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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앞바다의 그 섬은 자그마했다. 헤엄치면 금새 도시의 뭍에 도착할 듯 가까웠다.

아동 납치범, 은행 강도, 상습탈옥범 등 흉악범 위주로 그곳에 배치되었다. 시설이 생각보다 좋았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3층짜리 고시원 쪽방 같았다.

높은 창문은 튼튼한 겹창살로 되어 있지만, 햇빛과 심지어 담쟁이 덩쿨까지도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도서관도 있었다. 책을 빌려 자기 방에 작은 서가를 꾸밀 수도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도시 곳곳에 걸려있는 액자처럼 그림에 몰두한 화가 죄수도 있었다.

1963년 3월 21일. 폐쇄하기 전 감옥의 마지막 식단이 식당벽 위에 아직도 남아 있다.

겨울엔 바닷 바람 불어 다소 춥긴 했지만, 야외 운동장도 있었다. 투옥된 죄수들은 그곳에서 야외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그들에게 단지 남달랐던 건 자유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건너편엔 밤마다 도시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반짝거리고 그곳으로 가는 다리인양
동쪽의 베이 브릿지가 온천지 가득 은색 별빛으로 흐르고 지는 해가 붉게 수평선을 물들일 때면 서쪽의 금문교는 황금 다리처럼 구름 위에 둥실 떠있었다.

그들에게 서러운 건 황금처럼 빛나는 도시의 광채였고 건널 수 없는 다리였으며
섬 아래 흐르는 세찬 물살과 가슴을 후벼파는 파도 소리였으리라. 그래서 빠삐용 영화를 방불케 하는 기괴한 탈옥 시도가 있었다.

간수가 죄수들에게 감금되어 살해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탈옥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도 있다. 섬을 휘도는 빠른 물살과 차가운 수온은 그들의 시도를 수포로 돌렸다.

그로부터 6년 후 알카트라즈는 또다시 갈등과 투쟁의 공간이 된다. 78명의 인디언들이 격리 위주 미국 인디언 정책에 항의하여 이곳을 2년 가까이 점령했다.

섬에 도착했을 때 섬의 역사를 소개하는 가이더 머리 위 벽에서 인디언 투쟁을 보여주는 빨간 글씨가 투쟁 흔적을 말해 주었다.

미리 예매를 하지 않으면 들어오지도 못할 정도로 관광객의 성황을 이루는 알바트라즈. 교도소 공간보다 더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예쁜 꽃들과 아름다운 새들이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이 섬의 꽃밭을 보살핀다고 한다.

캐나다 바다갈매기까지 이곳을 찾아 둥지를 틀고 해마다 생명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아름다운 섬. 이곳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부푼 가슴으로 나는 보고 있다.



태그:#알카트라즈, #여행기,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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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팔공산 자락에서 자스민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육과 여행에 관한 기사나 칼럼을 쓰고 싶은 포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보는 ssuk02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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