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라북도 장수군 지나 남원시를 넘어, 전라남도 구례군 들머리에 자리한 아이쿱생협 자연드림파크를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싸우고 있을 노동자들을 마나기 위해.
 전라북도 장수군 지나 남원시를 넘어, 전라남도 구례군 들머리에 자리한 아이쿱생협 자연드림파크를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싸우고 있을 노동자들을 마나기 위해.
ⓒ 조혜원

관련사진보기

 
제가 사는 전라북도 장수군 지나 남원시를 넘어, 전라남도 구례군 들머리에 자리한 아이쿱생협 자연드림파크에 이르렀습니다. 군과 시, 도까지 넘나드는 길이지만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하고 싶다, 대기발령 무급휴직 중단하라!"
"구례자연드림파크 노동탄압 아이쿱이 해결하라!"


힘찬 노랫소리가 흐르는 곳으로 좇아가니 피켓과 함께 서 있는 노동자가 보입니다. 마침 점심때여서 그 앞에 있는 식당으로 종종 발걸음 하는 노동자들도 많습니다.

그 앞을 무심하게 지나치는 옆모습,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추운 바람보다 더 마음이 시립니다. 한때 같은 곳에서, 가까운 어느 자리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피 터지는 몸짓을 애써 외면하는, 짐짓 모른 체하는 그 싸늘한 종종걸음들…
 
“우리는 일하고 싶다 대기발령 무급휴직 중단하라!” 추운 겨울 자연드림파크 거리에 선 노동자의 외침에 마음이 시큰합니다.
 “우리는 일하고 싶다 대기발령 무급휴직 중단하라!” 추운 겨울 자연드림파크 거리에 선 노동자의 외침에 마음이 시큰합니다.
ⓒ 조혜원

관련사진보기

  
한때 같은 곳에서, 가까운 어느 자리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피 터지는 몸짓을 애써 외면하는, 짐짓 모른 체하는 그 싸늘한 종종걸음들….
 한때 같은 곳에서, 가까운 어느 자리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피 터지는 몸짓을 애써 외면하는, 짐짓 모른 체하는 그 싸늘한 종종걸음들….
ⓒ 조혜원

관련사진보기

  
죄송하고 부끄럽게도 그 자리에 처음 가 본 제가 이런데 1년도 훨씬 넘게 날마다 이런 시간을 겪고 느껴야 하는 아이쿱 노조 분들은 얼마나 마음고생이 컸을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문석호 지회장님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우렁찬 노랫소리 사이로 또박또박 들리는 많은 이야기들. 노조탄압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그 짧은 시간에도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너무 복잡하고 많은 일들이 담겨 있어서 그 귀한 말씀들 제대로 정리도 못하겠어요.

"이제 더 많이 추워질 텐데 계속 여기서 하실 거예요?"

어리석은 물음인지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말을 건네게 됩니다. 잠시만 바깥에 서 있어도 골이 띵띵한 이미, 벌써, 너무, 많이 추운 겨울이니까요.

"날씨가 춥지 마음은 춥지 않아요."

다른 이야기는 머릿속에서 마구 뒤엉켜버렸건만 환한 얼굴과 함께 다가온 저 목소리만큼은 마음에 쿡 박혀서 잊지 못하겠네요.
 
남원 아이쿱생협부터 전국 곳곳의 아이쿱생협 조합원들이 노조를 응원하는 현수막을 보내주고 있어서 그렇게 큰 힘이 된다고 합니다.
 남원 아이쿱생협부터 전국 곳곳의 아이쿱생협 조합원들이 노조를 응원하는 현수막을 보내주고 있어서 그렇게 큰 힘이 된다고 합니다.
ⓒ 조혜원

관련사진보기


남원 아이쿱생협부터 전국 곳곳의 아이쿱생협 조합원들이 노조를 응원하는 현수막을 보내주고 있어서 그렇게 큰 힘이 된다고 합니다. 전에는 너무 외로운 싸움이었는데 함께해 주는 분들이 많아져서 추워도 춥지 않을 수 있다면서요.

"저 CCTV 좀 보세요. 전에는 정면만 바라보던 것들이 죄다 여기로 방향을 틀었어요."

지회장님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와, 정말로 둘레에 있는 CCTV가 다 1인 시위하는 쪽으로 고개를 틀었더군요. 자본의 악랄한 눈을 대변하는 듯한 CCTV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육두문자가 튀어나옵니다. 물건은 딱히 죄가 없는데 말이죠.
 
