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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박물관과 미술관의 전시물을 통해 동시대를 조명해보려고 한다. 역사와 문화유산, 문화와 예술은 과거와 현재지만, 가까운 미래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편집자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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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 생긴 사연

2018년 12월 27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문을 열었다.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연초제조창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들었다. 이곳은 그 동안 청주공예비엔날레의 전시장으로 사용되었다. 2011년부터 공예비엔날레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미술 인프라가 구축되었고, 그 결과 미술관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또 청주의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본관 리모델링, 광장 조성, 주차장 신축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범적인 도시재생 사례라 말할 수 있다.

현대미술관을 개관하기 위해 577억 원이 투입되었고, 이를 통해 조성된 연면적은 2만m²다. 1차로 1300점의 작품이 청주관으로 이관되었고, 2020년까지 모두 4000점의 작품이 이관될 예정이다. 4000점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의 절반 가까이 되는 숫자다. 이처럼 많은 작품이 오는 것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전시와 보관을 겸한 수장형 전시관이기 때문이다. MMCA청주의 수장능력은 1만1000점 정도다.

 
개방형 수장고
 개방형 수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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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은 전시실, 수장고, 보존처리실, 라키비움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장고는 말 그대로 보관용 수장고와 개방형 수장고(Open Storage)로 이루어져 있다. 개방형 수장고는 작품을 볼 수 있도록 만든 수장고를 말한다. 보관된 작품을 순환방식으로 관람객에게 선보이는 것이다. 보존처리실은 재료 분석, 실험, 손상 복원과 같은 일을 하는 공간이다. 미술품의 보존과 처리는 현대미술관의 과제다. 그 과정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도록 3층에 보이는 보존과학실을 작게 마련해 놓았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것은 라키비움이다. 라키비움은 도서관(Library), 아카이브(Archive), 박물관(Museum)의 합성어로 미술도서자료실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전시 수장 보존에 더해 정보와 자료 제공이라는 기능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기능을 하는 공간이 5층의 박물관에 배치되어 있다. 전시공간은 1, 3, 5층에 있고, 수장공간과 보존처리공간은 1, 2, 3, 4층에 있다. 3층에 라키비움이 있고, 2층에 교육공간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지향하는 바는? 
 
최만린의 작품이 있는 공간
 최만린의 작품이 있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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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기차역이 오르세미술관이 되었다. 런던의 화력발전소가 테이트모던미술관이 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청주의 연초제조창이 국립현대미술관이 되었다. 말 그대로 화려한 변신이다. 개관 일주일 만에 7000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쾌적한 관람을 위해 줄을 세우고 일정한 수만 관람을 시킨다. 국내미술관 중 유일한 사례다. 현재까지는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화예술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청주관은 개방을 지향한다. 관람객과의 소통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1층에 위치한 개방 수장고는 MMCA청주의 특색이 두드러진 곳이다. 전면이 유리로 마감돼 관람객들이 밖에서도 내부를 볼 수 있다. 외부 환경적 요소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입체조각품들이 놓여있다. 김복진의 불상, 백남준의 데카르트, 니키 드 생팔의 검은 나나 등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별 헤는 날을 찾아서>
 <별 헤는 날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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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지향점은 작품의 손쉬운 이동(Mobility)이다. 이젤과 밀차가 결합된 특수좌대를 만들어 작품을 쉽게 이동시킬 수 있다. 이동은 전시물의 교체를 위한 필수조건이다. 교체작업이 아주 짧은 시간에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전시물의 수시 변화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관람객이 비교적 자유롭게 작품을 살펴볼 수 있다. 관람동선의 자유화라고 말할 수 있다. 박미화 전시3팀장은 "기존 전시장이 백화점이라면 여기는 코스트코 같은 곳"이라고 비유한다.

영상, 사운드 등이 들어간 비디오 아트, 키네틱 아트 같은 새로운 예술을 보여주려는 시도도 선보인다. 이제 예술은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5층 기획전시실에 마련된 개관특별전 <별 헤는 날: 나와 당신의 이야기>다. 사진, 조각,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그리고 세상과 인간의 모습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새로운 예술이 우리 가까이 있음을 보여준다.

<별 헤는 날을 찾아서>
 
김수자의 ‘바늘여인’
 김수자의 ‘바늘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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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의 '바늘여인'은 낯설다. 그런데 그 낯설게 하기가 새로운 예술의 본질이다. 8개의 채널을 통해 칼라 비디오가 움직인다. 도쿄, 상하이, 델리, 뉴욕, 멕시코시티, 카이로, 라고스, 런던 8개 도시 인간군상의 모습이다. 김수자가 바늘처럼 꼿꼿이 서서 이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바늘은 실을 연결해서 천과 옷을 만들어내지만, 마지막에는 그들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다 그런 식이다. 함께 하는 듯하지만 결코 하나 될 수 없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리고 화면에는 소리가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인위적으로 소리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박물관 안내 자료에는 인간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현대인이 겪는 인간소외를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바늘여인'은 명상적이고 사유적인 설치미술이다. 김수자는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했다.

