26개 메뉴를 소개한다. 단순하지만 명쾌하고 강렬한 제목. 중, 국, 집. 이 세 글자가 풍기는 아우라가 굉장하다. 이 책의 저자는 조영권 씨. 그는 26년 차 피아노 조율사다.      
 
"음 높이의 기준이 되는 49번 건반을 440Hz로 맞추기 위해 나는 이 소리굽쇠를 이용하지만 요즘은 스마트폰 앱으로 맞추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중국집>, 8쪽
      
저자 조영권 씨는 26년 동안 피아노 조율을 업으로 살아왔는데 조율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어 피아노 매장도 함께 운영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디지털이 대세인 시대, 공교롭게도 조율이 필요 없는 디지털 피아노를 더 많이 팔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스마트폰 앱이 아닌 소리굽쇠로 음 높이를 맞추며 피아노를 조율하러 전국을 다닌다.  

전주에 가서는 물짜장을, 강릉에선 해물짬뽕, 익산의 된장 짜장면, 대구의 찐교스 등 지역 특색이 살아 있는 중국 음식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스마트폰 지도앱을 켜고 저자의 출장길에 따라나서게 된다.
 
"지방에서 조율 의뢰가 종종 들어온다. 여행을 좋아하고, 중국집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터라 마다할 리 없다. 게다가 요즘같이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 때에는 더욱 고마운 일이다. 이번에는 처가댁 근처 풍기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뜰이 넓은 주택에서 만난 업라이트 피아노. 131형으로 큰 피아노다."

- <중국집>, 116쪽 (경북 영주 일월식당의 수타짜장면 편)
    
 

전라도에선 술을 시키면 짜장이 나온다고??
 
"평택이나 군산, 인천처럼 서해안의 항구 도시에 화상 중국집이 많은 이유는 산둥반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배편으로 이주해온 화상이 많기 때문이다. 그 후손들이 뒤를 이어 지금까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 <중국집>, 73쪽 (경기 평택 쌍흥원의 짬뽕 편)

우리나라 대다수 화상 중식당은 산둥반도에서 건너온 화교 1세대부터 시작된 곳이 많다고 한다. 산둥 지역은 중국 공산당 영토여서 공산당에 반대하고 대만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건너온 것이라고. 음식과 함께 곁들여진 우리나라 화교의 역사를 알게 되는 것도 읽는 재미 중 하나다.      

전주의 50년 된 화상 중국집에서는 특이한 사실도 알게 된다. (전라도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
 
 "문을 열고 들어가 간짜장과 소주 한 병을 주문했더니 짜장 소스 한 접시와 소주부터 내어주신다. 전라도 지방 중국집에서 주류를 주문하면 어느 곳이나 이렇게 음식이 나오기 전 안주용 짜장 소스를 먼저 내어주는데, 무척 배려심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 <중국집>, 63쪽 (전북 전주 대보장의 간짜장)     

술을 시키면 안주가 짜장이라니!! 짜장이냐 짬뽕이냐 고민되는 분들은 짬뽕과 함께 술을 시키면 고민이 해결되는 신박한 방법이 전라도에선 통한다. 

지리적으로 고구마를 많이 재배하는 지역에선 감자 대신 고구마를 춘장과 함께 볶는데 고구마에서 전분이 흘러나와 면이 쉽게 불지 않는다고 한다. 경상도에는 교자만두를 쪄서 먹는 찐교스라는 메뉴가 있고 제주도에서는 중국 냉면과 비슷한 냉우동을 먹는다. 어딜 가든 있지만 가는 곳마다 조금씩 다른 특색 있는 메뉴를 글로나마 맛볼 수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두 번 찾아간 집이 딱 한 곳 나오는데 두 번 간 이유만 적어보자면 여름에 짜장면을 먹으러 찾아갔더니 멀리서 왔다고 하는데도 날씨가 너무 더워 면이 제대로 안 뽑힌다고 거절 당했다. 그래서 볶음밥을 먹고 돌아왔는데 심기일전해 추운 날씨 겨울에 다시 도전했지만 짜장면 대신 짬뽕을 먹고 돌아왔다고. 이것도 순전히 (추운) 날씨 때문이다.

오랜 세월 중국집의 주방을 지키며 직접 면을 뽑고 커다란 중국식 팬에 밥을 볶는 주방장은 거의 백발노인이란 점이 인상적이다. 대부분 화교 1세이거나 그들에게 요리를 배운 사람들인데 뒤를 이을 후계자가 없다는 게 아쉬운 대목이었다. 짜장면, 짬뽕, 볶음밥, 탕수육, 군만두 같은 중국 음식은 이제 중국의 음식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음식이 되어버렸는데 이들이 오랫동안 고수해 온 맛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니 하루바삐 전국의 중국집 탐방에 나서야겠다.       

