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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정말 다양한 것을 해왔다. 피아노, 미술, 음악, 글쓰기, 영어... 헤아릴 수도 없이 말이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해오면서도 누군가 잘하는 것이나 취미를 물어오면 한참을 고민하곤 했다.
 
'도대체 내가 잘하는 건 뭘까? 또 좋아하는 건 뭘까?'


남들은 쉽게 가지는 취미가 나에게는 참 어려웠다. 나름 많은 걸 배웠다곤 하지만 그 배움은 길게 가지도 못했고, 딱히 크게 흥미를 느끼는 것도 없었다. 그렇게 취미 없이 방황하던 나에게 새로운 취미로 다가온 것은 다름 아닌 한 편의 '시'였다.

시를 쓰게 된 계기는 정말 가볍다 못해 우스울 정도다. 중학교 1학년 시절 국어 시간. 국어 선생님께서는 시를 한 편 적어보라는 과제를 내주셨다. 시. 시를 한 편 만들어야 한다니. 당시엔 정말이지 난감했다.

도대체 어떻게 적어야 할지 한참이나 고민하던 나에게 선생님께서는 편하게 마음속에 있는 아무 생각이나 적어보라고 하셨다. 당시 순탄하지 않았던 가정사로 힘들었던 나는, 아무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했던 그 힘듦을 주제로 시를 적어보자 생각했고 곧 실행에 옮겼다.
 
중학교 시절 쓴 시와 상장.
 중학교 시절 쓴 시와 상장.
ⓒ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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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파도가 내 발을 감싸줍니다.
마치 내 아픔을 알기라도 하듯
다시,또 다시 내 발을 어루만져줍니다
마치 내 모든 아픔을 감싸주듯이

갈 곳 모르고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과도 같이
세월따라 드리워진
나무그림자와도 같이

깊고도 긴 내 아픔을 아는 듯
파도는 또 다시 말없이 다가와
내 발을 다독여줍니다. 

_중학교 당시 썼었던 시

막상 쓰다 보니, 또 쓰고 보니 어렵지 않았다. 후련했다. 누구에게도 쉽사리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은유와 비유를 거쳐 시 속에 자연스레 담겼고, 혼자 앓던 힘듦은 시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렇게 나름의 위로와 후련함을 느끼며 작성한 시.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상장을 받았다. 그것도 우수상이다. 아무런 배움없이 적어낸 한 편의 시가 상이 되어 돌아왔다니. 아마 이때였던 것 같다. 내가 무언가를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낀 것이. 그렇게 그때부터 천천히 시에 빠져들어갔다.

읽는 것은 쉽지만, 쓰기는 어려운 것. 보통 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나 역시도 그래왔다. 시라는 것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떠한 형식을 가지고,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함축적인 글이라고. 그렇기에 아무나 쓰기엔 힘든 것이라고. 하지만 내가 겪었던 일련의 경험들 속에서 깨달았다. 그건 편견이라는 걸.

우리는 시인이 아니다. 설사 시인이라고 해도, 시가 반드시 무언가 의미를 가져야하는 것은 아니다. 또 형태에 맞아야 한다는 법도 없고, 무언가를 크게 느끼고 깨달아야만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시에 어떠한 정해진 형태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장문의 글처럼 쓰는 산문시도 있고, 한두 마디에 불과한 짧은 시도 있다.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때마다 생각나는 추상적인 상상들을 글로 표현만 해도 충분히 시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시에 빠지게 된 이유이자, 시의 다. 누구에게 쉽게 말 못하는 이야기, 마음 속에 있는 추상적인 생각의 덩어리들. 그런 것들이 모두 글감이 되어 한 편의 시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갖게 관심으로, 여러 편의 시를 썼다. 그 중 몇 개는 휴대전화에 보관해놓고 이따금씩 읽기도 하고, 몇 개는 쓰고 나서 지워버리기도 한다. 대회에도 몇 번 출품해보았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저 취미로 쓰는 시에는 작품성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

그저 오롯이 '나만의 시'를 쓰며 때론 꺼내지 못했던 말, 쉽사리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담아 위안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조금은

무언가를 가득 채울 필요는 없다.
서두를 필요도 없다.
한 움큼 가득 쥐어도
지체없이 흘러내릴 모래처럼
무언가를 가득 채우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니 조금은,
조금은 속도를 낮춰도
조금은 덜어내도
괜찮을거야

- 자작시 
  
요즘은 진지하거나 감성적인 이야기를 하면 '진지충', '감성충', '선비'라는 식의 부정적인 평가를 듣는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감성이나, 힘듦을 토로하고 싶어도 이러한 평가와 분위기가 신경 쓰여 토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숨겨왔던 이야기, 또 굳이 그런 이야기가 아니여도 가슴 속에 무언가 시원하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어렵지 않다. 정말 아무런 이야기라도 좋다. 그러니, 아무 생각 말고 이번만큼은 시 한 편에 도전해보는 것이 어떨까?

태그:#시, #시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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