 
김상우의 ‘세대(Generation)’
 김상우의 ‘세대(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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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숙한 듯 하면서 새로운 작품이 김상우의 '세대(Generation)'다. 이 작품은 말 그대로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을 10개의 인물화로 표현하고 있다. 개개 인물의 모습이 사진처럼 사실적이다. 20세기 어느 한 순간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서 살고 있는 보통사람의 모습이다. 작가는 말한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감사하고 후회하고... 사람에 대한 기억, 그것이 나에게 그림을 그리라 한다."

그렇다면 김상우에게 그림은 기억의 현재화다.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는 걸까? 왜 그들을 정면만 보고 있을까? 초상화를 그리도록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일까? 현대인이 오히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은 아닐까? 가로로 길게 놓여진 그림 속에서 필자는 소외를 본다. 그들은 결코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군중 속의 고독이다.

피곤을 벗어나고 싶은,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
 
양정욱의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
 양정욱의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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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욱의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도 인상적이다. 2013년 중앙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나무, 실, PVC를 결합해 하나의 구성체를 만들고, 그곳에 모터를 부착해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작품이 하얀 천으로 가려져 있다. 안에서 비추는 불빛이 작품에 대한 실루엣을 보여준다. 관람객으로 하여금 천을 제치고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조각을 연결해 만든 입체형태가 보인다. 그런데 그것에서 소리가 난다. 그것은 실로 플라스틱 페트병을 엮어 걸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움직이며 소리를 낸다. 그것은 작은 모터로 입체를 움직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타원형의 구체(球体) 속에서 우리는 단조로움과 피곤을 느낀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에 제작방식이 아날로그적이다. 그리고 질서가 없다. 이것을 사회학적으로 아노미(Anomie)라고 부른다.
 
최수앙의 ‘The Wing’
 최수앙의 ‘The 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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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욱은 야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때 목격했던 경비초소 경비원의 모습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다. 고개를 떨구며 까딱까딱 졸고 있는 경비원의 피곤한 모습을 표현하면서도, 그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 속에 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 꿈이 불빛을 통해 퍼져나가야 하는데, 그 빛이 너무 약해 전체 공간이 어둡고 그림자로 가득하다. 경비원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가장 도발적인 작품은 최수앙의 'The Wing'이다. 우리말로 하면 날개다. 가까이 가서 보면 손목과 팔을 연결해서 만든 날개다. 수많은 손이 합쳐져 날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실현시켜준다고 생각할 수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거대한 이상의 실현이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거룩하거나 숭고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개인의 희생이 될 수도 있다. 개인의 욕망은 전체의 폭력 속에 희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정욱의 'Hero'(오른쪽 인물)
 양정욱의 "Hero"(오른쪽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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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려진 손목을 있는 그대로 보면 잔혹이고 그로테스크다. 또 이들을 쇠줄과 꺾쇠가 묶고 있다. 잔인하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이 날개를 벌거벗은 노인이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노인은 'Hero'로 표현된다. 우리시대 영웅의 초라한 모습이다. 30년 공무원을 마치고 퇴직한 노년의 아버지의 모습을 실제보다 작은 크기로 재현했다고 한다. 정치적 압제와 압축성장의 그늘에서 살아온 영웅의 삶은 고단하고 피곤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근육이 빠져 탄력을 잃은 몸, 벌거벗은 무기력한 몸, 찡그린 얼굴 표정, 무언가 불만이 있는 듯 쥐어진 양손, 조금은 숙여진 어깨. 엉거주춤한 자세. 지나치게 사실적이어서 똑바로 보기가 민망하다. 르네상스시대의 이상적 인간이 현대에 와서 무기력한 인간으로 변한 모습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인간에게 이렇게 가혹한가? 무기력과 회한 속에 현장을 떠난다.

 
김을의 ‘갤럭시’
 김을의 ‘갤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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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을의 '갤럭시'는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1200여점의 드로잉을 작은 별처럼 모아 거대한 은하계를 형상화했다. 2003년부터 2016년까지 14년간 작업한 대작이다. 그림의 의도를 알 수 있는 것은 그림 속의 글이다. "그림에는 생각이 있고(畵者有之思), 모든 그림은 말이 없다(諸畵無言)". "생각은 깊게 그림은 대충". 무수히 많은 드로잉을 통해 관람객이 그 생각을 찾아내라는 얘기다. 그림은 관람객의 생각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태그:#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MMCA청주, #청주 연초제조창, #수장고형 미술관, #<별 헤는 날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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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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