음식보다 더 끌린 피아노 조율의 세계

<중국집>이 제목인데 책의 표지는 피아노와 조율사다. 그만큼 이 책에서 중국집 이야기만큼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피아노 이야기. 그것도 조율이라는 낯선 직업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피아노 조율은 현의 장력을 가감하여 음률을 맞추는 일로, 음악적, 수학적 과정을 통해 작업한다. 그 외에도 피아노의 거의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하기에 숙련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 <중국집>, 72쪽 (경기 평택 쌍흥원의 짬뽕 편)

 피아노 조율사의 세계를 그린 소설이 있는데 <양과 강철의 숲>이라는 책이다. 제목만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지만 양과 강철, 그리고 숲은 피아노와 아주 연관이 깊다.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오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양털 해머로 강철 현을 때린다. 그것이 음악이 된다."

- <양과 강철의 숲>, 77쪽
     
 

피아노에서 소리가 나는 원리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문장인데 <중국집>에는 좀 더 쉽게 설명돼 있다.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줄을 때려 소리를 내는 구조인데, 버트 플랜지는 해머의 아랫부분으로, 해머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는 축이나. 이 장치는 센터 핀으로 고정되어 있다. 센터핀이 너무 꽉 조이거나 헐거우면 해머가 기울어져 움직이고, 피아노 줄을 정확하게 때릴 수 없으니 좋은 소리가 날 리 없다. 피아노는 수제 시계처럼 여러 가지 부품이 정교하게 얽혀 작동한다."

- <중국집>, 25쪽 (충남 공주 동신원의 간짜장 편)

때가 탄 피아노 건반은 마른 천에 치약을 묻혀 닦는 게 좋고, 습기 제거가 중요하다고 가정용 제습제나 알갱이 형태의 실리카겔 등을 피아노 안에 넣는 건 안 좋다 등 노련한 피아노 조율사가 알려주는 피아노 관리법은 덤이다.

먼저 다녀간 조율사가 피아노 건압대에 붙여놓은 명함 스티커를 떼어내며 안타까워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피아노라는 악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통해 피아노 조율사도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음악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피아노 조율을 통해 만나는 여러 가지 인연도 재미있다. 한때 매장에서 같이 근무했던 직원이 결혼하고 집에 피아노를 들이며 다시 연락을 해오거나 어렸을 적 피아노를 배우던 학생이 유치원 선생님이 되어 조율을 의뢰하거나 저자의 블로그('퍄노조율사'라는 닉네임으로 블로그 운영)를 보고 연락해온 의뢰인도 있다. 무엇보다 작은 인연도 허투루 않고 소중히 대하는 저자의 성품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예전의 그 꼬마 아가씨는 보이지 않았고 늠름하고 아리따운 선생님이 꾸벅 인사를 하며 맞아주는데 나도 모르게 함께 머리 숙여 인사했다.(...)저 사람은 저렇게 어른이 되었는데 나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웃으며 대화를 나누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스쳤다. 나는 잘 살았을까. 잘 산다는 것은 뭘까. 나는 어떻게 변해온 걸까. 여하튼 시간은 참 빠르다."

- <중국집>, 73쪽 (경기 평택 쌍흥원의 짬뽕 편)    
 

이 책에도 나오지만 짜장면은 물가의 지표가 되고 짜장면이 맞느냐, 자장면이 맞느냐 맞춤법 표기로도 화제가 되는 우리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익숙한 음식과 시대에서 멀어져가고 잘 모르는 피아노 조율의 이야기가 뜻밖의 조화를 이루는 것,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중국집>을 읽고 주말에는 중국집 탐방을 떠나보는 것도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이 될 것이다.

*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메뉴는 익산의 모 중국집의 중국 황장 대신에 우리나라 된장이 들어간 된장 짜장면이다. 달콤한 대신 쿰쿰하고 고소한 냄새가 난다는데 과연 어떤 맛일지.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송고했습니다


중국집 - 피아노 조율사의 중식 노포 탐방기

조영권 지음, 이윤희 그림, CABOOKS(CA북스)(2018)


태그:#중국집, #피아노 조율, #짜장면, #탕수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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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영상번역작가. 인터뷰를 번역하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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