둘레에 있는 시시티브이가 다 1인 시위하는 쪽으로 고개를 틀었더군요.
 둘레에 있는 시시티브이가 다 1인 시위하는 쪽으로 고개를 틀었더군요.
ⓒ 조혜원

관련사진보기

  
오후 1시가 넘으니 노래가 멈추고 슬슬 자리를 정리하는 듯했습니다. 갑자기 잘 달려 있는 노조 응원 현수막을 지회장님이 떼어내셔요.  

"왜 그러세요?"
"그냥 두면 이거 금세 다 없어져요."


구례자연드림파크 들어설 때부터 이 현수막들이 보여 참 반갑고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나마 시위하는 동안에만 설치할 수 있다는 말이네요. 으이구, 정말 속 터집니다.

시위에 앞서 저 현수막 하나하나 달고 한 시간도 훌쩍 넘게 추운 길 위에 있다가 다시 또 하나하나 저것들 떼어내자면 참, 그게 얼마나 고된 일이겠어요. 그래도, 응원 현수막이 더, 더 많아진다면 아마 그 고된 일도 기쁘게 받아들이실 테죠.
 
시위에 앞서 저 현수막 하나하나 달고 한 시간도 훌쩍 넘게 추운 길 위에 있다가 다시 또 하나하나 저것들 떼어내자면 참, 그게 얼마나 고된 일이겠어요.
 시위에 앞서 저 현수막 하나하나 달고 한 시간도 훌쩍 넘게 추운 길 위에 있다가 다시 또 하나하나 저것들 떼어내자면 참, 그게 얼마나 고된 일이겠어요.
ⓒ 조혜원

관련사진보기

  
묵묵히 현수막을 떼는 지회장님과 내내 피켓 앞에 서 있던 노동자 한 분께 "수고하셨어요!" 인사드리며 돌아서는데 슬픔인지 분노인지 아니, 어쩌면 희망 같기도 한 복잡하게 시리고도 뜨거운 마음 부여잡고 구례 읍내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저도 드디어,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아이쿱 노동자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생겼거든요.

"아이쿱 노동자들을 위한 따끈따끈한 '동지모임' 티켓 사세요!"

'작은 설'이라고도 하는, 12월 22일 동지(冬至) 기나긴 밤. 참으로 알차고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고맙고 아름다운 행사가 열립니다. 바로 '아이쿱생협 구례자연드림파크 노동자를 후원하는 지리산 동지모임'에서 준비하는 자리입니다. 지리산권시민단체협의회, 지리산문화예술인모임, 지리산종교연대, 구례민주단체연합이 마음을 모았다고 하네요.

이런 자리라면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참 뿌듯하게 기쁜 날이었을 텐데 그만, 제게 엄청난 몫이 다가왔습니다. 바로 두 번째 순서, '문화공연과 경매' 사회를 맡게 된 것이죠!
 
‘아이쿱생협 구례자연드림파크 노동자를 후원하는 지리산 동지(冬至)모임’에서 무려, 제가 사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아이쿱생협 구례자연드림파크 노동자를 후원하는 지리산 동지(冬至)모임’에서 무려, 제가 사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 조혜원

관련사진보기

  
구례로 귀촌한 지 한참 된 아는 언니가 어느 날, 참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왔어요. 어쩌고저쩌고 이 행사 설명부터 하기에 잔손쯤 보태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더니만 글쎄, 사회를 보면 어떻겠냐고 하는 거예요. 듣자마자 덜컥 겁부터 나서는 못하겠다고 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고.

그렇게 전화를 끊고 한나절 넘게 이 생각 저 고민 하고 또 하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도망 칠 일이 아닌 것만 같아요. 밤이 으슥해질 즈음 다시 언니한테 연락했죠. 아이쿱 노동자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만일 이것이라면, 어떡하든 해 보겠다고요.

그 이야기 기쁘게 들어준 언니가 며칠 뒤에 소식을 주었죠. 기획단 회의에서 제가 사회 보기로 진짜로 정했다나요! 아이고, 저를 모르는 분들도 많을 텐데 뭘 보고 이런 모험을 하시는지…

이제 더는 물러설 수 없는 길, 저와 함께하자고 손 내밀어 내주신 분들게 힘이 되도록 있는 머리 없는 생각 모조리 굴려서 무조건 잘해 보자고 마음 단단히 먹었어요.

