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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동안 쌓인 노사갈등이 한순간 폭발했다. 지난 22일 유성기업 임원이 노조원들에게 폭행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 노조를 향한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다. 결국 노조는 29일 '임원 폭행'에 대해 공식 사과한 뒤, 45일 동안 이어온 유성기업 서울사무소 농성을 접기로 했다.

폭력을 행사한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번 폭행사태만을 보고 판단하기에는 지난 8년 동안의 과정이 녹록지 않다.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유성기업 영동지회 전 지회장(현 사무국장) 김성민씨는 28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답답함과 억울함을 토로했다.
 
2016년 5월 18일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에게 한광호 조합원 죽음의 책임을 묻는 손피켓을 들고 있는 유성기업 영동지회 김성민 지회장.
 2016년 5월 18일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에게 한광호 조합원 죽음의 책임을 묻는 손피켓을 들고 있는 유성기업 영동지회 김성민 지회장.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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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목소리는 다소 지쳐있었다. 그럴 것이 이미 40일 넘게 유성기업 서울사무소 앞에서 노숙농성을 진행 중이었다. 사측에 교섭을 요구하며 지난달 15일부터 유성기업 서울사무소에서 점거 농성을 벌여왔다. 그러던 중 지난 22일 충남 아산시 유성기업 아산공장에서 폭행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김씨는 먼저 "피해자 김아무개 상무의 쾌유를 빈다"고 입을 뗐다. 그러면서도 그는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도 언론이 좀 제대로 알아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성기업 임원 폭행사태가 발생한 뒤 거의 모든 매체가 당시 폭행사건에 집중해 '김 상무 피가 어디로 튀었다'는 식으로 자극적인 보도를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권의 경찰이 노조를 애써 비호하는 듯한 모양새까지 취했다'는 논조까지 덧붙였다.

정치권에서도 민주노총과 유성기업 노조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28일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데 절대로,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폭행사태를) 저지하지 못한 경찰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유성기업 사태, 8년 동안 쌓이고 쌓인 일"
   
2011년 6월 22일 오전 충남 아산시 유성기업에서 헬멧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방패를 든 회사측 용역업체 직원들이 출근을 시도하는 노조원들 2백여명에게 쇠파이프, 죽창을 휘두르고 소화기를 던지는 등 폭력을 휘둘러 20여명이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회사측이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이 노조원들에게 물을 뿌리고 있다.
 2011년 6월 22일 오전 충남 아산시 유성기업에서 헬멧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방패를 든 회사측 용역업체 직원들이 출근을 시도하는 노조원들 2백여명에게 쇠파이프, 죽창을 휘두르고 소화기를 던지는 등 폭력을 휘둘러 20여명이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회사측이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이 노조원들에게 물을 뿌리고 있다.
ⓒ 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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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우리는 당시에 파업을 40일 이상 진행한 상황이었다"면서 "그때까지도 사측과 상견례 한번, 본 교섭은 딱 한번만 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씨는 "그간 (김 상무는) 바쁘다, 집에 일이 있다 하면서 안된다고만 했다"라면서 "실제 교섭을 한 번도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또 "폭행사태가 발생한 그 날도 (회사에서) 조합원들을 먼저 퇴근시켰다"라면서 "그런데 김 상무가 갑자기 나타나 제 3노조와 교섭을 하려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씨는 "'어용노조'인 3노조와는 교섭을 신속하게 하고 우리와는 이렇게 시간을 끄는 것이 다들 이해할 수 없어 조합원들이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조합원들은 김 상무를 한광호 열사의 죽음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라면서 "그가 2014년에 유성에 들어온 이후 조합원들을 무차별 고소고발 해왔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김 상무는 지난 2014년 입사한 뒤부터 민주노총 소속인 제1 노조와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부터 1노조원들에게 250여 건의 고소·고발을 진행했다. 노조에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만 1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유성기업 노사 갈등의 역사를 한 줄로 정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2011년 5월 노사 간 교섭이 파행된 이후 사측은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사측은 파업하는 노조를 향해서 용역을 투입했다. 이후 사측과 가까운 제2노조가 설립됐고, 1노조 조합원 27명이 해고당했다. 이 과정에서 사측은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노조를 와해하는 공작을 펼쳤다.

2013년 법원은 27명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해 전원복직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듬해 복직한 27명 중 11명이 다시 해고됐다. 2014년 사측은 몰래카메라를 동원해 노동자들을 불법 감시했고, 노사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2016년 3월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법원은 2016년 4월 유성기업 제2노조 설립이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유성기업엔 지금의 3노조가 생겼다.

"밀린 임금 달라고 하자 소송해서 받으라 하기도"
 
2011년 6월 22일 오전 충남 아산시 유성기업에서 헬멧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방패를 든 회사측 용역업체 직원들이 출근을 시도하는 노조원들 2백여명에게 쇠파이프, 죽창을 휘두르고 소화기를 던지는 등 폭력을 휘둘러 20여명이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진 속 회사측 용역업체 직원이 쇠파이프를 들고 있다.
 2011년 6월 22일 오전 충남 아산시 유성기업에서 헬멧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방패를 든 회사측 용역업체 직원들이 출근을 시도하는 노조원들 2백여명에게 쇠파이프, 죽창을 휘두르고 소화기를 던지는 등 폭력을 휘둘러 20여명이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진 속 회사측 용역업체 직원이 쇠파이프를 들고 있다.
ⓒ 금속노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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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간의 갈등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2017년 2월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이 부당노동행위로 구속된 뒤 갈등은 더욱 커졌다. 결국 노사가 파행을 겪고 파업을 진행하는 과정이 반복됐고 이번에 폭행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김씨의 말에 따르면 "김 상무는 복직한 노동자들이 밀린 임금을 달라고 하자 소송해서 받으라고 했다"라면서 "노동자 스스로 지쳐 떨어져 나가게 하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돌아보면 유성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회사가 고용한 용역에 수없이 폭행당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심지어 차에 깔리거나 소화기에 맞아 안면이 함몰되는 경우도 있었다"라면서 "조선을 비롯한 보수언론이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유성사태를 보도해준 적이 있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유성기업 노조는 유시영 전 회장을 업무상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고발한 상황이다. 노조는 "유 전 회장이 노조파괴전문 컨설팅 업체인 창조컨설팅을 비롯해, 김앤장·태평양·지평 등 대형로펌을 통해 노동자들을 상대로 수백 건의 소송을 벌일 때 이 비용을 회사 돈으로 지불했다"고 보고 있다.

태그:#유성기업, #한광호, #유시영, #민노총, #김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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