그러고는 이제야 비로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 안고 구례 자연드림파크에 찾아가 아이쿱의 노동탄압을 온몸으로 호소하는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네들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하면서 '동지모임'을 잘 꾸려보자는 의지를 더 단단히 다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구례 읍내에서 열린 기획단 모임에도 처음으로 참여했어요.
 
"따끈따끈한 동지모임 티켓 사세요~" 힘든 투쟁 속에서도 환하게 웃는 아이쿱 노조 사무국장님. 당신의 웃음이 우리들의 희망입니다.
 "따끈따끈한 동지모임 티켓 사세요~" 힘든 투쟁 속에서도 환하게 웃는 아이쿱 노조 사무국장님. 당신의 웃음이 우리들의 희망입니다.
ⓒ 조혜원

관련사진보기

  
처음엔 좀 낯설고 어색했지만, 산골 살면서 사람들과 모여서 하는 '회의'란 것도 수년 만에 해보지만 좋은 일 하는 분들이 뿜는 그 기운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무척 뿌듯한 시간이었습니다. 한데, 왠지 걱정은 더 커지는 기분이었죠. 제가 짐작한 것보다 행사가 꽤 크고 묵직하게 느껴지는 바람에.

'아, 경매 사회는 어찌 볼거나. 두 시간이나 이 큰 자리에 사회를 맡다니. 어쩐다냐, 대체 이를 어찌한다냐….'

회의 마치고, 아직 해가 지지 않은 무렵부터 구례에 사는 몇몇 아는 이들과 술잔을 나누었습니다. 시골 술집답게 이 사람 저 사람(저는 모르는 분들이지만) 우리 자리에 와서 인사도 하고 술잔도 건네면서 시간이 흐릅니다.

안 그래도 완전 오랜만에 술집이란 델 와서 기분이 막 좋아져요. 알딸딸한 술기운에, 그날 행사장에서 호응 많이 하겠다며 잘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는 분들 덕분에 조금씩 기운도 되살아나네요. 엣다 모르겠다, 사람들 앞에서 선언을 했습니다.

"오늘까지만 걱정할게요. 내일부턴 무조건 잘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즐겁게 달리겠습니다!"
 
회의 마치고 구례에 사는 아는 이들과 술잔을 나누며 알딸딸한 술기운 빌려서, 사회를 잘 볼 수 있을 거라는 용기와 희망을 얻어 갑니다.
 회의 마치고 구례에 사는 아는 이들과 술잔을 나누며 알딸딸한 술기운 빌려서, 사회를 잘 볼 수 있을 거라는 용기와 희망을 얻어 갑니다.
ⓒ 조혜원

관련사진보기

 
그 내일이 바로 오늘이네요. 이른 아침부터 '동지모임' 단체 카톡방에는 하루 만에 또 진행된 많은 일들이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아이쿱 노동자를 위하는 마음 하나로 추운 날씨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바삐 움직이는 많은 분들한테 고마운 마음이 출렁입니다.

저도 뭔가를 해야만 하겠습니다. 구례에서 하룻밤 묵고 장수로 돌아와 그사이 꽁꽁 언 집에 몸을 간신히 풀고는 동지모임 행사를 알리는 글부터 쓰고 있습니다.

지난 2년, 기나긴 동지 밤을 힘겹게 지새운 아이쿱 노동자들. 이제는 웃으며 따뜻한 새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마음 모아 주시길 간절히 바라면서 듣는 이 없는 산골에서 혼자 조그맣게 외쳐 봅니다. 

"동지(冬至)모임에 오실 수 있는 분, 시간이 여의치 않은 분들 모두모두 티켓 사세요~ 아이쿱 노동자들을 위한 따끈따끈한 '동지모임' 티켓 사세요!"
 
지난 2년, 기나긴 동지 밤을 힘겹게 지새운 아이쿱 노동자들. 이제는 웃으며 따뜻한 새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마음 모아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 2년, 기나긴 동지 밤을 힘겹게 지새운 아이쿱 노동자들. 이제는 웃으며 따뜻한 새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마음 모아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 조혜원

관련사진보기


태그:#아이쿱생협, #동지, #노동조합, #자연드림파크, #구례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